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천사 구두수선공 '값진 코인'...항아리 쌓인 돈, 수재민 도왔다

전익진 2023. 7. 3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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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동전’ 모금 운동을 벌여 마련한 100여만 원을 수재민 돕기를 위해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전달한 구두 수선공 김병록씨. 변선구 기자

“예기치 못한 큰비와 산사태 등으로 실의에 빠진 수재민들에게 작은 성금이지만 많은 분의 뜻을 전해 희망을 잃지 않으시도록 응원하려 합니다.”

31일 수재민들을 돕기 위한 성금 100여만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전한 구두 수선공 김병록(63)씨의 말이다. 그가 전한 성금은 아주 큰 금액은 아니지만, 그에 담긴 마음과 사연은 누구 못지않게 크다. 본인뿐 아니라 이웃과 고객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1월부터 구두 수선점 앞에 빈 장독을 가져다 두고 ‘행운의 항아리’하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재난 등으로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에게 희망을 드리기 위해 잠자는 동전을 모은다’는 글을 써 붙였다. 구두수선점 손님은 물론이고 인근 회사원과 지역 주민들이 오가며 항아리에 동전을 넣었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흘러 마침내 항아리가 그득하게 찼다.

그는 지난 27일 인근 은행의 도움으로 항아리를 쏟아붓고는 이틀에 걸쳐 동전을 모두 계산했다. 항아리 안에는 10원부터 50원, 100원, 500원짜리 동전 수천여 개가 들어 있었다. 동전 무더기 안에는 1000원, 1만 원짜리 지폐도 수십장 섞여 있었다. 총 107만 2390원이 모였다.
구두 수선공 김병록씨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서울 상암동 DMC상암이안2단지 오피스텔 1층 구두 수선점 앞 복도에 설치한 ‘행운의 항아리’에 모인 시민들이 기부한 동전과 지폐. 전익진 기자


“국민의 작은 마음, 수해 당한 분들에게 전해 응원하려 합니다”


김씨는 이렇게 모인 성금 전액을 이날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했다. 김씨는 “수재민들에게 너무 작은 액수의 성금이겠지만 어려움을 함께하겠다는 국민의 작은 마음이 전해져 수재를 당한 분들이 용기를 내주시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송필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회장은 “국민의 작은 사랑과 정성이 모인 이번 ‘사랑의 동전’ 성금 기부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수재민들에게 더욱 크고 울림이 있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1년 6개월간 행운의 항아리에 뚜껑을 닫아본 적이 없다. 갑작스러운 생활고 등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이웃들이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장독 안의 돈을 집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뜻이었다. 그는 “그동안 수십여 명의 어려운 시민들이 장독 안의 지폐와 동전을 조금씩 꺼내 갔었다”며 “이분 중에는 나중에 다시 장독을 찾아 꺼내 간 돈 이상의 성금을 기부하고 간 이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구두 수선공 김병록씨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서울 상암동 DMC상암이안2단지 오피스텔 1층 구두 수선점 앞 복도에 설치한 ‘행운의 항아리’. 전익진 기자

김씨가 당초 동전 모으기에 나선 것은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시민운동 차원이었다. 그는 “우리에게는 1997년 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국민적인 기부 운동을 통해 국가적 경제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있다.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공동체 의식을 발휘한 게 위기 극복의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는 점에 착안해 동전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020년 3월엔 50년 가까이 평생 구두를 닦아 모은 돈으로 장만한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리 땅 3만 3000㎡(1만평, 임야, 시가 5억~7억원)를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내놓기도 했었다. 〈중앙일보 2020년 3월 12일 자 1면〉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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