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초교에서 벌어진 일... 덴마크가 부럽습니다

선채경 2023. 7. 3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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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로 시사 읽기] 넷플릭스 드라마 <리타>

무엇이든 내가 발 디딘 현실과 연결된다고 믿습니다. 마침표로 끝나는 OTT 시청 말고, 물음표로 이어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선채경 기자]

"책 꺼낼 기분 아닌데요."

나이 많은 문학 교사 에리크는 소심하고 점잖은 성격이다. 소위 말하는 '만만한 선생님'으로, 학생들은 에리크를 대놓고 무시한다. 안드레아스는 '교사 왕따시키기'에  앞장서는 학생이다. 안드레아스의 책상 위에는 교과서 대신 사탕 봉지가 올려져 있다.

안드레아스는 "선생님, 사탕 드실래요?"라고 물으며 에리크의 얼굴을 향해 사탕을 툭툭 던졌다. 학생들은 마치 다트 게임을 구경하는 것처럼 깔깔 웃어댔다. 아무도 안드레아스를 말릴 생각이 없었다. 웃음거리가 된 에리크는 모멸감을 느끼고 교실을 뛰쳐나온다. 안드레아스는 그를 쫓아서 사탕 던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때리지도 못하잖아요. 선생님은 날 못 때려요."

결국 점잖은 교사 에리크도 참지 못하고 폭발한다. 에리크가 안드레아스의 뺨을 때렸을 때,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곧 다가올 시험에 대해 질문했을 뿐인데 뺨을 맞았다"는 안드레아스의 거짓말을 부모는 곧이곧대로 믿고, 에리크를 아동학대로 고발한다. 안드레아스에 의해 몇 달간 시달려 온 교사 에리크는 이제 아동학대 가해 혐의를 받게 됐다.
 
 문학을 가르치는 에리크와 리타. 성격은 정반대지만 좋은 친구이자 동료로 지낸다.
ⓒ 넷플릭스
 
학교를 배경으로 한 덴마크 드라마 <리타 시즌2> 제8화의 내용이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다섯 시즌에 걸쳐 제작되며 오랫동안 사랑받은 드라마다. 덴마크는 '폴케스콜레(Folkeskole)'라 불리는 의무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해당한다.

폴케스콜레 교사인 주인공 리타는 유머러스하면서도 학생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가졌다. 학생들은 리타와 친구처럼 가깝게 지낸다. 하지만 그를 함부로 대하진 않는다. 그런 리타와 에리크는 서로 대비되는 인물이다.

체벌을 금지해서 교권이 추락한걸까

안드레아스는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 아이다. 만만한 에리크는 괴롭히고, 만만하지 않은 리타에겐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격언이 살아있던 옛날을 추억할지 모르겠다. '사랑의 매' 몇 대면 모든 문제가 감쪽같이 사라졌던 그 시절 말이다. 1967년, 덴마크는 학교 내 체벌을 전면 금지했다. 회초리가 부러지면 '교권'도 꺾이는 걸까?

만약 체벌 금지와 학생인권조례, 학부모 민원이 곧 '교권' 추락으로 이어진다는 논리가 옳다면, 덴마크 교사들의 '교권' 수준은 세계 최악이어야 한다. 덴마크 교육 관련 법은 학부모의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 교사, 학부모가 민주주의에 기반한 협력 관계로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학부모 대표는 최소 연 2회 이상 교사 회의에 참여할 법적 권한이 주어진다. 교사의 수업 방식, 평가 방법, 학급 배정, 동아리 활동, 급식, 모든 학교생활에 있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이 관계가 언제나 조화를 이루진 않는다. 법은 학부모의 참여 권한을 강조한다. 교사는 학생의 이익을 최선으로 할 직업적 책무가 있다. 학교는 노동자인 교사에게 안전한 근무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덴마크 드라마 <리타> 포스터
ⓒ TV2
 
만약 학부모가 비상식적인 요구를 한다면? 예를 들면 '교내에선 설탕이 들어간 식품은 전부 금지해 주세요' 같은 요구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리타 시즌1>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설탕이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신념을 가진 학부모가 등장한다. 리타는 "나는 그런 부모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교사가 됐다"고 대응한다).

이때 학교와 교사는 '이중구속'에 빠질 수 있다. 그 요구를 따른다면 교사로서 책무를 저버리게 되고, 따르지 않는다면 학부모 참여를 보장하는 법적 요구를 어기게 되는 딜레마다. 이러한 '이중구속'은 덴마크 교육 정책의 새로운 의제로 떠올랐다.

