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거대한 성…'탄도미사일 킬러' 정조대왕함이 떴다 [이철재의 밀담]

이철재 2023. 7. 30.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다 위의 거대한 성.

지난 27일 울산 HD현대중공업 앞바다에 뜬 해군의 신형 이지스 구축함인 정조대왕함을 처음 본 느낌이었다. 낮게 깔린 해무(海霧)를 배경으로 거대한 성채가 우뚝 솟은 모습과 같았다. 정조대왕함(170mㆍ8200t)은 해군의 구축함 가운데 가장 크고 무겁다. 지금까지 가장 거대했다는 세종대왕함(166mㆍ7600t)보다 4m 더 길고, 600t 더 무겁다.

정조대왕함의 함포. 녹이 슨 장비는 시험평가용 웨이트(weightㆍ무게추)다. 이철재 기자


지난해 7월 HD현대중공업에서 진수한 정조대왕함은 내년 8월까지 시험평가를 받고 있다. 진수식을 마친 전투함을 해군이 바로 운용하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꼼꼼한 시험평가에 통과해야만 해군이 이를 인수하고 취역시킨다. 해군 함정목록에 오르고 전투함에 다는 취역기를 받는 과정이 취역이다.

정조대왕함은 내년 11월 취역할 계획이다. 작전부대가 취역한 전투함을 전력화하는데 보통 1년 정도 걸린다. 그러고 나서 작전에 투입된다.

박경민 기자


정조대왕함은 이번 달부터 울산 앞바다에서 시험항해 중이다. 배를 직접 모는 시험항해는 580여 개 시험평가 중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정조대왕함을 건조한 HD현대중공업과 협력업체를 비롯해 해군,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등에서 나온 150여 명이 시험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이지스 전투체계를 만든 미국 록히드마틴의 기술진도 함께 작업하고 있다.

이들은 정조대왕함을 직접 타고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지난 24일(월요일) 출항한 뒤 보급ㆍ휴식을 위해 입항하는 28일(금요일)까지 시험항해가 이어졌다. 그 사이 통항선이 부지런히 사람과 물자를 정조대왕함에 날랐다. 통항선은 셔틀버스처럼 정조대왕함과 항구를 오가는 배다.

정조대왕함의 복도. 비닐이 덮인 장비가 보인다. 이철재 기자


이날 통항선을 타고 정조대왕함에 승함했다. 함 내부는 시험평가 인원이 바삐 돌아다니면서 꽤 북적거렸다. 이들이 식사하는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 함내 곳곳에 비닐 포장이 뜯기지 않은 장비가 보였다. 새로 뽑은 차가 생각났다.

방사청 사업관리 담당인 장상훈 해군 소령은 “시험평가는 모순과 같은 작업”이라며 “성능을 확인하려면 배를 치열하게 몰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해군에게 깨끗한 상태로 배를 넘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조대왕함의 복도. 미설치 장비가 발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테니스공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철재 기자


바닥에는 테니스공이 군데군데 있었다. 장비를 설치해야 할 곳인데, 취역 전이라 빈 상태로 놔두되 사람이 지나가다 발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 있어 테니스공으로 보호하려는 조처다.

시험항해 중인 정조대왕함. 이철재 기자


정조대왕함 함미에서 바라본 웨이크(항적). 이철재 기자


정조대왕함이 항해 속도를 19노트(약 시속 35㎞)까지 높였다. 선내에선 배가 움직이고 있다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급속변침 기동을 하는 데도 요동이 거의 없었다. 최고 속도(30노트ㆍ약 시속 56㎞).로 항해하면 무게 중심이 낮은 스포츠카처럼 묵직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크고 무거운 전투함이 기상이 나빠도 작전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다.

정조대왕함 함교에서 바라본 함수. 함포와 근접방어체계가 보인다. 녹이 슨 장비는 시험평가용 웨이트(weightㆍ무게추)다. 이철재 기자


배를 조타하고 지휘하는 브릿지(함교)에 올랐다. 그런데 정조대왕함의 함장은 브릿지보다 CCC(전투지휘실)에 더 자주, 더 오래 머무른다. CCC엔 각종 모니터와 콘솔이 있는데, 이를 통해 배의 장비를 통제하고 무기를 조종할 수 있다. CCC는 군사 보안 때문에 이날 공개되지 않았다.

정조대왕함은 최신형 이지스 전투체계와 AN/SPY-1D 레이더를 탑재해 1800㎞ 넘는 거리에서 1800개가 넘는 목표물을 탐지ㆍ식별할 수 있다.

이지스 체계는 베이스라인(Baseline)으로 구분한다. 세종대왕함의 이지스 체계 베이스라인은 7.1이고, 정조대왕급은 9.2다. 정조대왕함 인수 함장인 김정술 해군 대령은 “윈도에 비유하자면, 세종대왕함엔 윈도 7이 깔려있고 정조대왕함엔 윈도 11이 설치돼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보통 인수 함장이 초대 함장을 맡는다

세종대왕함은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BMD(탄도미사일 방어) 기능을 갖췄지만, 성능은 제한적이다. 또 탄도탄 요격 미사일이 없다. 반면 정조대왕은 완전한 BMD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또 탄도탄 요격이 가능한 SM-3와 SM-6를 발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세종대왕함은 북한 탄도미사일의 탐지ㆍ추적 능력을, 정조대왕함은 탐지ㆍ추적ㆍ요격 능력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정조대왕함은 국내 독자 개발한 통합 소나 체계를 달았다. 선체 고정형 음파탐지기(HMS)ㆍ저주파 능동 예인 음파탐지기ㆍ다기능 수동 음파탐지기로 이뤄진 통합 소나 체계는 세종대왕함보다 더 먼 거리에서 더 정확하게 적 잠수함이나 어뢰를 발견할 수 있다.

