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사건 이후 '살인예고 글' 왜 자꾸 올라올까

전문가들 "모방범죄보다 젠더갈등 이용"
이수정 "혐오 스피치와 굉장히 관련 높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근에서 벌어진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살인 예고 글이 잇따라 게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방범죄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젠더 갈등을 이용하고자 이런 글이 올라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온라인에 올라오는 살인 예고 글이 (신림동 칼부림 사건의) 모방범죄에 해당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 교수는 27일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온라인 상에서 남성혐오, 여성혐오로 팀을 나눠 대결하는 구도가 형성돼 있고, 이게 혐오스피치와 굉장히 관련이 높다"며 "상대의 성별을 적대시하는 사이트에서 논쟁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이런 글이 올라온 것이지) 20명을 살해하겠다는 사람이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을 할 계획을 세웠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온라인상에 글을 올린 것과 실제로 범죄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온라인상에 살인 예고 글을 올리면 대중에 공포심을 유발했다는 점에서 협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실제로 범죄 실행 계획을 세운 것이 입증된다면 살인 예비죄로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모방범죄 플러스 젠더 갈등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배 교수는 이날 YTN 라디오에서 "이 사건을 젠더 갈등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특정 집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말하자면 '왜 남자만 죽었어? 그러니까 여자 몇을 더 맞추게'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배 교수는 "신림동 사건의 피의자는 (피해자를)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으로 삼은 것일 뿐"이라며 "이 사건은 젠더 갈등과 전혀 연관이 없는데, 연관이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글을) 퍼다 날라서 조회 수와 이득을 얻고 하는 집단이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다만 모방범죄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순 없다. 글 작성자가 불특정 다수에게 두려움과 공포감을 유발해 심리적으로 만족감을 얻는 것을 넘어 범죄를 모방하려는 심리까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경찰이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신림역 인근에서 여성을 상대로 살인을 예고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20대 남성 A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협박죄다. A씨는 지난 24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수요일 신림역에서 여성 20명 죽일 것"이라는 글을 게시하고 길이 30㎝의 흉기 구매 내역을 첨부한 혐의를 받는다.

김한규 변호사는 이날 연합뉴스TV와 인터뷰에서 "(A씨는) 현재는 협박 혐의로 영장 청구가 됐는데, 단순히 글을 올린 것만으로는 처벌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며 "다만 본인이 범죄를 실행하겠다는 구체적인 단계까지 나가야 하는데 A씨는 흉기를 구매한 사진을 올렸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사람을, 특히 여성을 죽이겠다고 예고한 것에 대해 실행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림역 사건 이후 살인을 예고한 것은 A씨만이 아니다. 현재 경찰은 '신림역 일대에서 여성을 강간·살인하겠다', '건물에 불을 질러 사람이 나오면 여성만 죽이겠다' 같은 내용의 글 4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