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 절감의 함정… 대기업 아파트도 '두부' 빚듯 시공 [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건축 전문가 4인이 보는 부실 공사의 뿌리
"언젠가 터질 일이 터졌다" 반응
■
「 HDC현산·GS건설, 부실 충격
건설현장의 오랜 문제점 터져
단가 후려치기 관행 사라져야
"레미콘에 물 타는 경우도 많아"
설계·감리·시공 등 시스템 부재
곳곳에 흩어진 관련법 정비를
」
용기 있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할 건설 분야 전문가 4명을 수소문했다. 건설품질기술사회장·건축시공학회장 등을 지낸 콘크리트 전문가 한천구(70) 청주대 건축공학과 석좌교수, 대우건설을 시작으로 42년째 건설업에서 일하고 있는 이희석(68) 건축기술인회장, '국내 여성 1호 토목기사'로 대림엔지니어링을 거쳐 2000년 창업해 23년째 건설업을 경영하는 손성연(63) CNC종합건설 대표, 그리고 한국콘크리트학회장을 역임하고 대한건축학회장으로 활동하는 최창식(61)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다.
대형 건설사들의 부실시공 사건에 대해 "언젠가 터질 일이 터졌다"라거나 "엔지니어를 홀대하고 비용 절감만 외치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건설 업계에 퍼져 있다고 한다. 대형 사고가 났는데도 최고경영자들이 자리를 지키는 행태는 후안무치라는 비판도 있다.
-대기업 부실시공을 어떻게 보나.
▶한천구 교수=두 건설사의 대형 사고는 여러 문제와 나쁜 상황이 겹쳐서 발생했다. 광주의 경우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동바리를 받치지 않았고, 무단 설계 변경이 있었고, 강풍 불고 눈 내리는 날에도 공사를 강행했다. 인천의 경우 돈을 아끼려고 전단 보강근을 고의로 빼먹었다기보다 설계·시공 과정에서 체크하지 못했고, 무너진 주차장 부분만 콘크리트 강도가 주변보다 낮았다. 이런 문제는 모든 건설사가 안고 있는 과제다.
▶이희석 회장=대형사고의 일차적 책임은 해당 건설회사에 있겠지만, 건설산업의 총체적 위기이며 모두의 책임이라 본다. 지난 70여년간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건설산업이 경제적·환경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다. 건설산업 관련자들이 산업의 본분과 기본을 잊은 채 살아왔다. 인적·물적 자원에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무사안일해 온 결과다.
기본을 무시한 총체적 난맥상
▶손성연 대표=발생해서는 안 될 어처구니없는 결과이지만,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이란 점이 더 큰 문제다. 건설 현장의 총체적 난맥상의 결과다. 건설현장에서는 시공사가 모든 책임을 안고 가는 형국이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건설 참여 주체인 설계·감리·시공 과정에서 전반적 시스템이 부재하다. 기본을 무시한 공사 관계자 모두의 책임 의식 부재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최창식 교수=최근의 건설사고는 설계·시공·감리·하청은 물론 공기와 안전 확보 비용, 정책 등 복합과실로 드러나고 있다. 사회적 요구에 따라 건축물의 요구 성능, 시공 방법이 점점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획 단계부터 시공 과정은 물론 입주 이후 유지 관리까지 모든 절차에 대해 단계별로 차근차근 문제가 터지지 전에 예방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아파트조차 '두부 부스러기'처럼 부실할 수 있나.
▶한천구=2022년도에 개정된 콘크리트 표준시방서의 배합설계 부분을 보면 내구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내구연한에 맞는 설계를 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일본은 레미콘의 평균 압축강도가 36.0MPa 전후인데 한국은 24.0MPa 전후다. 하루속히 수명을 늘리는 설계를 도입해야 한다. 국가 규정을 정비하고 설계대로 성실히 시공하고 철저한 감리·감독해야 한다. 레미콘의 경우 5층 건물 정도에 콘크리트를 펌프로 압송하던 옛날 방식을 지금 30~50층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현장 실무자들이 레미콘에 물을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레미콘은 내구재라 품질이 중요한데, 가격을 자유 경쟁에 부치니 품질을 깎아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나치게 단기간에 공사를 마쳐야 하니 양생을 충분히 할 수 없어 제대로 된 품질을 낼 수 없다. 일본에서 시행하는 공동판매 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공사 기간 무리한 단축도 심각
▶손성연=건설업계에서 수십 년 일한 경험으로 보면 시공 여건이 어떠냐에 따라 공사의 완성도가 정해진다. 예를 들면 공동주택의 경우 토공사는 토질·기상·민원 등에 의해 예측을 벗어날 때가 빈번하지만, 현장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 도면의 문제, 저가로만 시공하기 위한 건설 단가 후려치기,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 요구 등이 현장의 부실시공을 양산하는 원인이다.
