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아트풀마인드] IT 전문가가 지은 한옥, 그 새로움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인간은, 놀랍게도, 각자 다른 행복의 기준을 만들고 이루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창의성의 핵심이다. 행복에 대한 권리를 문화와 사회 구성원의 심리적 안녕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을수록 행복권이 신장되었다 할 수 있다. 구성원들이 바라는 바와 그것을 이루는 방식이 다양할수록 창의적인 사회이고, 창의적인 사회는 구성원을 행복하게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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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장 앞둔 강원 영월 한옥호텔
한 사업가의 고집이 이룬 결실
집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 즐겨
행복의 원천은 경쟁 아닌 창의
」
한국이 전쟁을 겪은 지 70년이 지났고, 서울에서 올림픽을 치른 지 35년이 지났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적 성과와 문화적 성장기를 거치면서, 그사이에 나고 자란 사람들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개척해 왔다. 국민학교 학생의 장래희망은 무조건 대통령, 대학교 신입생의 목표는 일단 대학교수로 시작하던 시절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완전한 신세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열망과 도전을 딛고 더 창의적인 세계로 향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에서 ‘남과 다른 것’은 최고의 미덕이다.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발휘해서 만들어낸 작품이 타인에게 공감을 얻어낼 때, 한 사람의 창작물은 그 사회의 문화가 된다.
강원도 영월군에서 다음 달 오픈을 앞둔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는 IT 전문가가 만든 한옥호텔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조정일(61·코나아이) 대표는 자신이 꿈꾸는 공간을 한옥이라는 형식을 빌려 실현하기 위해서 10년 넘게 집을 짓고 있다. 터 잡기, 목재 건조, 공간 설계, 가구 디자인, 운영 매뉴얼 등 모든 것은 온전히 그의 고민과 결정으로 이루어졌다.
주변과 어우러져 한옥의 차경(借景)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양평, 가평, 평창, 홍천을 거쳐 영월에까지 이르렀다. 뒤틀리지 않은 웅장한 공간감을 낼 목재를 쓰려고 건조 시설도 만들었다. 길고 방대한 작업 과정에 함께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공유하기 위해서 3D 구현 프로그램도 익혔다. 주업을 살려서 사용자의 감성에 반응하는 온라인 제어 플랫폼도 설계했다. 호텔로 활용될 한옥 안팎에 세심한 크리에이터의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조정일 대표는 한눈에 보아도 특이한 고집쟁이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의 본업인 디지털 결재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의 눈빛은 매서웠고, 자신이 만든 한옥에 대해 설명하는 얼굴은 완성도에 집착하며 열에 들뜬 예술가 같았다. 자신의 눈에 새겨 둔 물길과 바람길을 집 안팎에서 모든 감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누마루와 창은 물론이고 처마의 각도, 담장과 정원의 높이, 야간 조명 등 어느 하나 쉬 흘려보낸 것이 없다.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없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집을 짓는 일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지만 아주 고되다. 작업자들이 내 맘 같지 않아서다. 건축주에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처럼 자신이 설정한 아름다움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능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조 대표는 설계 회의부터 인테리어 마감까지 한옥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목장들을 참여하도록 설득하였고, 모든 작업자들이 자신과 원팀이 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같은 미적 표준을 만들어갔고, 그렇게 구축된 공간에서 방문자들은 그들이 창조한 아름다움에 공감하게 된다.
미취학 아동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도 창의, 융합, 사고력을 강조하는 시대다. 이런 교육의 가치를 앞세우면서 입시생들을 의대로만 줄 세우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분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꿈을 꾸고, 남다른 목표를 세우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렇게 모두가 도전하고 실현하는 일상의 기쁨을 학습해야 한다. 거기에 익숙해지면 나와 다른 사람을 거부하거나 비난하기보다 존중하고 공감하기가 쉬워진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나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비교나 경쟁이 아니라서 말이다.
신수진 문화예술기획자·한국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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