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 "디테일 없는 정치는 악마정치" [4류 정치 청산 - 연속 인터뷰]
71년생 '무한도전 변호사'로 유명세
"'안철수·유승민·손학규'는 골목대장"
"지구당 부활해야…플랫폼 될 수 있어"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1995년 '베이징 발언'으로부터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과연 그 사이에 우리 정치는 4류에서 조금이라도 랭크가 올랐을까. '헌정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 21대 국회의 모습을 보며, 일말의 기대마저 내려놓는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과연 우리 정치, 우리 국회, 우리 정당은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야 '4류 정치'를 청산하고 선진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데일리안은 '4류정치 청산'을 주제로 하는 연속 인터뷰를 통해 그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아홉 번째 순서로 장진영 서울 동작갑 당협위원장을 만났다.
장진영 위원장은 1971년생, 호남 출신으로 서강대 법대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연수생 신분으로 LG카드(현 신한카드)의 일방적인 항공 마일리지 제공기준 변경 무효 소송에서 승소해 파란을 일으켰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영입으로 정치권에 입문해 국민의당에 입당했고, 바른미래당 손학규 당대표 비서실장을 거쳐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 합류해 동작갑 당협위원장을 맡았다.
Q.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이번 21대 국회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유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민주당이 3분의 2에 육박하는 의석을 갖고 일방적인 독주를 했는데, 그 결과가 참담했다. 21대 국회는 한쪽 날개만 커서 날지 못하는 기형적인 모습이었다."
Q.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 1995년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발언을 남겼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흘렀지만 우리 정치는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다는 게 국민들의 여론. 이 같은 현상이 빚어진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정치에서 담론이라는 게 계속 제자리서 맴돌고 있다. 우리 정치는 거대 담론만 얘기하면서 총론만 있고 각론(各論)은 없는 정치가 30년 째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 사이 기업은 1류가 됐고, 사회도 적어도 2류는 됐다. 정치는 3류 이상은 된 것 같지 않다."
Q. 정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총론만 있고 각론이 없다는 것은 디테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만 있고 행동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디테일을 챙기는 정치, 각론을 챙기는 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Q. 정당혁명을 주장해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담론은 많지만,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가 별로 없다. 지구당(중앙당의 하부조직·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폐지)이 부활해야 한다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살리느냐에 대한 준비나 담론은 없다.
즉 정당혁명은 어떻게 정당을 살리고 지구당을 살려서 정당을 바꿀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그래서 디테일한 각론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Q. 지구당을 살리는 것이 왜 중요한가.
"지구당에는 힘과 권력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당은 여당이고 대통령부터 구의원까지 지구당이라는 네트워크에 다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당원이 모인다. 여기에 콘텐츠까지 들어가면 엄청난 폭발력이 생기기 때문에 지구당의 존재는 중요하다.
지구당은 각 지역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당의 플랫폼화가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Q. 지구당은 어떻게 살려야 하는가?
"지구당을 어떻게 살릴 건지, 지구당에서 어떤 콘텐츠를 운영하면 좋을 지에 대한 실험을 6년째 하고 있다. 지구당이라는 플랫폼을 증명하고 싶다.
정당은 동호회나 친목회와는 다른 정치적 결사다.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이웃의 삶을 올바르게 바꾸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라고 본다.
지구당이 사람들이 모여서 작지만 세상을 바꾸는 경험을 하는, 성공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정치'를 함께하고 있다."
Q. 지역 초등학생들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적도 있다.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과 '삼성 스마트폰의 한글화 촉구' 기자회견을 했다.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의 이름을 '편안하게 화면 보기'로 바꾸는 내용이다. 그 초등학생들이 지금은 정치에 관심이 아주 많은 고등학생으로 성장했다. 나의 활동으로 삼성이라는 회사의 스마트폰이 일부분 바뀌었는데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주민들과 '도미노 피자 프로젝트'도 했다. 도미노 피자가 네이버에 '50% 할인'이라는 광고를 했는데, 알고 보니 카드사 포인트로 50%를 결제하는 것이었다. 허위과장광고라고 항의하니 본사 대표가 찾아와 사과하고 과장 광고를 중단했다. 중앙당도, 정부도 못한 일을 우리 지역주민들이 이뤄낸 것이다.
이후 '멈춰! 마약 마케팅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마약'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일상에서 '마약 김밥', '마약 커피', '마약 핫도그' 등 마약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고 친근하게 쓰고 있지 않나."
Q. 정치를 하려고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하다.
"사법연수원 2년 차에 지금은 신한카드로 바뀐 당시 LG카드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 연수생 때 '다른 변호사 시보 하느니 직접 소송 한번 해보지 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이 소송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당시 LG카드에서 일방적으로 항공 마일리지 제공기준을 변경하고 사용자들에게 통보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신용카드 부가서비스를 다룬 최초의 소송이었는데, 상대는 우리나라 최고 로펌인 '김앤장'을 붙였는데도 대법원까지 가서 내가 이긴 것이다. 얼마나 이슈가 됐겠는가. 이후 시티카드와도 같은 내용으로 싸웠다. 전부 이기는데 총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더 놀라운 것은 이후 관련 법인 '여신전문금융업법'이 바뀌더라."
