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기후 위기 대처,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2023. 7. 3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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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의 원인으로 기후위기를 지목한 이는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다. 야생동물들이 기후 재난을 피하려 인간 가까이 다가왔고, 바이러스가 함께 이동했다는 주장이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 지카, 그리고 코로나19가 그 사례들이었다는 거다. 코로나19 이후 어떤 새로운 ‘바이러스 폭풍’이 언제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기후위기가 해결되지 않는 한 비규칙적 바이러스 폭풍은 계속될 것이다.

점증하는 기후위기와 반복하는 금융위기는 위험이 지구화한 대표 현상들이다.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위험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세계화한 위험은 ‘불안의 세계화’를 낳고 또 부추긴다. 국민국가에서의 ‘각자도생(各自圖生)’과 지구사회에서의 ‘각국도생(各國圖生)’은 21세기 불안의 두 겹을 이루고, 21세기 글로벌 위험사회는 ‘이중적 불안’에 대응하는 ‘이중적 도생’이라는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 기후위기는 ‘글로벌 위험’ 현상
변화에서 파국으로 가는 길목
‘위험의 바깥’은 존재할 수 없어
기후 행동, 미래 아닌 현재 과제

올 여름 지구적으로 관찰할 수 있듯, 기후위기는 점점 더 두려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구는 외적 충격으로 인한 불안정한 상태를 스스로 복원할 수 있는 복잡 시스템이다. 문제는 이 지구의 자동조절 시스템이 교란되어 기후위기가 급격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폭염·홍수·태풍·산불·한파 등의 기상 재난, 생물다양성 감소, 미세먼지 증가에 따른 대기 악화, 주요 식량 생산 감소 등의 생태 위기가 생생히 펼쳐지는 시대를 우리 인류는 살아가고 있다.

기후위기에 내재한 특징 중 하나는 ‘위험의 불평등’ 현상이다. 생태 위기가 국가·계급·세대에 따라 불균등한 영향을 미치듯, 기후위기는 빈곤한 나라의 국민, 하층계급, 독거노인이나 미취학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폭염은 평등하지 않다. 어떤 집은 방마다 에어컨이 있고, 어떤 집은 거실에만 에어컨이 있고, 어떤 집은 선풍기로만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누구도 기후위기를 피할 수 없지만 그 결과는 불평등하다.

기후위기가 인류 모두의 삶의 터전인 이 지구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도 그 대처는 여전히 현재가 아닌 미래 과제로 설정된다.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들은 미래에 얻을 보상보다는 현재 갖게 될 이익을 우선한다. 한 나라가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할 때 다른 나라는 외려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무임승차’ 또한 도사리고 있다. 지구적 현상인 만큼 글로벌 거버넌스가 작동돼야 함에도 그 실현에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기후위기의 정치학이다.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심리도 문제다. 기후위기 논쟁에서 온실가스와 기후위기 간의 관계 못지않게 주목할 이슈는 심리적 편향을 위시한 가치와 이념이다. ‘그런 거창한 문제는 나중에 이야기하자’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 기후위기 현실을 무시하려는 심리적 태도는 기후위기 대처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기후위기가 먼 곳의 사람들에게 닥칠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현재의 위기라는 인식이 중요한 이유다. 기후위기의 심리학이다.

기후위기는 정치적 결단을 통한 행동을 요구한다. 기후 행동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재적 과제다. 정치학자 정진영은 이 기후 행동의 방향을 세 갈래로 정리한 바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소, 배출한 온실가스를 포집해 매장하는 등의 방법을 통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의 약화,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태양열 에너지의 부분적 차단의 해법이다.

이러한 기후 행동에서 정부·시민사회·개인의 역할 모두 중요하다. 정부 차원에서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확대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과 이 과정에서 소득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그린 뉴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전문가그룹과 시민단체의 활동이 기후위기 대응의 계몽과 실천에 기여할 수 있다. 개인 차원에서는 기후위기 현실에 민감한 세계시민이 되는 동시에 기후 행동에 대한 의식을 가진 현명한 소비자가 돼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에도 ‘온난화(warming) 시대는 끝났고 열대화(boiling) 시대가 시작했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인도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고, 지중해 연안은 곳곳이 불타오르고, 시베리아 동토가 녹아 미지의 바이러스들이 깨어나 새로운 팬데믹이 시작할 수 있다. 더하여 기후위기가 식품 물가를 올리는 ‘기후플레이션’의 위력이 앞으로 커질 것이다. 기후가 변화에서 위기로, 다시 파국으로 가는 도정에 우리 인류가 대단히 위태롭게 서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아름다운 행성 지구는 기성세대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다음 세대와 그 아이들이 살아갈, 하늘 아래 모든 존재가 살아가야 할 공유물이다. 다음 세대와 그 아이들에게 위기의 지구를 이대로 물려줄 순 없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려는 기후 행동은 낭만주의적 충동이 아니라 현실주의적 실천이다. 이 뜨거운 여름이 다 가기 전 누구나 숙고하길 바라는 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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