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사는 내가 고른다"…통념 깨부순 日회사서 벌어진 일 [세계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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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맞지 않는 상사와 무리해서 같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일하고 싶은 상사는 내가 정한다”
'상사와 부하의 배정은 윗선이 한다'는 통념을 깬 일본 회사가 최근 현지 매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부하가 상사를 고르는 일명 '상사 선택제'를 도입한 이 기업은 4년 만에 이직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수직적인 직장 문화에 익숙한 일본 회사원 사이에서는 관련 뉴스에 "부럽다", "대리 만족했다"는 평이 나왔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상사 선택제를 운영해 화제가 된 기업은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에 있는 사쿠라 구조라는 설계회사다. 2006년 설립돼 빌딩·아파트 등 건물 내진 설계를 전문으로 한다.
매년 3월 이 회사 직원 약 100명은 '반장 활용 매뉴얼'이란 50페이지의 책자를 받는다. 이 책자엔 상사(반장)가 자신의 업무 스타일을 소개한 표가 들어있다. "공정관리에 자신 있다", "부하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 스타일" 등 질문에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 아니다(X)로 표시돼 있다.
직원들은 표와 함께 사장, 다른 사원에게 받은 평가서까지 들어있는 책자를 참고해 1·2지망을 적은 인사 희망서를 낸다. 그리고 3개월 뒤인 6월부터 자기가 고른 상사와 일하게 된다. 현재까지는 1지망으로 써낸 상사에게 100% 배정됐다고 한다.
제도가 시행된 이후 이 회사의 이직률은 크게 낮아졌다. 제도 시작 전인 2018년 6월~2019년 5월 11.3%에서 제도 시작 뒤에는 5.4%로 내렸고 2022~2023년에는 0였다.
사쿠라 구조의 다나카 신이치(田中眞一) 사장은 "스스로 업무 환경과 상사를 고른 것이니 선택한 사람 책임도 크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입사 3년 이내의 신규 대졸 취직자의 이직률은 31.5%다. 이를 고려하면 '퇴사자 제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올해 이 회사는 이직 정보업체 리쿠네비 넥스트가 기업 문화를 개선한 업체에 주는 '굿 액션어워드'를 받았다.
상사들 “아무도 선택 않으면 어쩌나”
요미우리에 따르면 다나카 사장이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된 건 4년 전인 2019년이었다. 2018년 젊은 직원 한 명이 회사를 떠나면서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고 한다.
다나카 사장은 "그 직원은 상사와 업무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만뒀는데 상사 때문에 부하직원 경력이 강제 리셋된 느낌을 주게 되어 정말 미안했다"고 회상했다. 이를 계기로 다나카 사장은 어떤 상사에게 가야 직원이 희망하는 기술을 배우고 커리어 패스를 닦을 수 있을지 회사가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한다.
회사 내부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커리어에 맞춰 상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는 반응이 나왔다.
다마나하 유이치(玉那覇祐一)는 3년 전 야마모토 겐스케(山本健介) 제3설계실장(반장)을 택해 제3 설계실로 왔다. 그는 "전에 모셨던 분이 싫어진 건 아닌데 계속 같은 상사를 모시기보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 싶어서 상사를 바꿨다"면서 "우리 회사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다"고 소개했다. 2017년 입사해 현재 야마모토 반장 아래서 일하고 있는 가도타 다비토(門田太陽人)는 "스스로 상사를 고르기 때문에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부하들의 선택을 받아 반장직을 유지하게 된 상사도 과거보다 책임감이 높아졌다고 했다. 올해 부하 15명의 선택을 받은 야마모토 반장은 "솔직히 매년 날 선택할 부하가 없을까 봐 불안하기도 하지만, 지명받으면 책임감이 들고 자신감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부하의 의사를 전적으로 반영하다 보니 상사가 선택을 받지 못한 경우도 나왔다. A 반장의 경우, 단 한 명에게도 선택받지 못해 팀이 해체됐다. 그렇다고 A가 회사를 관둔 건 아니다. 그는 반장 타이틀을 떼고 사장 직속 부하가 되어 관리직이 아닌 현장 업무에 투입됐다. 다나카 사장은 "상사로 일할 때보다 더 생기 넘치게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제도를 만든 다나카 사장도 매년 부하의 선택을 받는다. 올해는 총무 부문을 포함해, 30명의 '직속 부대'를 이끌고 있다. 그는 "사장만 예외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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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회사원 79% "상사 때문에 회사 그만두고파"
사쿠라 구조의 상사선택제가 주목을 받은 이유로 요미우리 신문은 상사와의 관계가 일본 직장인의 큰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인사종합컨설팅회사 벡터가 올해 초 직장인 500명을 조사한 결과, 상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고 답한 사람은 79%였다. '지금 상사를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좋지도 싫지도 않다'가 44%, '싫다'가 40%였다. '좋다'는 16%에 그쳤다.
인재육성 컨설팅회사 '시키가쿠'의 아리테 게이타(有手啓太) 수석 컨설턴트는 "상사가 부하에게 선택받고 싶다는 향상심이 생길 수 있고, 상사 간에 (선의의) 경쟁도 기대된다"면서 "젊은 인재 채용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사쿠라 구조에 대한 관련 기사에 일본 네티즌 사이에선 "상사가 부족한 점을 직원들에게 공개하는 점이 좋다"는 반응과 "부하의 사랑을 받는 상사가 항상 좋은 성과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상사 인기투표가 되어선 안 된다"는 의견이 함께 나왔다.
다나카 사장은 신문에 "직원 의욕과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으면, 고객을 만족하게 하기도 어렵다"면서 "회사의 원동력인 직원에게 충분히 동기 부여가 되는 업무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른 업체가 유사한 제도를 운용한다면 직원 수가 50명 이상, 상사가 4~5명은 돼야 좋을 것이라는 귀띔도 잊지 않았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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