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2001년 이후 최고점 美 기준금리, 상당 기간 유지 가능성
경기침체 등 여파 더 올릴 수도 없어
우리 정부 대책 없어 美만 바라봐
자산운용 좀 더 차분한 접근 필요
지난주 미국 기준금리가 0.25% 포인트 올라가 5.5%가 됐다.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금리인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여기고 있다. 연말까지 0.25% 포인트 정도 더 오를 수 있겠지만, 그러고 나면 금리는 바로 하락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 물가가 여전히 불안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비록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월에 3%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목표인 2%와는 아직 거리가 있기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듯 미국 내에서 금리 향방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급한 곳은 미국 밖에 있다.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미국과는 달리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의 경기 회복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싶지만 미국 금리가 요지부동인데도 용감하게 금리를 내릴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그런 나라가 있기는 했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얼마나 어려우면 그랬을까 하는 의심만 높일 뿐 기대한 부양효과는 없었다.
결국 미국이 금리를 내려주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우리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는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굴뚝 같지만 재정 지출은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이어서 금리가 하락하기만을 기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지난주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공통된 발언, 즉 앞으로 나올 데이터를 보면서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말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물가가 안정 궤도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현재의 금리가 죽 이어질 것 같다.
작년 3월 이후 연준은 11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올렸다. 이렇게 금리를 빠르게 올린 이유는 한마디로 경기를 꺾기 위함이었다. 금리를 높여 사람들이 소비보다는 저축을 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수요가 줄어든다면 물건값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물가상승세는 둔화됐지만 그 속도는 생각보다 더뎠다. 아마도 글로벌 가치사슬 약화와 미·중 갈등 같은 반(反)세계화의 영향일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의 고용시장은 사람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열되고 있다. 이러니 물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상승률(6월 4.4%)이 소비자물가 상승률(3%)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경기가 좋다.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같은 혁신기술이 등장하면서 기업 투자가 느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덕분에 금리 인상으로 수요 저감을 노렸던 금융정책은 뜻밖의 실패를 맛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금리를 계속 올릴 수도 없다. 금리가 이미 역사적 고점에 다다른 데다 장단기 금리 역전과 같은 경기 침체 신호가 계속되고 있어 시장이 매우 예민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천하의 연준이라도 조심스러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 공연히 금리를 내렸다가(혹은 올렸다가) 물가가 다시 불안해지기라도(경기가 급랭하기라도) 한다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 테니 말이다. 다행히 경기는 연착륙될 것 같으니 연준은 금리 조정은 가급적 뒤로 미루면서 코로나 시기에 엄청나게 풀렸던 돈을 거둬들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지금도 매달 950억 달러(약 120조원)의 유동성을 회수하고 있는데 이런 조치가 물가목표 달성 시기를 앞당길 것임은 자명하다.
미국이 행복한 고민을 하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고물가와 경기 부진이라는 두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반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원부자재 가격이 상승해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데다 미국 금리 인상에 발맞춘 고금리 때문에 경기 역시 저조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물가 안정이 성장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하지만 국가별 여건에 따라 그 우선순위는 얼마든지 바뀐다. 특히 선거를 앞둔 국가라면 경기 회복은 지상과제가 된다. 이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준비가 돼 있는데, 보통은 재정 확대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재정 지출 증대를 아예 정책 대안에서 제외한 나라들은 금융 완화에 기댈 수밖에 없다. 금리 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이 대표적인 방안이지만 미국 금리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데 이를 거스르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자칫하다가는 경제 위기를 맞을 수도 있기에 이를 에두르는 방법을 찾게 된다. 예를 들면 감독 당국을 통해 시중금리 인하를 유도한다든지, 제도개선이라는 미명하에 대출 한도를 늘리는 것 등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임시방편은 대부분 말로가 아름답지 않다. 경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신뢰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고통스럽더라도 물가 안정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데 문제는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가상승률은 현재의 물가 수준을 1년 전의 물가로 나눠 계산한다. 즉 금년에 물가가 많이 올랐어도 작년에 더 많이 올랐다면 물가상승률 자체는 낮게 나오게 된다. 시장에서 느끼는 피부물가가 언론에 보도되는 지수물가보다 훨씬 높은 이유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지수물가도 더 이상 빠르게 내려올 것 같지 않다. 작년 하반기부터 물가 오름세가 본격적으로 둔화됐기에 기저효과가 희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물가목표가 바로 코앞에 있지만, 달성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임을 시사한다. 지난주 파월 연준 의장은 올해는 물론이고 심지어 내후년까지도 물가상승률이 목표에 도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발언했는데, 이를 염두에 둔 말이라고 봐도 좋다. 따라서 기준금리는 바로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곧이곧대로’를 좋아하는 중앙은행 사람들이 물가목표가 달성되지도 않았는데 금리를 인하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금리는 개마고원처럼 높은 수준이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자산운용에 있어서 보다 차분한 접근이 바람직하다. 고금리로 유혹하는 예적금이나 변동성 높은 주식 투자에 막차 타듯이 급하게 올라탈 이유가 없어 보인다.
안희욱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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