예배 수호 앞장선 그 목사 조기 은퇴 선언한 까닭은
담임목사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 스무날이 지나자 교인들은 장례를 준비했다. 순교의 각오를 다진다며 미리 준비한 목사의 영정 사진이 실제 장례식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지난 2021년 코로나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심하보 은평제일교회 목사 이야기다. 31일 서울 은평구 은평제일교회에서 심 목사를 만났다.
덤으로 사는 인생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정부는 예배당 수용 인원의 10% 20명 미만만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방역 지침을 발표했다. 심 목사와 은평제일교회 교인들은 정부 지침에 맞섰다. 방호복을 입고 대면 예배를 강행했다. 이 모습은 한국을 넘어 외신에까지 보도됐다. 사람들을 심 목사를 ‘전사 같다’고 했다.
단단하던 그가 쓰러졌다. 9월 8일이었다. 코로나로 기저질환이 악화하면서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자가호흡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음압병동에 들어갔다. 가족들은 폐 이식까지 생각했다. 의료진은 만류했다. 폐는 이식한다고 해도 예후가 좋지 않고 공여자를 찾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코로나로 면회도 하지 못하던 때다. 모두가 손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태가 길어졌다. 담임 목회자를 잃을 위기에 처한 교인들의 충격은 가족 못지않게 컸다. 심 목사의 아내 신문자 사모는 중직들을 모았다. 장례 절차를 의논했고 후임자 청빙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슬퍼할 수도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 음압병동의 심 목사가 눈을 떴다. 입원한 지 30일째 되던 날이다. “오늘이 며칠인 줄 아세요?”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그에게 방호복 차림의 간호사가 다가와 물었다. 심 목사는 “음압 병동 생긴 게 비행기랑 비슷하다”며 “간호사에게 이 비행기 언제 착륙하느냐고 물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일반 병동에서 열흘간 더 머문 그는 40일 만에 퇴원했다. 교인들 앞에 모습을 보인 건 11월 7일 주일 예배에서다. 복음성가 ‘죄악에 썩은 내 육신을’을 부른 심 목사는 “덤으로 사는 인생을 주님께 붙들린 자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목자의 은퇴 선언
이후 별일 없이 지내는 줄 알았던 심 목사가 지난 16일 교회 설립 42년 감사예배에서 깜짝 발표했다. 오는 8월 6일 예배를 끝으로 담임목사직에서 은퇴하겠다고 선포했다. 올해 나이 71세. 소속 교단의 헌법으로 보면 조기 은퇴다. 폐 기능은 회복했지만 간혹 교인들의 얼굴과 이름이 떠오르지 않은 것이 은퇴를 결정한 계기가 됐다. 심 목사는 “선한 목자라면 양의 이름과 얼굴은 알아야 한다”며 “손을 떨 정도로 건강이 안 좋으면 목회를 내려놓겠다고 말해왔다. 손을 떨진 않지만 이런 상태로 담임 목회를 고집하는 것은 노욕이라는 생각으로 빠르게 은퇴를 결정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심하보 목사 은퇴 기념 및 이취임 감사예배는 오는 6일 오후 5시 은평제일교회에서 열린다. 후임으로는 심 목사 입원 이후 예배 설교를 도와온 ANI선교회 대표 이예경 목사가 선정됐다. 교인들도 후임 결정을 찬성했다.
심 목사는 “42년간 제대로 된 휴가도 한 번 가지 못했다”며 “최선을 다했기에 담임 목회를 내려놓는 아쉬움은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가장 가까운 목회 동지였던 아내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심 목사는 “30년 전쯤 여름이었다. 고향인 춘천에 다녀오는 길에 개울을 만났다”며 “발 좀 담갔다가 가자던 아내에게 빨리 돌아가 사역이나 하자고 다그쳤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0여년을 목회에 미쳐 살았다”며 은퇴 후에는 아내에게도 자신에게도 여유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모든 사역에서 손을 떼는 건 아니다. 세월호 직후 진행한 진도 경제 살리기 운동과 2010년대 중후반 성과를 보인 부채 소각 운동 등 심 목사는 사회적 이슈와 사역을 접목해 온 목회자다. 은퇴 후에는 최근 한국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마약과 관련해 예방 사역을 펼쳐나간다는 계획이다. 한국마약예방운동본부라는 이름으로 사단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심 목사는 “목회를 시작한 이후 모든 날이 은혜였다”며 “목회 일선에서는 떠나지만 남은 인생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할 수 있는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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