드라마 <리타>에는 교장 라스무스가 이 딜레마에 빠진다. 라스무스는 노동자인 에리크를 보호해야 할 경영진이기도 하면서, 학부모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고, 무엇보다 학생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한편 안드레아스의 부모는 "교장의 의무는 그 인간을 자르는 것"이라며 강하게 압박한다.

"그 인간이 우리 애를 때렸습니다. 이건 선생을 해고할 사유 아닙니까?"
"네, 해고 사유입니다. 그리고 법률 위반이기도 하죠. 그래서 속단할 수 없어요. 관련 인물과 다 얘기해 봐야 해요."

노발대발하는 학부모 앞에서 교장이 섣불리 사과를 입에 올리거나 굽신거리는 장면은 없었다. 라스무스는 절차와 원칙을 따르되, 에리크가 안드레아스의 부모를 직접 대면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리타는 혼자 남겨진 에리크의 방문을 두드린다.

"안드레아스가 선생님을 괴롭혔다는 걸 제가 증언할게요."

에리크의 지원군이 되겠단 의사를 전한다.

"우리는 전부 선생님 편입니다"

동료들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리크는 스스로 교사를 그만둔다. 그는 오랫동안 몸 담았던 교직을 불명예스럽게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를 도우려 애썼던 동료들 덕분에, 떠나는 마음이 아주 지옥 같진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당장 치유되진 않더라도, 서서히 회복할 힘을 받았을 것이다.
 
 지난 18일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숨진 채 발견된 S초등학교, 고인을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가득하다.
ⓒ 선채경
 
대한민국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은 덴마크의 폴케스콜레에서도 일어난다. 차이는 교사 개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학교 구성원의 지원과 제도에 있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A씨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배경에는 일부 학부모들의 '갑질'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경찰은 동료 교사 등을 참고인으로 불러 사실관계를 조사할 방침이다.

서울교사노조가 24일 공개한 고인의 일기 내용에는 "출근 후 업무 폭탄+(학생 이름)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숨이 막혔다"는 심경이 적혀 있었다.

'도움받을 수 없다'는 느낌, 자살 위험과 연결돼 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22일 '초등교사 비극을 접한 대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회 성명'에서 이렇게 전했다.

"세상 어느 곳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빨리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도움받을 수 없다는 느낌(helpless)'은 자살 위험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같은 날 저녁 방문한 S초등학교는 근조화환으로 빼곡히 둘러싸여 있었다. 전국의 교사들과 시민들이 고인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보낸 것이었다. 추모 공간에는 '교사를 지켜달라'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교사를 지켜야 한다는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해석이 엇갈릴 뿐이다. '체벌 허용'과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곧 교사를 지키는 길이라 풀이하는 주장도 있다.

에리크는 학생을 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가르치는 문학 선생님이었다. 인종차별을 고발한 작품을 사랑한 교사가 '학생에게서 인권을 빼앗자'는 주장에 찬성할까? '체벌 허용'이나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에리크와 같은 교사를 지키지 못한다.

에리크의 모습에 비추었을 때, '교사를 지킨다'는 건 이런 모습이다.

그는 노동자로서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는다. 교사가 학생에 의해 폭행 피해를 보았다면, 학교는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환경청(Arbejdstilsynet)'이 개입할 수 있다. 또한 노동조합을 통해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다. 덴마크 전체 교사의 97퍼센트는 노조 조합원이다.

게다가 에리크는 "선생 말고도 할 일은 많다"고 언급한다. 그에겐 경제활동을 잠시 멈추더라도 다른 삶을 준비할 여유가 있었다.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받을 권리, 동료와 연대할 권리, 일을 놓더라도 삶까지 놓지 않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학교 안 동료들의 정서적 지지, 그리고 학교 바깥에선 제도적 지원이 갖춰져 있었다. 물론 이 모든 도움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에리크가 '도움받을 수 없다는 느낌'에 빠져 죽도록 내버려 두진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사람을 살게 한다. 그 감각은 시민 개인의 목소리로 실감할 수 있다. 그다음,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졌을 때 실물로 드러난다. 시민들은 이미 학교 앞 근조화환으로, 포스트잇으로, 헌화로 말했다. 정부는 정책으로 대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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