Q. 뿌듯했겠다.
"뿌듯한 것은 둘째 치고 진짜 충격을 많이 받았다. 마일리지 소송 이후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운영위원장을 맡았는데, 그때 느꼈던 한계 등이 결합 되면서 입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경실련 운영위원장으로서 내 주된 일이 제도 개선을 위해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설득 과정이 쉽지 않았는데 '이럴 거면 그냥 내가 국회의원 되어 법을 바꿔버리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만약에 국회의원이었다면 마일리지 소송 8년 할 것을 6개월이면 해결했을 것 같다. 그러면 '가성비'가 훨씬 낫지 않겠나, 뭐 이런 생각."
Q. 8년 소송으로 잃은 것과 얻은 것은?
"일개 사법연수원생이 대기업을 상대로 이겼다는 자신감과 정의로운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리고 돈 벌 기회를 잃었다. 8년 동안 누가 나한테 수임료를 줬겠는가. 그리고 이후 돈 안 되는 소송만 찾아오더라. '정의로운 변호사님 도와주세요' 하면서(웃음)."
Q. 정치권에는 어떻게 입문했나.
"2016년 총선 때 국민의당이 생겼다. 당시 천정배·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였는데, 천정배 대표가 나를 영입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거쳐 미래통합당, 국민의힘까지 오게 된 것이다."
Q. 국민의당이라는 신당 경험, 의미 있었나.
"국민의당이라는 실험은 분명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나 그때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니즈가 있다. 정치권에서 신당에 대한 모색을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메기가 필요하다.
신당의 길은 시베리아, 완전히 동토의 땅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죽음의 계곡이라고도 표현했는데, 동토의 땅을 뚫고 나갈 수 있는 동지와 리더가 필요하다. 그런데 신당 실패 이유는 리더의 부재가 가장 크다고 본다.
나는 국민의당·바른미래당에서 '안철수·유승민·손학규'라는 인물을 모두 겪었다. 이 분들은 대장은 대장인데 골목대장이다."
Q. 골목대장은 어떤 의미인가.
"리더는 자기 것을 내주고 자기 것을 다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동지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지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방향이 아무리 맞다고 해도, 누가 같이 가겠는가. 결국엔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거대 정당으로 빨려 들 수 밖에 없다."
Q. 그러면 거대 양당의 김기현·이재명 대표는 리더십이 있는가.
"신당은 동토의 땅이기 때문에 리더십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양대 정당은 리더십이 그만큼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다. 거대 정당은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나. 인적자원 풍부하고, 돈도 많고."
Q. 여의도에서 다시 제3지대 열풍이 불고 있다. 금태섭·양향자 신당은 성공할까?
"금태섭·양향자 신당도 결국엔 인물이 중요하다. 주변에 괜찮은 인물들이 모였다고 해도 결국엔 '리더'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대권주자급 인물이 리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대권주자급 정도로도 되지 않는다. 국민의당 시절 안철수 대표도 대권주자였다. 그걸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결국엔 진정한 리더십이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거다. 금태섭·양향자 신당 성공은 리더에 달려있다. 리더십이 확보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Q. 2016·2020년 총선과 2018년 지선, 총 세 번의 선거를 치렀다. 배운 점은 무엇인가.
"선거는 준비해서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인데 세 번 모두 준비가 없었다. 선거 운동을 한 달 이상 해 본 적이 없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정치에 뛰어들자 마자 출마했고, 2018년 동작구청장 선거는 당시 바른미래당에서 나갈 사람이 없어서 나간 것이다.
2020년도 21대 총선에선 바른미래당과 미래통합당이 합당을 하면서 지역구를 동작을에서 동작갑으로 옮겼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선거를 치렀다. 사실 그래서 모두 당선 될 수가 없는 선거였다."
Q. 2024년 총선, 이제 준비가 됐나.
"이제 확실하게 됐다. 일단 당이 바뀌면서, 이제야 제대로 된 큰 집에서 정치를 하고 있지 않나. 과거 국민의당·바른미래당 시절과 지금 국민의힘 시절은 정말 다르다. 신당 때 먼지 폴폴 날리는 흙바닥에서 뛰었다면, 이제 잔디밭에서 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날아다니고 있다."
Q. 동작갑은 보수정당에 험지다. 약 20년 동안 민주당을 지지한 지역인데 자신있나.
"자신 있다. 최근 세 번의 선거에서 모두 국민의힘이 이겼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선된 2021년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과 지선.
특히 지방선거 성과가 두드러진다. 서울 25곳의 구청장 중에 국민의힘이 17곳에서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동작갑에서 구청장을 배출하는 것은 물론, 시의원 전원 당선, 구의회까지 장악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Q.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나.
"장진영이 왔으니까(웃음). 내가 2020년 당협을 맡을 때, 책임당원이 300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3100명이다. 3년 동안 10배가 늘어난 것이다. 서울시 각 당협의 평균 당원수가 2000명 정도니, 동작갑이 얼마나 불모지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보수정당이 20년 동안 선거에서 지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
나는 무조건 지역주민을 많이 만났다. 길거리 나가서 당원 모집하면, 하루에 3시간 동안 100명이 가입하고 그랬다. 얼마든지 우리 당을 지지할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그동안 국민의힘이 다가가지 못했다고 본다.
또 '지구당의 플랫폼화 실험' 이런 것들이 다 어우러져 나온 성과라고 본다. 그리고 동작에 호남 분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내가 호남 출신이라, 민주당을 지지했으나 실망했던 분들에게 '명분'을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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