정조대왕함의 함포. 녹이 슨 장비는 시험평가용 웨이트(weightㆍ무게추)다. 이철재 기자


함수로 옮기니 거대한 함포가 눈에 들어왔다. 구경(지름)이 5인치(127㎜)인 함포는 최대 37㎞까지 포탄을 쏴 적 함선을 공격하고, 적진에 상륙하는 해병대에 화력을 제공할 수 있다.

정조대왕함의 근접방어체계. 함수와 함미에 1문씩 설치됐다. 이철재 기자


함포 너머로 근접방어무기체계(CIWS)가 있다. CIWS는 기관포로 적 미사일을 떨구는 무기다. 함대공 미사일로 적 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실패할 경우 최후의 방어선이 CIWS다. 정조대왕함의 함수와 함미엔 미국에서 수입한 CIWS인 팰렁스(20㎜ 기관포) 2문이 있다.

정조대왕함의 기관실. 이철재 기자


함내 깊숙한 기관실에서 2만 9100마력을 내는 가스터빈 엔진 4기가 가동하고 있었다. 가스터빈 엔진은 힘이 좋지만, 시끄럽고 연료를 많이 소모한다. 그래서 정조대왕함은 하이브리드 전기 추진체계(HED) 2대를 추가로 장착했다. 저속 항해 땐 전기로 모터를 돌린다. 배가 조용히 움직여 대잠수함 작전에서 유리하고, 연료도 절약할 수 있다.

정조대왕함 헬기 격납고. 녹이 슨 장비는 시험평가용 웨이트(weightㆍ무게추)다. 이철재 기자


헬기 격납고로 갔다. 정조대왕함의 헬기 격납고는 세종대왕함보다 널찍하다. MH-60R 시호크 해상작전헬기 2대를 넣어둘 수 있다. 이 헬기는 적 잠수함을 찾은 뒤 이를 격침하고, 적 함정을 공격할 수 있다. 장상훈 소령은 “앞으로 무인 항공기(UAV)ㆍ수상정(USV)ㆍ잠수정(UUV)도 운용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설계했다”고 말했다.

정조대왕함의 수직발사관(VLS). 아직 완전한 숫자로 채워지지 않았다. 함수와 함미에 모두 88개의 발사관이 마련될 계획이다. 이철재 기자


헬기 격납고를 거쳐 함미로 나가니 수직발사관(VLS) 개폐 시험을 하고 있었다. VLS는 미사일을 쏘는 무기다. 정조대왕함엔 함수와 함미에 VLS가 각각 설치됐고, 모두 88개의 발사관이 있다.

정조대왕함은 세종대왕함에 없는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과 함대지 탄도미사일을 무장할 예정이다. 방사청은 지난 3월 정조대왕함의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로 SM-6를 미국에서 사오기로 결정했다. 대기권 밖에서 탄도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는 SM-3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함대지 탄도미사일은 지난 4월 개발이 착수됐다. 유사시 북한 후방의 목표물을 타격하는 전략 무기가 함대지 탄도미사일이다.

정조대왕함이 세종대왕함보다 더 크고, 승조원도 적지만(정조대왕함 200여명, 세종대왕함 300여명), 거주구역이 더 넓어진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전투함은 무기와 장비를 먼저 집어넣고 남는 공간에 거주구역이 들어간다. 그런데 정조대왕함이 세종대왕함보다 무기와 장비가 더 많다.

정조대왕함에서 함장과 부장, 기관장만 혼자 격실(침실)을 쓴다. 장교는 2명이, 원ㆍ상사는 4명이 같은 격실에서 잔다. 장교 격실엔 개인 금고가 있으며, 문을 열면 책상처럼 쓸 수 있는 수납공간이 있다.

정조대왕함의 장교 격실. 책상처럼 쓸 수 있는 수납공간이 있다. 이철재 기자


정조대왕함의 원ㆍ상사 격실. 이철재 기자


정조대왕함의 수병 격실. 이철재 기자


중사 이하는 6명 또는 9명이 격실을 공유한다. 수병(병사)들은 휴게실이 따로 마련됐다. MZ세대 수병들은 여기에 게임기를 두고 여가에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방극철 방사청 함정사업부장은 “거주구역의 가구를 인간공학적으로 설계했고, 사용자 동선을 고려해 배치해 승조원의 편의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그는 “방사청을 비롯한 업체, 관련 기관 등 정부의 노력으로 정조대왕함의 완벽한 임무수행과 적기 인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찬준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위원은 “정조대왕함과 같은 급 2척이 모두 실전배치된다면 해군은 영해뿐만 아니라 원양에서도 작전할 수 있는 기동함대를 완성하며, 북한 미사일 위협에 더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고 평가했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