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플루언서 삶… 쓴맛도 있더라

최예슬 2023. 7. 3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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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셀러브리티’ 김철규 감독
넷플릭스 시리즈 ‘셀러브리티’에서 주인공 서아리(가운데)가 셀럽의 파티에 참석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세상은 열광할 테니.’ 넷플릭스 시리즈 ‘셀러브리티’는 이 한 마디와 함께 시작한다. 유명해지기만 하면 돈이 되는 세계에 뛰어든 주인공 서아리(박규영)가 마주한 셀럽들의 화려하고 치열한 민낯을 그렸다. 인플루언서의 화려하고 반짝이는 삶, 그 이면의 탐욕과 질투, 익명성으로 무장한 공격성을 모두 담은 이 ‘쓴맛’ 드라마는 전세계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셀러브리티’는 지난 12일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TV(비영어) 부문에서 시청시간 1위를 차지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플루언서들은 SNS에서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신의 ‘유명세’로 화려한 삶을 산다. 각종 명품을 홍보하고, 자신의 럭셔리한 삶을 피드에 전시한다.

이 세계에는 엄격한 서열이 있다. 톱급 인플루언서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꾸린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친목을 과시하지만 실상은 서로 끌어내리려고 온갖 음모와 훼방을 놓는다. 이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은 열렬한 찬사를 보낸다. 반면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은 익명성 뒤에서 날카로운 공격성을 보인다.

‘셀러브리티’는 김철규 감독의 첫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리즈물이다. 그동안 드라마 ‘황진이’ ‘대물’ ‘마더’ ‘응급남녀’ ‘공항 가는 길’ ‘시카고 타자기’ ‘자백’ ‘악의 꽃’ 등 다양한 작품이 그를 거쳐 탄생했다. ‘악의 꽃’은 2021년 백상예술대상에서 그에게 TV부문 연출상을 안겨줬다.

넷플릭스 시리즈 ‘셀러브리티’를 연출한 김철규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감독은 ‘셀러브리티’를 통해 SNS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넷플릭스 제공


‘셀러브리티’를 통해 김 감독은 SNS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세상의 모든 사건은 한가지만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면이 있지만 그 이면에 그들이 겪는 부정적 시련들도 있기 때문에 양쪽 측면을 균형 있게 잡아내고 리얼하게 그려내고 싶었다”며 “화려해 보이지만 인플루언서 세계의 명암을 보여주면서 ‘쓴맛’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온갖 명품에, 화려한 파티를 즐기는 셀럽의 삶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으나 마냥 행복하고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평소 SNS와 거리가 멀었던 김 감독은 드라마를 위해 SNS를 ‘공부’했다. 50대 중반인 그에게 SNS는 신세계였다. “피드, 언팔(팔로우를 끊는 것), 라방(라이브방송) 같은 단어를 처음 알게 됐어요. SNS를 모르는 채로 살아도 불편한 건 없는데 저는 대중문화를 하는 사람이잖아요. 수많은 사람이 일상으로 사용하고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나만 모른 체하는 게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작하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져 지는 걸 가장 경계해야 하잖아요.”

그가 직접 해본 SNS는 분명한 순기능도 있었다. 자신이 관심 있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거나 대중의 공분을 살 만한 사건도 실시간으로 퍼진다. 때론 변화를 끌어낸다. 그는 “내가 주로 SNS에서 많이 찾아보는 건 동물들, 자연, 바다 보호 단체, 그린피스 관련한 것”이라며 “정보를 제공하고 이런 활동들이 사회적으로 파급력 있게 하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역기능도 명확하게 느꼈다. SNS에 흘러넘치는 과시욕이 사람들의 관음증을 부르고 익명성에 숨은 이들은 다른 사람의 인격을 죽이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실제로 ‘셀러브리티’에도 인플루언서들의 약점을 쥐고 흔들면서 이들을 괴롭히는 ‘bbb페이머스’(아이디명)라는 인물이 있다. 극의 후반부에 정체가 밝혀지는 이 인물은 극 중에서 가장 논쟁적인 캐릭터다. 김 감독은 “이 드라마에서 다루는 SNS상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탐욕과 질투, 관음증 익명성, 그 뒤에 숨은 무서운 공격성이 모두 응축된 상징적 인물”이라며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라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정체가 밝혀지는 12회의 부제를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나와 당신들’이라고 정한 것도 이러한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온라인 세계에 머무를 때는 대단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잖아요. 무소불위의 능력을 휘두르면서 공격당하는 사람을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아가죠. 그런데 익명성이 걷히는 순간 그 인물은 대단히 평범한 보통의 인물인 거예요. 캐스팅도 그런 느낌으로 인지도가 낮은 배우로 하려고 했어요.”

이번 작품은 김 감독이 그간 해왔던 드라마들과 결이 다소 달랐다. 무게감을 덜어내고, 좀 더 트렌디한 콘셉트를 잡았다. 트렌디하면서 음모와 음해로 인한 ‘막장’스러운 요소가 녹아있는 드라마를 어떤 톤으로 이끌어갈지 주변의 관심이 컸다고 했다. 화면상으론 화려한 톤의 이 드라마에 차갑고 냉혹한 SNS의 어두운 면을 함께 담아내야 했다. 김 감독은 “이청아 배우가 이 드라마를 ‘쓴맛’이라고 했다. 마냥 화려하고 밝기만 하지 않다는 뜻이었는데 그 표현이 좋았다”고 했다.

연출적으로도 쓴맛을 극적으로 보여주려고 여러 장치를 사용했다. 월세 내기도 빠듯하게 사는 주인공 서아리가 인플루언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장면부터 ‘쓴맛’이 극대화됐다. 아리는 자신의 초라한 현실과 전혀 다른 셀럽의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남루한 지하철에서 인플루언서들이 명품을 걸친 피드를 보며 박탈감을 느끼던 그는 자신도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로 결심한다. 김 감독은 이 장면에서 재벌인 한준경(강민혁)이 슈퍼카를 타고 지하철역을 지나쳐 가는 장면을 교차했다. 지하철과 슈퍼카가 나란히 달리는 장면을 연출하며 아리와 준경의 처지를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이번 드라마에는 시청자에게 생소한 배우들이 다수 나온다. 평소 다른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보던 배우들보단 신선한 얼굴들이다. 김 감독은 “너무 익숙한 인물들은 배제해서 전반적으로 새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신인 배우를 발굴해 쓰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언급했다. 도회적인 이미지를 가진 배우나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뽑았다. 주연은 배우 박규영, 강민혁, 전효성 등이었다.

‘셀러브리티’는 현실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때론 드라마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난다. 김 감독은 드라마 속 인물들의 말투, 행동은 리얼리티를 살리되 연출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무엇이든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부분은 대단히 현실적이고 리얼하잖아요. 그에 반해서 드라마다 보니까 사건들이 조금 과장되기도 하죠.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을 많이 했어요. ‘bbb페이머스’가 입만 열면 허언을 하고 쓰레기장인 집에 살면서 밖에 나갈 땐 명품을 걸치는 모습도 과한 설정을 통해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한 거였어요.”

KBS 공채 PD로 입사한 김 감독은 2004년 ‘꽃보다 아름다워’를 메인 연출했다. 이후 올리브나인과 프리랜서 감독 계약을 하고 SBS, tvN, OCN 등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현재는 스튜디오드래곤 소속이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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