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보험 연장 뒤 아내가 죽었다, 3년만에 들통난 '살인 계획'
2020년 6월 2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산간도로에서 의문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부부가 탑승한 차량이 산간도로 아래 경사면으로 굴러떨어졌다. 이 사고로 남편 A(55)씨는 경미한 부상만 입었지만, 아내 B씨(당시 51세)는 중상을 입고 약 2주 뒤 사망했다. 남편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가 운전하던 중 갑자기 도로에 동물이 튀어나와 사고가 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씨 주장에 따라 경찰은 그해 10월 13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보완수사를 요구했고, 경찰은 사고 당시 운전자가 B씨가 아닌 A씨였다는 점, A씨에게 운전면허가 없었단 점을 추가로 밝혀냈다. 경찰은 지난해 1월 25일 A씨를 교특법상 치사와 무면허운전 혐의로 검찰에 다시 송치했다.
그런데 사고 현장에는 미심쩍은 게 한둘이 아니었다. 자동차가 급제동할 때 노면에 생기는 ‘스키드 마크’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B씨 부검 결과 교통사고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질식사 소견도 나왔다. 또 차량 블랙박스가 사고 직후 화재로 소실돼 확인할 수 없었지만, B씨가 사고 약 3주 전쯤 여동생에게 “남편이 나를 이상한 데로 데려가곤 한다. 나를 죽이고 보험금을 받으려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진술도 있었다.
수원지검 안양지청 형사1부(부장 최재준)는 지난해 3월 이 사건을 직접 보완수사하기로 하고, 5월 의료분야 전문성을 갖춘 검사 2명을 투입해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검찰은 2020년 5월 21일 B씨 명의로 가입된 국내 여행자보험 정보와 보험료 결제 계좌를 분석해 남편 A씨가 B씨 몰래 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파악했다. A씨는 이 보험에 대해 ‘아내가 가입했다’ ‘아내가 내 사무실에 와서 가입했다’ ‘내가 아내의 허락을 받고 가입했다’ 등 객관적 증거를 들이댈 때마다 진술을 바꿨다.
의구심이 커진 검찰은 B씨 사망원인이 교통사고에선 이례적인 질식사라는 점에도 주목해, 부검 결과를 국내 법의학 전문기관 여러 곳에 맡겨 감정을 의뢰했다. 올해 5월에 나온 감정 결과는 ▶질식은 교통사고 전에 발생했고 ▶B씨의 얼굴과 손 부위의 상처는 강제 질식시 나타나는 형상과 저항흔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검찰은 A씨가 B씨의 코와 입을 손으로 막아 살해한 뒤, 차를 도로경계석이 없는 곳으로 몰아 교통사고로 위장한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지난 12일 A씨를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A씨가 B씨 명의로 가입한 여행자보험은 사망사고를 담보하는 보험이었다. 보험기간이 짧고 보험료도 싸지만, 사망사고시 거액의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점을 노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사고 현장 주변 CCTV에는 A씨가 2020년 5월 9일부터 사건 당일까지 여러 차례 주변을 서성이며 답사하는 모습도 남아 있었다. 그 중 일부는 B씨와 동행하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범행 하루 전에는 여행자보험 만기를 일주일 연장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부동산중개업을 하면서 수억원대의 빚을 진 뒤 이를 대출금 등으로 돌려막다가 아내의 사망보험금까지 노리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B씨 사망 뒤 기존에 가입했던 자동차보험 사망보험금 5억2300만원은 챙겼지만, 새로 가입한 여행자보험 사망보험금 3억원은 검·경 수사로 보험사가 지급하지 않으면서 받지 못했다.
검찰은 지난 28일 A씨를 살인과 보험사기방지법 위반, 사전자기록 등 위작·행사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자녀 등 유족에게 생계비·학비 등 경제적 지원과 심리치료 절차를 안내했다고 30일 밝혔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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