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전쟁사]국방예산 세계 3위 사우디, 왜 예멘 반군에도 밀리나
세계 3위 국방비에도 후티반군에 연패
귀족 지휘관 전횡에 사기 낮은 용병부대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전격 방문해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예멘 내전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현재 사우디와 예멘 후티 반군간 휴전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 양측이 종전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는데요.
사우디는 국방예산 규모가 세계 3위에 이를 정도로 막대하고 전세계 거의 모든 첨단무기를 휩쓸어 수입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낙후된 예멘 후티반군을 상대로 9년씩이나 고전하고 있는데요. 오히려 예멘 후티반군에 연전연패하며 사우디 국경에서 밀고 올라오지 못하게 방어를 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죠.
경제규모, 인구, 군사력 등 수치상으로는 강대국과 견줄만한 사우디 군대가 이처럼 졸전을 치르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번 시간에는 사우디의 국가탄생 배경의 역사와 함께 사우디군이 왜 중동의 '당나라군'으로 불리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뉴스(News) : 美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빈 살만과 예멘내전 문제 논의27일(현지시간) 설리번 보좌관이 사우디의 제다를 방문해 빈 살만 왕세자와 회동을 가졌습니다. 백악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설리번 보과관이 제다를 방문해 빈 살만 총리 겸 왕세자 및 사우디 고위관료들과 평화를 위한 공동비전을 발전시키기 위한 이니셔티브를 포함해 양자 및 지역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죠.
백악관은 이어 "설리번 보좌관은 또한 지난 16개월 동안 견뎌온 예멘 휴전의 이점을 기반으로 한 중요한 진전을 검토하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유엔 주도의 지속적인 노력을 환영했다"면서 "양국 대표단은 정기적인 협의를 유지하고 이날 논의한 사안에 대해 후속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주요 내용은 예멘 내전과 사우디의 안보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의 집계에서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예산은 750억달러(약 96조원)로 전세계 5위 정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네옴시티 등 대규모 국책 프로젝트 개시 전에는 미국, 중국의 뒤를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는데요. 특히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8% 이상이 국방비에 투입돼 완전 전시국가체제를 이어가고 있죠.
그럼에도 경제규모나 인구, 영토면에서 훨씬 작은 예멘의 후티반군과 전투에서 좀처럼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후티반군과 전쟁이 9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오히려 잇딴 패전으로 사우디 영토를 가까스로 방어하고 있는데요. 그 많은 국방예산을 들여도 왜 반군 하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요?
◆역사(History)1 : 잦은 패전 속에 200년 독립전쟁 거쳐 세운 사우디 왕조사우디군이 엄청난 돈을 들이고 있음에도 중동에서 허약한 당나라군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이 나라가 처음 건국될 당시의 역사부터 살펴봐야합니다. 사우디 건국의 역사는 사실 사우디 왕조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데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를 통치하고 있는 사우디 왕조의 역사는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8세기 중반부터 무하마드 이븐 압달 와하브(Muhammad ibn Abd al-Wahhab)라는 아랍지역의 종교학자가 '와하비즘(Wahhabism)' 운동을 일으킵니다. 이 와하비즘은 수니파 근본주의에 해당하는 이슬람 종교 운동 중 하나로 당시 아라비아 반도를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대항해 이슬람 근본주의로의 회귀와 아랍 민족주의를 중심에 둔 교리였는데요.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인물 중 한명이 무하마드 빈 사우드(Muhammad bin Saud)라는 토후였습니다. 그는 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디리야(Diriyah)라 불리는 작은 오아시스 마을을 다스리고 있었는데요. 1744년 와하비즘 운동에 동참해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반기를 들고 디리야 왕국이란 사우디 왕조를 세웁니다. 그의 봉기에 아라비아 반도 중앙부의 크고 작은 토후들이 합류하면서 사우디 왕조는 순식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배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됐습니다.
당시 러시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 때문에 직접 사우디 왕조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당시 이집트 총독이던 무하마드 알리 파샤에게 군대를 동원, 디리야 정벌 명령을 내립니다. 그는 1808년 이집트 병력을 이끌고 디리야를 함락시키는데 성공했고, 무하마드 빈 사우드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로 압송돼 처형됩니다. 1차 사우디 왕조는 이처럼 처참한 전쟁 패배로 소멸하고 맙니다.
