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뺏어 미안해" 최고 평당 분양가 단지의 반성이 부른 나비효과
[월간 옥이네]
▲ 충북 청주 원흥이 방죽 두꺼비 생태마을 |
ⓒ 월간 옥이네 |
논밭을 밀어낸 자리에 들어선 높은 아파트와 상가 건물, 산과 들을 깎아내고 설치한 골프장과 케이블카... 부동산 가치를 높이고 관광을 활성화한다는 목적이라면 불필요한 개발도 미덕이 된다. 이런 개발 논리가 휩쓸고 지난 자리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눈 밝은 이들이 있기에, '경제적 이득'이라는 설탕발림의 이면을 알아채고 때로는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이 이나마라도 유지되는 것일 테다.
신자유주의 물결을 타고 개발붐이 일던 2003년, 두꺼비를 지키기 위해 싸운 충북 청주 산남동 사람들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 '산남3지구'로 불리던 신도시를 '원흥이 방죽 두꺼비생태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지킨 이야기를 사)두꺼비친구들 신경아 사무처장과 두꺼비마을신문 조현국 편집장을 만나 들어봤다.
두꺼비 산란지를 사이에 둔 개발과 보존 사이의 긴 싸움, 그 과정에서 모아진 주민 역량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동체로 이어지는 배경은 무엇일까. 골프장 건립 논란으로 시끄러운 충북 옥천뿐 아니라 각종 개발 논리가 점령한 우리 사회에 두꺼비마을이 던지는 질문을 담아본다.
두꺼비 산란지 발견에서 촉발된 생태마을의 시작
흔히 '공동체'라고 하면 도시보다는 농촌, 높은 아파트보다는 낮은 주택이 모인 작은 마을을 떠올린다. 그래서 이 마을 풍경이 새삼스럽다. 일직선의 넓은 도로를 따라 구획별로 늘어선 상가, 8개의 아파트 단지와 깨끗한 외관의 법원·검찰청 건물이 그야말로 도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청주 산남동 원흥이 방죽 두꺼비생태마을이다.
이 마을이 '두꺼비마을'이 된 건 2003년 택지 개발에 맞선 두꺼비 산란지 보존 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구룡산 자락에 위치한 원흥이 방죽 및 이 일대 택지 개발이 추진되며 농사를 짓던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가던 무렵, 이곳을 산책하던 주민 제보로 현장답사를 진행한 '생태교육연구소 터'가 대규모 두꺼비 서식지를 확인한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명이 이곳을 찾아 두꺼비를 관찰했고, 이 사실은 지역 안팎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다. 수십만 마리의 어린 두꺼비가 수로를 따라 서식지인 구룡산으로 이동하는 장관은 전국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 두꺼비 서식지 보존 운동의 시작이 된 두꺼비들의 이동 모습. 2003년 촬영. (두꺼비친구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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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지역 환경단체를 비롯해 40곳 이상의 시민사회 단체가 모였고 여기 일반 주민들의 목소리가 더해졌다. '두꺼비를 살려 달라'는 외침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이어져 당시 7만 명의 시민이 택지 개발 반대 서명에 참여하는 등 엄청난 열기의 운동으로 번져갔다. (사)두꺼비친구들 신경아 사무처장은 당시 운동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청주에 있는 시민단체가 하나로 모이게 된 건 이 두꺼비 서식지 보존 운동이 첫 사례였어요. 이전까지 청주 지역 환경 운동으로 수돗물 불소화 사업 반대, 문장대 온천 개발저지 등이 활발했지만 환경운동단체는 생태교육연구소 터,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정도가 다였거든요. 그런데 이 원흥이 방죽 두꺼비를 지키려는 운동엔 환경단체를 넘어 지역 각종 시민단체들, 그런 운동의 영역에 있지 않던 일반 시민들까지 동참한 거예요."
