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과 다른 한국 아파트의 특이점, 눈치 채셨나요?
[이현우 기자]
'압구정 2구역' 재건축 설계안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이유는 옥상정원의 이름을 프랑스어로 지었기 때문이다(초기에는 프랑스어 동이름 때문에 비판을 받았지만, 사실은 동이름이 아니라 옥상정원의 이름이었다).
▲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압구정 아파트 옥상정원의 이름 |
ⓒ 유튜브 채널 디에이건축 갈무리 |
아파트 가치를 높이기 위한 차별화된 콘셉트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초에는 스무자가 넘는 아파트 이름 때문에 시끄럽기도 했다. 문제의 아파트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 총 23자다. 이렇게 아파트 이름이 길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파트에 지역,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 브랜드명을 다 포함시키기 때문이다.
덧붙여 대다수 아파트 이름에는 외국어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아파트 이름을 떠올려보자. 더샵, 롯데캐슬, 아이파크, 자이, 힐스테이트 등 아파트가 온통 외국어에 물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래미안, 푸르지오는 본래 한자명, 한글명이지만 아파트 벽면과 출입 등이 온통 영어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외국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는 없다).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서 아파트는 주거로서만 기능할뿐만 아니라 자산으로서도 기능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거 목적의 사용가치만 지닌 것이 아니라 자산으로서 교환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교환가치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가 상품의 차별화다. 아파트 시설과 기능의 차별화는 기본이고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바로 독특한 이름이다.
아파트 상품화
결국 프랑스의 도시주택이 미국으로 유입되었고, 그곳에서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유입되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 <아파트> 43p
우리나라 아파트는 일본, 미국 그리고 프랑스의 공동주택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규모와 입주 계층은 확연히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높이 규제로 인해 6층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중요한 건 폭넓은 소득계층의 거주자를 수용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소득이 높은 계층이 아파트에 밀집해 거주한다. 공공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이나 임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 수가 적다. 문제는 공공주택의 입지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거나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다.
중산층 밀집지역 되어버린 아파트 단지
이번에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중산층의 주요 거주지가 되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초기 아파트 건설 역사를 따라가보자.
1960년대 말까지 건설된 아파트는 호화 아파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1962년 서울시가 공급한 건설된 단지형 아파트는 규모가 작았다. 서울시 예산 부족으로 골조와 주요 설비만 공급했다. 나머지는 입주자들의 몫이었다.
별다른 금융 지원도 없었다. 따라서 지불능력이 있는 계층만이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었다. 결국 남서울아파트 개발에 이르러서는 아파트 공급 대상이 중산층으로 선회했다.
▲ 1980년대 후반 서울특별시 아파트지구도 |
ⓒ 서울역사박물관 |
결국 이렇게 급격히 증가한 아파트단지는 중산층이 밀집한 단지가 되어버렸다. 아파트라는 공공주택의 주거 형태를 도입하면서 첫 주춧돌을 잘못 놓은 것이다. 프랑스처럼 다양한 소득계층이 섞이지도 못했고 미국처럼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형태도 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결국, 담장을 둘러치는 현재의 아파트단지는 아파트지구 지정과 더불어 동일 경제 계층의 밀집이 빚은 단지의 자족성이 낳은 결과이다.
- <아파트> 109p
아파트 단지는 페리(C. A. Perry)가 주창한 근린주구이론을 충실히 실현한 주거단지다. 근린주구론은 초등학교, 공원과 놀이터, 상업시설, 건물과 도로의 안전성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충족한다. 이를 중심으로 단지 내에서 자족성을 최대한 실현시킨다.
▲ 도서출판 대가의 <도시설계>에 나오는 페리의 근린주구론 |
ⓒ 이현우 |
안타깝게도 자족성을 최대한 실현시킨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비슷한 소득 계층이 결집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결국 아파트 단지 문화는 '구별짓기' 문화를 낳았다. 처음에는 구별 지으려는 의도로 시작된 건 아닐 테다. 건설과 분양 과정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구별짓기 문화가 당연시 되었다. 새로 건설되는 아파트에 스페셜한 이름을 붙이고 입주자에게 프리미엄 혜택을 제공한다. 거대한 담장을 둘러 자발적으로 배제한 아파트 단지는 한 브랜드 이름처럼 '성(castle)'이 되어버렸다.
