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배제의 노키즈존에서 공존의 대한민국으로
일부 아이의 행동 문제 삼아
모든 아이와 부모 출입 제한
하는 건 약자에 대한 차별
아이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곳에선 아이가 행복할 수 없고
이런 사회에서 부모가 아이
낳을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아동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변화시킬 때 아동 존중 사회가
될 수 있고 저출생 국가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어
호주 골드코스트의 슈퍼마켓 입구에는 ‘어린이들, 언제나 즐기세요’라는 팻말과 함께 싱싱한 과일이 한가득 담긴 커다란 광주리가 있다. 아이들은 언제라도 거리낌 없이 사과, 오렌지, 바나나와 같은 과일을 먹을 수 있다. 물론 모두 무료다. 슈퍼마켓에서는 팔다 남은 자투리가 아니라 싱싱한 과일을 제일 먼저 광주리에 담아둔다. 사회가 어린이를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반면 한국에서 어린이를 동반하고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려면 문 앞에 ‘노키즈존’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린이 출입을 제한하는 ‘노키즈존’은 전국에 542곳에 이르며 이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아이는 어떤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을까?
노키즈존은 과연 일부 상점만의 문제일까? 이런 행태가 지속된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노키즈존이 돼 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해 유기된 출생 미신고 아동들, 유아 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다니며 학습 노동에 내몰리는 아이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위반 차량에 죽거나 다치는 아이들은 사회에서 존중과 환대를 받고 있는가?
아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만 봐도 우리 사회가 아동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동권리를 침해하거나 어린이를 차별하는 용어로서 ‘O린이’ ‘잼민이’ ‘OO충’ 등이 다수 언급됐다. 이는 우리 사회 전체가 노키즈존으로 퇴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카페나 식당의 업주는 아이들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 위험을 줄이고 싶고, 어른들은 휴식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어른이 소란스럽게 굴거나 술주정을 부린다고 입장을 거부하진 않는다. 일부 아이의 무례한 행동을 문제 삼아 모든 아이와 부모의 출입을 제한하는 건 약자에 대한 차별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히 잘할 수는 없다. 이제 막 세상 규칙을 배워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입장을 고려해 행동을 조율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한 아동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모뿐만 아니라 주변의 관심과 배려, 일관되고 반복된 교육이 필요하다. 아동들이 특정 공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기 쉬운 언어, 그림, 동영상을 사용해 아동 눈높이에서 쉽게 설명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면 아이일지라도 참을 수 없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오롯이 가정 안에서 아이들의 미숙함을 보완하기를 종용할 뿐 아이들의 성숙을 위해 사회공동체가 함께하는 데에는 인색하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지만, 노키즈존은 마을이 양육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아동은 가정 안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일상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 안에서 성장한다.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기 전에 출입을 완전히 금지시켜 버린다면 아동은 결코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없다. 이는 또 다른 ‘노OO존’으로 변형돼 나와 다른 누군가를 낙인찍고 무시해도 상관없으며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배제시키는 것을 배우게 될 뿐이다. 어린 시절 주변의 존중과 배려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 성인이 돼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아동들의 미숙함은 성인의 성숙을 시험하기 때문에 관용적인 어른이 되기 위한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혹시 공공장소에서 아동의 소란에 화가 난다면, 분노는 잠시 내려두고 나도 언젠가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포용하려고 노력해 보는 게 어떨까. 혹은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많은 어른들의 배려 속에서 커왔음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아이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저출생 시대가 도래한 지금, 노키즈존의 확산과 아동을 비하하는 표현은 육아의 어려움을 강조해 자녀를 갖는 것을 한층 꺼리게 만들 뿐이다. 아동권리에 대한 인식은 낮고, 아이들을 위한 공간과 정책에 대해선 인색하면서 저출생 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키즈존’ 국가에서 아이가 행복할 수 없고, 아이가 불행한 사회에서 부모는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인구 소멸은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가 아동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변화시킬 때 대한민국은 아동을 혐오가 아닌 존중으로, 적대가 아닌 환영하는 사회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으며, 저출생 국가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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