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오픈뱅킹 하라네요"...'나만 아는 스텔스계좌' 2배 껑충

오효정 2023. 7. 3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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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남성 A씨는 최근 부부 돈 관리 문제로 고민이다. 평소 A씨의 주식 투자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내가 공용인증서(구 공인인증서)를 공유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 은행의 인터넷뱅킹 앱·사이트에서 거의 모든 금융회사 계좌를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는 ‘오픈뱅킹’ 서비스를 이용 중인 A씨 입장에서는 인증서를 공유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비상금 통장은커녕 각종 투자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서다.

A씨 같은 이들이 찾는 게 ‘스텔스 계좌’로 불리는 은행의 보안계좌 서비스다. 온라인으로 조회가 불가능하고, 예금주 본인이 직접 은행을 방문해야만 입출금 거래를 할 수 있다. 적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아 존재를 알 수 없는 스텔스기와 비슷하다고 해 ‘스텔스 계좌’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7년 보이스피싱 등 온라인 금융사기 피해가 심해질 때 이를 예방하는 목적에서 등장했는데, 2019년 말 오픈뱅킹이 전면 시행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당시 배우자에게 인증서를 맡겨둔 사람들에겐 '발등의 불'이었다. 그간 주거래 은행이 아닌 곳에 비상금 계좌를 만들어놓고 관리했는데, 인증서만 있다면 오픈뱅킹 서비스로 얼마든지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지금도 "배우자가 어서 오픈뱅킹 서비스 신청하라고 해 급히 스텔스 계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실제로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스텔스 계좌 신규 등록 건수는 2019년 22만9000건에서 오픈뱅킹 도입 후 매년 증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5만9000건, 올해는 6월까지 벌써 25만3000건이 새로 등록됐다. 이 추세라면 올해 50만건을 넘어설 수 있다.

신재민 기자

이는 오픈뱅킹 등 이용자 편의에 맞춰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도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인의 민감한 사생활인 '금융 프라이버시'가 남에게 들춰질 수 있다는 고민에서다. 특히 과거에는 '비상금 숨기기'가 남편만의 고충처럼 여겨졌지만,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면서 옛말이 됐다.


달라진 풍경…떠오르는 ‘금융 프라이버시’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전국 기혼남녀 300명(남성 150명·여성 15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남성의 40%, 여성의 44%가 비상금이 있다고 밝혔다. 40대 여성 B씨는 “오픈뱅킹 서비스 도입 이후 비상금을 아예 현금으로 인출해 보관해두고 있다”며 “주변엔 친정엄마나 자녀 명의 통장에 입금해두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 세대 사이에선 “아무리 부부라도 왜 남의 은행 인증서를 왜 주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 계좌를 여럿이 관리할 수 있는 모임 통장이 인기를 끌면서, 굳이 부부 중 한 사람이 모든 자산을 쥐고 관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결혼을 앞둔 30대 여성 C씨는 “서로 약속한 만큼 생활비를 모으고 저축과 투자 계획을 함께 짜면 충분하다”며 “서로의 계좌를 속속들이 다 열어보는 건 너무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스텔스 계좌는 잔액을 확인하거나 돈을 뽑기 위해선 직접 은행에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며 "돈을 넣어 두고 잊어버리면 잘 안쓰게 된다는 점을 노리고 저축 용도로도 쓰는 고객도 있다"고 귀띔했다.

계좌 감추기 서비스 신청 건수도 매년 꾸준히 20만여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스텔스 계좌는 직접 창구에 가 신청해야 하고 인터넷·모바일 뱅킹 거래 자체가 차단돼 있지만, 계좌 감추기 서비스는 온라인상에서 계좌가 보이지 않게만 설정하는 것이라 신청절차도 비교적 간단하다. 오픈뱅킹 참여사가 아닌 소형 증권사 계좌나 주식에 비상금을 넣어두는 것도 입소문을 탄 ‘노하우’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주식 투자 사실이 들키지 않도록 예탁결제원에 배당 통지서 수령 거부를 신청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세연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요즘 MZ세대 맞벌이 부부는 통장을 각자 관리하면서 생활비를 절반씩 부담하고, 남은 돈으로는 각자 저축과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이 과정에서 새는 돈을 막기 위해선 부부가 급여를 하나의 파킹통장에 모았다가 함께 관리하며 자금 용도에 맞게 나누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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