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 성적보다 안전에 관심 쏠리는 까닭
[이준목 기자]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이 '2024 파리 올림픽 사전자격예선' 출전 여부를 놓고 농구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성적이 아니라 '안전'에 쏠리고 있다. 선수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국제농구연맹(FIBA)의 황당한 만행 때문에 벌어진 고민이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26일 김선형(SK), 허훈(상무) 등 국가대표 1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사전자격 예선은 오는 8월 12일부터 20일까지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열린다. 한국을 비롯하여 바레인, 대만, 인도, 인도네시아, 카자흐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 8개국이 2개조로 나뉘어 풀리그 형식의 조별예선을 통해 각 조 상위 2개국이 4강에 진출, 토너먼트를 거쳐 최종 1위를 가린다.
한국은 대만, 인도, 바레인과 함께 A조에 속해 있다. 일정대로라면 8월 12일 인도와 조별예선 1차전을 치르고 13일에 바레인, 15일에 대만과 맞붙게 된다. 최종우승팀은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등 각 대륙에서 사전자격예선을 넘어선 팀들과 올림픽 최종예선에 출전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개최국인 시리아는 현재 내전이 진행 중인 국가이며, 대한민국 외교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여행금지국'이기도 하다. 시리아는 지난 2011년 이후 계속된 내전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지금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지역이다.
지난 19일에는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습으로 시리아 군인들이 부상을 입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올해 들어 시리아를 공격한 것만 20차례가 넘는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갈등이 고조된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시리아 상공에서 무력 충돌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시리아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전쟁터'다. 그럼에도 FIBA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스포츠 선수들을 모아놓고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세계농구계를 대표한다는 공식 기구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농구대표팀이 사전 예선에 출전하기 위하여 시리아로 출국하려면 먼저 대한민국 정부의 허가가 떨어져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시리아에 방문하기 위해선 영주권자나 외교-언론 취재 같은 공무, 혹은 인도적 사유 등 국가가 허가한 사유에 한하여 외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만 스포츠 국제대회 출전은 지극히 예외적인 사유에 해당한다.
또한 어렵게 출전 허가가 떨어진다고 해도 대표팀이 시리아로 가려면 상당히 복잡한 여정을 거쳐야한다. 한국에서 시리아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인근 경유지를 거쳐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인접국인 레바논은 시리아로 가는 항공편이 없고, 또다른 국가인 이라크는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여행금지국으로 분류된 상태다.
이동 문제에서부터 현지의 선수단 안전-지원까지 까다로운 문제가 하나둘이 아닌 데다, 선수들이 온전히 경기에 집중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대한민국 농구협회는 일단 대회 참가를 위하여 외교부에 시리아 입국과 관련된 여권 사용 허가를 신청한 상태지만 출전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올림픽에 진출할 가능성도 희박한 상황에서 굳이 선수들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여행금지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해야하는가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한국농구가 일단 출전한다면 약팀들이 대부분인 사전예선에서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다만 올림픽 최종예선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 2023 FIBA 남자농구 월드컵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한 팀들을 포함해 총 24개국이 경합을 벌여 상위 4개팀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
한국 남자농구는 1996년 애틀란타 대회를 끝으로 더 이상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다. 한국농구로서는 올림픽 본선에 준하는 강호들이 출전하는 최종예선에 나서는 것만으로도 귀중한 경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선수단의 안전까지 담보로 해야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대표팀이 외교부의 불허 방침으로 출전이 불발된다면, 대표팀으로선 '페널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 남자농구는 지난해 2월 필리핀에서 열린 2023 FIBA(국제농구연맹) 남자농구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 출전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코로나19 확산 문제를 우려하여 고심 끝에 불참했고 '실격 처리'를 당하면서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바 있다.
이로 인하여 대표팀은 지난해 7월 FIBA 아시아컵 이후 1년 가까이 원치 않은 국제무대 공백기를 거쳐야 했다. 아울러 FIBA가 올림픽 출전권을 세계 랭킹과 연동시킨 까닭에 랭킹 포인트를 쌓을 기회가 사라져 2024 파리 올림픽으로 향하는 길도 더욱 험난해지는 나비효과로 이어졌다.
당시 농구협회는 FIBA에 공문을 통하여 불가항력적인 상황임을 상세히 해명했다. 당시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의 광풍이 불던 시기였고, 무리해서 대회에 참가했다가 추가 확진자가 발생하거나 다른 팀까지 전파될 가능성도 있었다. 농구협회는 한국 선수단과 참가국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경기 일정 조정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융통성 없는 FIBA는 다른 국가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대한민국 ㅅ농구협회의 해명을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한국농구는 코로나19 확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선수들의 안전이 우선순위였기에 페널티를 감수하고 대회 출전을 포기한 것에 따른 비판은 크지 않았다.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현지 상황이나 선수단 안전 문제 등으로 개최지가 변경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축구의 경우만 해도, 2023 AFC 아시안컵은 본래 중국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문제가 중국이 개최권을 반납하여 내년에 카타르로 개최지와 일정이 변경됐다. 2016년에는 레바논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한국과 시리아의 FIFA 월드컵 아시아 예선 경기가 현지 안전과 경기장 시설 등의 문제로 마카오로 변경되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FIBA는 과거에도 현지 내정이나 치안이 불안정한 국가에서 주요 대회를 강행하는 비상식적인 행보를 거듭하며 다른 정상적인 스포츠 기구들과 대조를 이뤘다. 2010년 이승현-허웅 등이 출전했던 FIBA U-18 아시아 청소년선수권 대회가 대표적이다. 당시 대회는 다른 여행금지국이던 예멘에서 열렸는데, 실제 참가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한국 선수단이 머물기로 예정된 호텔이 포탄을 맞아 부서지는가하면, 새 숙소 주변에서도 폭발음이 계속되며 대회 기간 내내 선수들이 공포에 떨어야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만에 하나, 외교부의 출전허가가 끝내 떨어지지 않아서 이번 사전예선 참가가 불발되고, 그로 인하여 한국농구가 또다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것은 온전히 FIBA의 책임일 것이다. 그 어떤 스포츠도 구성원의 안전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FIBA라고 해도 상식에 걸맞지않은 일처리를 거듭한다면 국제농구를 대표하는 기구로 인정받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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