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주호민 논란 속 혐오

조민영 2023. 7. 31. 04:0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온라인뉴스부 기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온라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유난한 민낯을 계속 접하게 됩니다.

익명의 공간 특성상 공격성이 더 과장돼 있을 것이라고, 일부 목소리가 과잉대표 된 것이니 우리 사회가 다 그렇진 않다고 생각해보지만, 점점 현실과 동기화되는 것 같아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후자는 사회적인 폭력이 되는 혐오이기 때문입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온라인뉴스부 기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온라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유난한 민낯을 계속 접하게 됩니다. 익명의 공간 특성상 공격성이 더 과장돼 있을 것이라고, 일부 목소리가 과잉대표 된 것이니 우리 사회가 다 그렇진 않다고 생각해보지만, 점점 현실과 동기화되는 것 같아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최근 학교 현장을 둘러싼 이슈를 다루면서는 특히 그랬습니다.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고, 한 초등 교사는 끝내 세상을 등졌는데 그 뒤에 이른바 ‘진상’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있었다는 잇단 뉴스들은 그 충격만큼 반응이 거셌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웹툰 작가 주호민이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사실은 삽시간에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학부모 갑질이 논란인 시점에 유명인이기까지 한 이들 부부가 자폐가 있는 아들이 문제 행동을 해 학교폭력 사안이 되고도 피해 아동 측에 사과를 거부하고, 아들에게 녹음기를 들려보내 교사 녹취를 했다고 알려지자 거침없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주호민을 비난한다는 명분하에 장애가 있는 어린아이를 향한 명백한 혐오를 드러내는 반응이 만연하다는 점입니다. 자폐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교사 폭행 사건 등과 연결 지으며 “장애가 있다고 봐주니 이런 상황이 됐다” “특수 아동을 왜 분리하지 않아 불의의 피해자를 만드냐” 등의 발언이 곳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보입니다. 차마 재인용할 수 없는 댓글은 수두룩합니다. 무서운 것은 이런 반응이 정당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가해자를 보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잘못에 대해 분노하는 것과 ‘그런 아이들’로 구분지어 배제하는 것은 명백히 다릅니다. 후자는 사회적인 폭력이 되는 혐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위해 헌신하고도 고소당한 교사가 겪었을 아픔과 분통에 공감하고, 피해를 보았거나 볼지 모르는 다른 아동을 걱정하고, 잘못된 상황을 고쳐 잡겠다는 ‘정의감’이 장애가 있는 어린아이를 노골적으로 혐오해도 된다는 권리는 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런 비난에 동참하는 목소리에 학부모로 보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아픔을 공감하기보다 ‘그건 당신들의 불행’이라고 선 긋고, 우선은 내 아이가 피해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내 아이가 피해 보게 둘 수 없다는 마음은 자기 아이만 지키겠다고 해서 비난받은 주호민 부부의 태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내 아이를 보호하겠다고 다른 아이를 향한 사회적 폭력을 용납한다면 누구든 다시 그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상대를 향한 쉬운 비난엔 섣부른 확신이 깔려 있습니다. 장애가 있고 없고를 떠나 ‘내 아이는,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나는 저렇게 행동하지 않아야지’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과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건 다른 얘기입니다. 쉬운 갈라치기와 확신, 비난과 혐오가 우리가 그렇게 욕하고 있는 진상의 시작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를 푸는 것도 ‘내가 내 아이를 모를 수 있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과 ‘내 판단이 잘못됐을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자기 의심이 시작일 겁니다. 이 글을 쓰며 경어체를 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려움이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사회 속에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가족이 이런 상황에서 상처받거나 위축되지 않길 바라는 목소리가 있다는 걸 전하고 싶습니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