이후 살아남은 사우디 왕가 후손들은 1818년에 제2차 사우디 왕조를 건립하지만, 이 역시 1891년 이집트와 오스만 투르크 속령 토후국들의 연합군을 이겨내지 못하고 참패해 소멸됐습니다. 이후 오늘날 사우디 왕조, 즉 3차 사우디 왕조는 무하마드 빈 사우드의 5대손인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Abdul-Aziz bin Abdulrahman Ibn Saud)가 건립하게 됐죠.
그는 1차세계대전 전화에 휩싸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아라비아반도에 전혀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주변 토후국들을 결합해 독립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1932년에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 일대를 모두 통합해 정식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200년에 걸친 끈질긴 독립전쟁 결과 왕국 건설을 쟁취하게 됐는데요.
이렇게 사우디 왕가가 독립 과정에서 거듭 연전연패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이 독립과정에 투입된 병사들의 대다수가 용병부대였고, 사기나 통일성 등의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3차 사우디 왕조 역시 정작 군대는 쿠웨이트 왕국에서 빌려온 병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죠.
◆역사(History)2 : 건국 이후 계속 용병에 의존…귀족 지휘관 전횡도 여전건국 이후 사우디는 장기간 평화가 유지됐고, 1938년 석유가 발견된 이후로는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군림하면서 국민들이 국방에 더욱 무관심하게 됐습니다. 군사력 강화를 위해 징병제 실시를 수차 검토했지만 모두 국민들의 엄청난 반발로 번번이 실패했는데요.
결국 대부분 병력을 여전히 용병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사우디군 규모는 약 25만~27만명 규모인데 대부분이 해외 용병 출신들로 알려져있죠. 파키스탄, 아프리카 수단 등 사우디 주변 극빈국에서 넘어온 용병들이 국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예멘 후티 반군과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용병 모집 규모는 훨씬 커졌는데요.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16년 아프리카 수단에서만 1만4000명 이상의 용병들이 사우디의 돈을 받고 예멘과의 전선에 투입됐습니다. 당시 사우디군은 병사 1인당 1만달러를 지급했다는데, 극빈국에서는 도저히 만져볼수조차 없는 돈이었죠.
이렇게 끌어모은 용병부대들은 사우디가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한 최첨단 무기로 무장했습니다. 사우디군은 F-15, 유로파이터, 파나비어 토네이도, 공중급유기, 조기경보관제기까지 1800기가 넘는 강력한 공군전력을 보유하고 있고, 장갑차 4200여대, 전차 1300여대, 해군이 거의 없는 중동국가들 중에 전투함도 70여척이나 가지고 있죠. 그런데도 후티반군에 참패해 국경지역 수비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9월에는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군 2000여명을 포로로 잡았다며 동영상을 공개해 국제적 망신을 당하기도 했는데요. 전투 도중 장갑차가 후진하다가 아군차량을 들이박거나 미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에이브럼스 전차를 적진도 제대로 탐지해보지 않고 돌진하다가 한꺼번에 10대 이상 잃은 경우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작전이나 전략없이 무작정 물량공세만 펼치다가 큰 손해를 입었던 것이죠.
◆시사점(Implication) : 전쟁은 무기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것결국 제 아무리 최첨단 무기를 들여오고 막대한 돈을 지급해도 싸울 의지가 없는 군대가 승리하긴 어렵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셈이죠. 현대중국의 국부라 불리는 마오쩌둥의 말처럼 "무기는 전쟁의 중요한 요소지만 결정적 요소는 아니다. 결정적 요소는 결국 사람이다"라는 말을 되새기게 합니다.
사우디 정부도 오합지졸 군대를 어떻게든 개혁해보려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군제개혁을 하려면 일단 당장의 전쟁을 멈추고 병력재편부터 나서야하지만 일단 시간을 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 나서 이란,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이끌어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풀이되는데요.
평화가 정착돼 군제개혁을 할 시간을 번다해도 사령관으로 앉힐 인재가 부족한 것도 큰 문제입니다. 지난 2018년 2월 빈 살만 왕세자가 계속되는 졸전에 분노해 군사령관을 전부 갈아치우기도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습니다.
사우디에서 군사령관을 비롯해 군지휘부 대부분이 왕족이나 귀족 자제들로 전쟁을 경험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군사전문가가 되려는 의지도, 노력도 없이 지휘관에 오른 사우디군 장성들이 태반이라 좀처럼 군대개혁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합니다. 결국 군대는 사기와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든 점을 일깨워주고 있는 셈이죠.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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