-정부 정책이나 법에는 문제가 없나.
▶이희석=국가 조달시스템이 가격 중시에서 가치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 건설산업의 생태계를 선진화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되자 처벌 회피용 서류 작성에 시간을 쏟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교통사고처럼 사용자와 근로자 쌍방의 과실을 묻고 산재 보상을 그것에 맞게 처리하면 재해가 50%는 감소할 것이다."
▶손성연=건설과 관련된 법과 제도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 건설사들이 모두 지키기가 벅찬 것이 현실이다. 건설 안전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의 건설기술진흥법,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법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런 법들이 명확해 보이겠지만, 법을 지키는 입장에서는 제정된 법들의 유사성과 복잡성 때문에 일일이 확인하고 지키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법과 제도를 통폐합해 명확한 기준이 제시돼야 현장에서 준법을 담보할 수 있다.
개발 위주 속도전의 부작용
▶최창식=1962년 건축법이 제정된 이후 영광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개발 위주의 속도전에 따른 건설사고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건축계 전반을 다루고 있는 건축법 관련 제도들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건축안전강화특별법’ 제정과 함께 국토교통부에 ‘건축도시안전청’ 설립도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건축물의 생애주기에 걸쳐 발생 가능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각 분야 전문가들로 '범건축물 안전 강화 특별위원회' 같은 특별기구를 만들면 좋겠다.
-건설사들은 돈벌이에 혈안이고, 건설노조의 '건폭'도 심각하다.
▶이희석=일본 등 건설 선진국은 공사 기간 단축과 생산성 증대를 위해 건설 로봇 작업, 모듈러, 건설 DX 추진 등 다양한 혁신적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건설 현장은 양대 노총을 상대하기가 버거워 기업들이 혁신의 동인을 상실하고 있다. 국토부 산하에 건폭 대책본부를 앞으로 총리실로 옮겨 국가 차원의 정책 지속성을 천명하길 기대한다.
▶손성연=건설 현장을 보면 공정 전반에 걸쳐 주체별로 권한과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일부 건설노조의 경우 자신들의 권리만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타워크레인 점거와 불법 시위를 바라보는 국민은 건설 현장에서 안전을 등한시한다고 여기기 쉽다. 이 때문에 건설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커진다.
-우수 인재가 건설 현장을 외면하고 기존 인재의 유출 현상도 심각하다. 건설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시대 맞게 건축교육 개혁 시급
▶이희석=대학 건축 관련 학과는 신입생 지원이 크게 줄었다. 건축 교육의 대혁신을 논의해야 한다. 건축학과와 공학과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학과로 재편해야 한다. 융합교육을 위해 건축 ICT학과, 건축재료 사이언스학과, 건축금융학과, 디벨로퍼학과 등으로 개편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재건 공사 참여 등을 위해서는 우리 건설업이 혁신을 통해 제2의 도약에 나서야 할 텐데.
▶손성연=2021년 기준 한국 기업의 해외 시공 매출액은 세계 5위 규모다. 해외사업에서는 안전관리 우수기업으로 외국 정부로부터 상을 받으며 좋은 이미지를 얻었는데 국내에서는 동일한 기업에 부실시공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건설 사업을 수행하는 환경 차이 때문이다. 잘못하면 벌을 주더라도 평소에는 선진국 건설사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도록 기를 살려 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200만 건설인들의 생업이자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건설산업의 위상에 걸맞은 제도가 절실하다. 민간 부문은 시장 기능에 맡기고 정부는 시스템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공공부문도 공사비 깎기에 매달릴게 아니라 완벽한 시공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면 된다. 기업들도 소명의식을 갖고 임하면 후진국형 사고를 근절해 안전하고 품질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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