도시계획이 아파트 단지화에 끼친 영향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 자체가 문제일까? 아파트 건설 과정은 도시는 시민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아파트 내에 조성된 녹지와 기반시설 등은 모두 입주민들의 비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유재이기 때문에 빗장을 두르는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필자는 아파트 주거 형태보다 아파트가 단지화 되는 과정에 있어서 도시계획의 문제를 삼고 싶다. 부족한 자원 속에서 도시를 발전시키고 주거의 질을 높인 도시계획가들의 공로는 존경한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도시계획의 문제를 분명히 짚을 필요는 있다.
해방 이후 국가 재정이 열악하여 공공공간을 가꾸는 것에 취약했다. 따라서 시민들은 기반시설과 녹지환경을 사적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한 개만 생산할 때의 비용보다 열 개를 생산할 때 드는 한 개당 비용이 적게 드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 것이다. 각자 요리를 하고 도시락을 싸는 것보다 급식소에서 대량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1인당 식사 비용이 줄어드는 원리와 같다. 이러한 역사가 아파트라는 상징적인 주거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박철수 교수는 "아파트단지에 사는 사람들을 야박하다고 탓할 게 못 된다"라고 말한다. 납득이 간다. 내 돈 내고 짓고 관리하는데 빗장을 두르는 게 야박할 일이겠는가.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아파트단지를 구별 짓고 차별화 하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바로 이때가 도시계획이 나설 때 아닌가. 하지만 적정한 규제와 허가 역할을 해야 하는 도시계획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열악한 국가 재정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아파트를 단지화하여 비슷한 소득계층이 모일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데 한몫 한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 아파트 단지화가 가속될 수 있도록 정부 주도로 아파트지구를 지정하여 건설을 부추겼다.
▲ 한강변에 아파트가 빼곡히 차 있다. |
ⓒ unsplash(jeonguk) |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는 면적은 40만 5782㎡, 총 9510세대가 거주한다. 2인 기준으로 계산을 하면 최소 1만 9020명, 3인 기준으로는 2만 8530명이 거주하는 셈이다. 3인 기준이라 치면 필자의 고향 무주군 인구(2만 3천 명)보다 많다. 놀라운 건 이 단지 내 세대의 모든 주소는 '송파대로 345'로 같다.
개별 필지로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단지화' 된 아파트는 재건축이 아닌 이상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도시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울 뿐더러 재건축으로 변화하더라도 공공을 위한 변화라기보다는 아파트단지 내 주민만을 위한 변화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학 시절, 필리핀 부촌 알라방에서 한 달간 영어 캠프 스태프로 일할 때였다. 등록된 차량만이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치안상 매우 안전하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 조성된 공원에는 몇몇의 주민이 산책과 조깅을 하고 있었다.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다양성과 역동성은 잃은 모습 같았다. 살고 싶은 동네인지 스스로 되물어보면 쉽게 답을 내리진 못하겠다.
도시계획의 본래 목적은 공공성 아닌가. 도시에 사는 다수의 시민을 위한 것이 도시계획 아니겠는가. 하지만 완벽한 사유재인 아파트단지에 공공기여 외에는 공공성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인다. 공공기여 혜택을 받는 시민 외에는 아파트단지를 누리기는 힘들다는 의미다. 단지화 된 도시의 민낯이다.
모두를 위한 공공성이라는 말이 이상적으로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가능성조차 배제하는 이 씁쓸한 현실이 안타깝다. 압구정 2구역의 '엘레강스' 한 이름과 재건축이 그들만의 리그인 것 같아 보인다. 어쩌다 도시계획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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