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기 17득점' 황민경, '새 팀 증후군' 없다
[양형석 기자]
기업은행이 흥국생명을 꺾고 컵대회의 서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김호철 감독이 이끄는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30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구미·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의 B조 첫 번째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25-16,25-21,25-15)으로 승리했다. 지난 시즌 V리그 6위에 머물렀던 기업은행은 김연경(컨디션 조절)과 김수지(어깨부상) 등이 결장한 V리그 준우승팀 흥국생명을 제물로 기분 좋은 완승을 거뒀다.
기업은행은 표승주가 서브득점 2개와 블로킹 1개를 포함해 14득점을 올렸고 미들블로커로 출전한 김현정과 최정민도 7개의 블로킹을 합작하며 높이를 지배했다. 그리고 기업은행은 지난 4월 FA시장에서 2년9억 원을 투자해 아웃사이드히터를 보강했는데 그 선수가 이적 후 첫 경기부터 팀 내 최다 득점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국가대표 표승주를 제치고 39.32%의 높은 공격 점유율을 책임지며 17득점을 기록한 '밍키' 황민경이 그 주인공이다.
▲ 4년 동안 현대건설의 주장을 역임했던 황민경은 지난 4월 기업은행과 2년 총액 9억 원에 계약했다. |
ⓒ 한국배구연맹 |
프로 스포츠에서 이적 없이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보낸 사람을 '원클럽맨'이라고 한다. 축구의 라이언 긱스, 프란체스코 토티, 농구의 팀 던컨, 고 코비 브라이언트, 야구의 칼 립켄 주니어, 송진우 등이 대표적인 원클럽맨에 해당한다. 원클럽맨은 구단에 대한 충성도와 애정이 강하고 오랜 기간 리그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겸비한 선수만 가능하기 때문에 팬들에게도 신뢰도가 매우 높다.
배구에서는 실업배구 시절까지만 해도 입단한 팀에서 은퇴를 하는 게 당연했지만 V리그 출범 후에는 FA제도와 트레이드가 활성화되면서 원클럽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만큼 프로에 데뷔한 선수가 한 구단에서만 선수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배구여제' 김연경의 경우 2005년부터 현재까지 흥국생명에서만 활약하고 있지만 12년의 해외리그 생활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원클럽맨'으로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따라서 현재 V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원클럽맨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양효진을 꼽을 수 있다. 2007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현대건설에 입단한 양효진은 지금까지 16시즌 동안 프로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현대건설을 떠난 적이 없다. 물론 김연경이 해외에서 활동하던 시절 V리그에서 9년 연속 '연봉퀸'을 차지했을 정도로 구단에서도 대우를 잘해 줬지만 팀에 대한 양효진의 애정과 의리가 없었다면 한 팀에만 머무르긴 결코 쉽지 않았다.
2010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기업은행에 지명돼 기업은행의 창단멤버로 활약한 김희진도 박정아와 채선아 (이상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최은지(GS칼텍스 KIXX) 등 입단동기들이 팀을 떠난 상황에도 꾸준히 기업은행을 지키고 있다. 지금도 많은 배구팬들이 '기업은행=김희진'을 떠올릴 정도로 10년 넘게 팀의 간판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 2월 무릎수술을 받은 김희진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총액 3억5000만원에 기업은행과 1년 계약을 체결했다.
반면에 GS칼텍스의 부주장 유서연은 만24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벌써 여러 번 팀을 옮겼다. 2016년 흥국생명에 입단한 유서연은 루키 시즌이 끝난 후 FA 김해란 리베로(흥국생명)의 보상선수로 KGC인삼공사로 이적했다가 오지영 리베로(페퍼저축은행)와의 트레이드로 곧바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지난 2020년 5월 다시 트레이드를 통해 GS칼텍스로 팀을 옮겨 현재까지 GS칼텍스에서 활약하고 있다.
▲ 황민경은 기업은행 이적 후 첫 공식 경기에서 팀 내 가장 많은 17득점을 올렸다. |
ⓒ IBK기업은행 알토스 |
2008년 도로공사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황민경도 올해까지 4개 팀을 옮겨 다녔을 정도로 이적이 비교적 잦은 선수다. 도로공사에서 8시즌을 보낸 황민경은 2015-2016 시즌 데뷔 후 최고 성적(30경기266득점)을 올린 후 FA 배유나(도로공사)에 대한 보상선수로 GS칼텍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황민경은 2016-2017 시즌 GS칼텍스에서 30경기에 출전해 270득점을 올리는 쏠쏠한 활약을 선보인 후 FA자격을 얻었다.
황민경은 2017년 5월 현대건설과 계약기간 3년, 연봉 1억3000만원에 FA계약을 체결하며 3번째 팀으로 이적했다. 그리 만족스러운 계약조건은 아니었지만 아웃사이드히터가 부족한 현대건설에서는 황민경이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황민경은 현대건설 이적 후 6시즌 연속 100세트 이상을 소화하며 현대건설의 핵심 선수로 꾸준히 활약했다. 여기에 뛰어난 리더십으로 2019년부터 4년 연속 팀의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황민경이 활약한 6시즌 동안 현대건설은 선두를 달리던 시즌에 두 번이나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되는 불운을 겪었다. 지난 시즌에는 외국인 선수 야스민 배다르트(페퍼저축은행)의 부상 이후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는 아픔도 경험했다. 하지만 황민경은 지난 시즌 34경기에서 41.82%의 리시브 효율과 함께 266득점을 올리며 제 역할을 톡톡히 했고 지난 4월 2년9억 원의 조건에 기업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황민경이 기업은행으로 이적할 때 기업은행의 맏언니 김수지가 흥국생명으로 팀을 옮기면서 황민경은 졸지에 기업은행의 최고참 선수가 됐다. 하지만 황민경은 30일 흥국생명과의 컵대회 첫 경기부터 김호철 감독이 기대했던 활약을 선보이며 기업은행의 첫 승리를 견인했다. 황민경은 팀 내에서 가장 많은 39.32%의 공격 점유율을 책임지며 17득점을 올렸고 43.75%의 안정된 리시브 효율과 세트당 4.67개의 디그로 수비에서도 크게 기여했다.
황민경은 지난 2008년 데뷔 후 프로에서 15시즌을 보냈지만 도로공사 시절 한 차례 챔프전 준우승과 현대건설 시절 두 차례 정규리그 우승 경험만 있을 뿐 아직 챔프전 우승 경험은 한 번도 없다. 사실 이번 시즌에도 기업은행을 우승후보로 분류하는 배구팬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황민경이 가세한 후 불안하던 현대건설의 전력이 안정을 찾은 것처럼 기업은행 역시 이번 시즌 공수에서 두루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황민경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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