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다이어리]이름만 경기침체?...월가 신조어가 말해주는 시장

뉴욕=조슬기나 2023. 7. 3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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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코뿔소(rhino)와 같은 발음의 ‘리노(RINO)’는 미국에서 공화당 내 온건파들을 공격할 때 자주 등장하곤 하는 단어다. 공화당 정치인이 ‘이름만 공화당원(Republicans In Names Only)’이라는 뜻의 리노로 낙인이 찍힐 경우 그 여파는 무시하기 어렵다. 코뿔소를 사냥하듯 가짜 공화당원을 척결하자는 리노 헌터클럽 등에 의해 낙선 운동 대상에 오르는가 하면, 당 지지자들로부터 선거자금 모금도 어려워진다. 지난 몇 년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내 정적들을 공격할 때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한층 더 ‘정치적 낙인’의 성격을 띠게 됐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최근 들어 워싱턴DC가 아닌, 월스트리트에도 리노가 등장했다. 얼마 전 골드만삭스가 뉴욕증시를 가리켜 "리노(RINO·Recession In Name Only) 랠리가 시작됐다"고 표현하면서부터다. 이는 해석 그대로 ‘이름만 경기침체’라는 뜻이다.

당초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해 3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 사이클에 돌입했을 당시만 해도 시장에서는 올해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예고했던 침체는 아직 오지 않았다. Fed가 기준금리를 무려 5%포인트 이상 끌어올렸음에도 미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시장 전망을 웃도는 2.4%를 기록했다. 미 경제를 떠받치는 소비지출은 증가세고, 실업률은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여기에 뉴욕증시도 올해 들어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연초 대비 나스닥 지수의 상승폭은 37%에 육박한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지난주까지 무려 13거래일 연속 상승장 기록을 썼다. 골드만삭스는 "고객들이 올해 S&P500지수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묻고 있다. 대답은 ‘예’"라고 전했다. 이것이 바로 ‘이름만 경기침체’인 랠리라는 설명이다.

스위스 SYZ는 "인플레이션은 식고 있고 연착륙은 이제 그럴듯한 결과로 보인다"면서 "이로 인해 골드만삭스가 제공한 새로운 약어가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파이낸셜 리뷰는 "트레이더는 좋은 약어들을 좋아한다"면서 "증시가 속도를 내면서 리노 랠리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최근 증시와 경제 상황을 설명하는 신조어들로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와 함께 리노를 꼽았다. 이 매체는 "많은 시장 전문가들이 올해 뉴욕증시 랠리와 놀라운 경기부양력에 대한 교과서적 설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면서 "시장 동향을 이해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약어로 눈을 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증시 급등세를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신조어인 포모는 나 혼자 흐름에서 뒤처지거나 돈 벌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뒤늦게 추격 매수에 나서는 현상을 가리킨다. 챗GPT 열풍 이후 인공지능(AI) 관련주 매수 붐이 크게 일었던 것도 이러한 포모 심리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기업공개(IPO) 시장에서도 포모 심리가 확인되는 등 부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제러미 시겔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교수가 경기침체 우려 속에서도 여전히 탄탄한 미국의 소비지출 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신조어는 욜로다. ‘한번 사는 인생 제대로 즐기자’는 뜻의 욜로는 미래보다는 현재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리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소비자들이 계속 지갑을 여는 배경에는 이러한 욜로 소비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최근 몇년간 시장에서 자주 쓰인 신조어들론 다른 투자 대안이 없다는 뜻의 ‘티나’(TINA·There Is No Alternative), 합리적인 대안이 있다는 의미의 '타라'(TARA·There Is Reasonable Alternatives)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신조어들은 시장의 방향성을 간단히 설명하고, 보다 쉽게 시장을 읽어내는 키포인트 역할을 한다. 그 말을 생긴 맥락을 알아야만 시장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투자자들로선 월스트리트가 쏟아내는 이러한 신조어들을 그저 ’단어 만들어내기‘라고 무시하기도 어렵다. 경기침체냐, 연착륙이냐. 한층 더 커진 불확실성 속에서 다음 월스트리트가 주목하는 신조어가 무엇이 될지 유심히 지켜봐야 할 때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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