'이것만은 꼭 지키자'는 의지는 연대조직 '원흥이생명평화회의' 결성으로 본격화한다. 두꺼비를 직접 만난 어린이들의 현수막이 내걸렸고 이는 서명운동과 시민들의 현수막 이어걸기로 확대됐다. 구룡산 지키기 산행 등 생태교육 프로그램으로 가까이 있어도 몰랐던 원흥이 방죽의 가치를 전파한 데 이어 지역 예술인들은 작은 음악회·원흥이 한마당 잔치 등의 문화 행사, 종교인들은 기도회를 개최하며 각계각층의 서식지 보존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개발을 향한 삽질은 멈추지 않았다. 2003년 12월 충청북도가 산남3지구 택지개발을 최종 승인하면서 개발과 보존, 양측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져간다. 그럼에도 굴삭기가 파헤친 길과 숲을 뚫고 다시 산란지를 찾는 두꺼비는 보존 운동을 지속할 기폭제였다. 두꺼비 서식지에 금줄을 치고 대안을 찾기 위한 토론회도 연이어 열렸다.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이 사안을 공약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며 여론은 갈수록 '보존'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여론전'에서 밀리고 있다고 판단했던 걸까. 지지부진한 공사 진행에 한국토지공사는 기습 벌목으로 공사를 강행했고 이 과정에서 용역업체와 시민이 충돌하며 유혈사태가 벌어진다. 이는 삭발식, 철야단식농성, 삼보일배 등 보다 격렬한 반대 운동으로 번져갔는데 700여 명의 시민이 새벽부터 모인 '원흥이 껴안기' 행사가 그 정점이었다.
"그렇게까지 동력이 모아졌던 건 '원흥이 방죽'이라는 공간을 우리가 직접 보고 체험했기 때문 아닐까요? 작지만 특별한 원흥이 방죽이 많은 이를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이 됐던 거죠. 그 공간이 지역에 던지는 메시지가 아주 강력했던 거 같아요." (신경아 사무처장)
▲ 2004년 두꺼비 서식지 보존을 위한 주민 투쟁 중 하나였던 삼보일배 모습 (두꺼비친구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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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열린 두꺼비 생명 한마당에서 주민들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두꺼비친구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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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마을 공동체 운동 2막의 시작
지난한 2년여의 싸움을 끝으로 타결된 합의문은 총 개발 면적 중 1만2천여 평을 남겨 서식지로 보존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 ▲폭 26~56m의 두꺼비 이동통로 확보 ▲대체 산란지를 포함한 생태공원 조성 ▲두꺼비생태문화관 설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위한 시민사회 참여보장 등이 그 세부내용이다. 당초의 두꺼비 서식지 전체를 지키지는 못했지만 일부나마 보존해 후대에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성과는 있었던 셈. 누군가는 개발 자체를 막지 못한 애통함을, 더 넓은 서식 면적을 지키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마냥 미련만 남긴 역사는 아니다. 두꺼비마을의 생태 공동체 활동은 더욱 확장하며 많은 시민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두꺼비 서식지 등 생태 보존 활동을 위한 (사)두꺼비친구들을 시작으로 8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모인 산남두꺼비생태마을아파트협의회, 마을 소식과 공동체 활동을 알리는 두꺼비마을신문, 로컬푸드매장을 운영하는 두꺼비살림 등이 만들어졌고 이어 산남동작은도서관협의회, 산남동상가번영회, 산남행복교육공동체, 도시숲구룡산클린마운틴 등이 결성됐다.
▲ 두꺼비를 지키려는 투쟁은 이 마을에 엄청난 배움과 교훈을 남겼다. 이는 곧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인 생태공동체 활동으로 이어졌는데, 로컬푸드 매장인 두꺼비살림도 그중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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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까지 다양한 시민들의 역할과 헌신이 정말 컸어요. 그렇게 두꺼비마을이 환경운동에서 그치지 않고 마을 운동으로, 공동체 운동으로 가는 과정이 시작된 거죠. 아마도 이런 사례는 두꺼비마을이 유일하지 않을까요? 지금도 주민들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두꺼비마을이 만들어 지고 유지되고 있지요." (신경아 사무처장)
택지 개발 이후 신축된 아파트로 이사를 오며 이 마을 주민이 된 두꺼비마을신문 조현국 편집장 역시 그러한 '생태 시민' 중 한 사람. 그는 2008년 산남두꺼비생태마을아파트협의회(이하 아파트협의회) 활동을 하며 두꺼비마을 활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다.
"이 지역이 당시 청주 최초로 평당 분양가가 500만 원을 돌파했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새로 이사 온 주민들도 자본 논리에 익숙하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생태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였죠. 아파트협의회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참여해보자는 의견을 다들 지지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부채감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두꺼비 집을 뺏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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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과 싸워봤자 소용없다? 우릴 보고 다시 생각해보세요 https://omn.kr/24y0i
월간 옥이네 통권 73호 (2023년 7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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