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흔적 안 보이고, 이 일 하다 보면 인구소멸 체감해요"
매월 첫째주, 방방곡곡 진솔한 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체험 함양 삶의 현장'을 연재한다. <주간함양> 곽영군 기자가 함양의 치열한 노동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직업에 대한 정보와 함께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흥미롭게 전하는 연재 코너이다. 관련 영상은 유튜브 '함양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자말>
[주간함양 곽영군]
연일 폭우가 쏟아진 7월의 경남 함양, 국지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고 있어 장마라는 표현보다 이젠 우기라는 명칭이 더 어울린다. 고온다습한 날씨는 불쾌지수를 상승시키며 조금의 움직임에도 등줄기에 땀이 맺힌다.
이렇게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함양 지역 곳곳을 누비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 평균 100가구 이상을 돌며 수도계량기를 철저히 관리하는 이들은 바로 수도검침원이다.
체험지 출발에 앞서 김은아씨는 전화로 복장에 대한 경고를 미리 일렀다. 그는 "긴팔, 긴바지, 발목까지 오는 양말을 꼭 착용하고 오세요"라며 사전에 고지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고 편안한 복장으로 나섰다. 매번 느끼지만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어리석다.
수도검침에 앞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김은아씨가 준비한 갈고리를 받아 마을 초입부터 순차적으로 수도계량기를 확인했다.
오늘 주된 업무는 수도계량기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는 일. 모든 체험이 그렇듯 처음은 항상 호기롭다. 첫 집을 방문하며 김은아씨가 알려준 방법대로 "수도검침 나왔습니다"라고 외치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오늘 수도검침 지역인 뇌산마을은 대부분 노후화된 집이며 넓은 마당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도계량기 위치를 단번에 찾기 어렵다. 첫 집부터 허둥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본 김은아씨는 조금의 힌트를 건네며 방향을 이끌었다.
집 수도 근처에 자리 잡은 수도계량기함에는 덮개와 돌들이 쌓여있었다. 돌을 거두고 계량기 뚜껑을 열어보니 이름 모를 벌레들이 득실거렸다. 재빨리 벌레들 사이로 계량기 숫자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뚜껑을 닫았다. 벌레를 보고 질색하는 모습을 본 김은아씨는 추가적으로 당부사항을 전했다.
그는 "계량기함을 열기 전 몇 번 뚜껑을 두드리고 열어야 한다. 가끔 뱀, 쥐와 같은 동물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무심코 뚜껑을 열었다가 뱀이 나와 굉장히 놀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오늘 일정에 대한 걱정이 심각하게 많아졌다.
다음 집으로 이동했다.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집이다. 풀이 무성하게 솟아 있어 외관상으로 족히 10년은 방치된 모습이다. 김은아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비어있는 집들이 많아지고 있다. 언론에서 꾸준히 말하고 있는 인구소멸을 이렇게 직접 체감하니 상당히 가슴이 아프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과연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 마을에 얼마나 많은 빈집이 생길지 걱정이다. 얼마 전 자주 뵙고 인사하던 어르신이 보이지 않아 이장님에게 물으니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관리가 전무한 집 또한 일일이 수도계량기를 검침하며 누수와 같은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도 검침원의 업무 중 하나다. 이곳 계량기는 풀이 자란 중간에 위치해 접근을 꺼리고 있자 김은아씨가 과감하게 낫을 가지고 풀을 쳐내며 진입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 복장이 불량해 이렇게 풀이 무성한 곳은 제가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죄송한 마음과 함께 안도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집을 지나며 속도감이 붙었다. 이제 김은아씨가 말하지 않아도 대략 어느 위치에 계량기가 있을지 예상했다. 김씨의 칭찬과 함께 속도감이 붙으며 자만심도 높아졌다.
이에 앞서 설명했던 방법을 따르지 않고 계량기함을 열었다. 그러자 계량기 속에 작은 생쥐 한 마리가 튀어 나와 깜짝 놀랐다. 지켜보는 일행들도 덩달아 놀라며 뒷걸음치기도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5미터 거리를 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에 김은아씨는 "제가 보기에는 곽기자님은 겁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며 "지금 본 작은 쥐는 귀여운 정도다. 가끔 고양이만한 쥐가 나오기도 한다"며 웃어보였다.
작업 시간이 중간쯤 흘렀을까? 김은아씨가 잠깐의 휴식을 제안하며 경치가 좋은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가끔 김은아씨가 수도검침을 위해 방문하면 커피를 내어주시는 집이라고 설명했다.
쉼터와 같은 이집은 뇌산마을 중심에 자리 잡은 집으로 비교적 높은 고지에 있어 경치가 예술이다. 잘 가꿔진 텃밭과 각종 야채, 과일들이 즐비하다. 꼭 동화 속 잘 꾸며진 집처럼 느껴졌다. 김은아씨와 집주인이 정겹게 인사를 나누었다. 커피를 얻어 마시고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오히려 편하다고 김씨가 말했다. 그는 "땡볕에서 일하는 경우 정말이지 숨이 막히기도 한다"며 "추운 겨울에는 길이 미끄럽고 계량기가 얼어붙는 등 계절에 따라 어려운 점도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아들이 한 번 동행하고 싶다고 말해 같이 수도검침을 나선 적이 있었다. 딱 하루 체험하고 엄마가 힘들게 일한다며 갑자기 용돈을 아껴쓴다"고 전했다.
수도검침원은 사소하지만 필수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우리 삶의 편의와 안전을 돕는다. 각 가정을 돌며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검침원을 보며 체력과 인내심에 감탄했다. 또한 고객들에게 항상 친근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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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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