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런웨이, 언더붑도 히트 쳤다…자크뮈스의 인스타 활용법 [비크닉]

유지연 2023. 7.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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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명 ‘기저귀’ 런웨이로 화제가 됐던 패션쇼 기억하세요? 지난달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패션 브랜드 ‘자크뮈스’의 쇼에서 모델 캔달 제너가 흰 구름 모양 미니드레스를 입고 런웨이를 걸었던 장면입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각) 프랑스 베르사유 궁에서 열린 자크뮈스 2023 FW 패션쇼의 한 장면. 사진 자크뮈스 공식 인스타그램


과장된 디자인으로 혹평도 나왔지만, 궁전 대운하를 배경으로 펼쳐진 한 폭의 그림 같은 쇼는 참 볼만했습니다. 특히 운하에 띄운 배 위에서 쇼를 관람하는 방식이 근사했죠.

브랜드 자크뮈스를 이끄는 디자이너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는 주로 자연을 활용한 대형 야외 쇼를 여는 ‘패션쇼 장인’으로 불립니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젊은 디자이너지만 지난해 기준 매출 2억 유로(2841억원)를 기록, 2025년에는 5억 유로(7102억원)까지 예상하는 패션계 ‘블루칩’이기도 하고요. LVMH·케링 등 대기업에 속하지 않은 신생 브랜드가 이룬 성과로는 놀랍죠.

지난달 27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에서 열린 자크뮈스 2023 FW 패션쇼. 사진 자크뮈스 공식 홈페이지


이 1990년생 디자이너의 진정한 비기는 소셜 미디어의 활용에 있어요. 무려 600만 명에 가까운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이를 증명하죠. 멋진 패션쇼도, 초소형 가방이나 언더 붑(밑 가슴이 드러나는) 가디건 같은 히트 상품도 결국 소셜 미디어에서 퍼져 나간 것이니까요.

오늘 비크닉은 MZ세대 사이 신흥 명품으로 떠오른 자크뮈스의 지난 여정을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영민한 SNS 전략가’로 불리는 자크뮈스의 행보에, 요즘 브랜드가 참고할만한 성공 방정식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요. ‘브랜드로 트렌드 읽기’ 시작해보겠습니다.


하루 180만 눈도장, 라벤더밭 그 쇼


“인스타그램에서 귀엽게 보이면 팔린다.” 2019년 W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자크뮈스가 남긴 말입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반박하기 어렵죠. 현재까지도 패션 업계서 가장 강력한 홍보 수단은 사진 기반 소셜 미디어, 인스타그램이니까요.
1990년생 디자이너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 사진 자크뮈스 공식 인스타그램

남프랑스 시골 출신, 정식 패션 교육을 받지 않고 19세에 브랜드를 만든 젊은 디자이너가 세계적 인지도를 얻은 계기는 소셜 미디어로 퍼져나간 패션쇼 이미지였습니다.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라벤더밭 패션쇼(2019)에 이어, 밀밭 패션쇼(2020), 하와이 패션쇼(2022), 소금 광산 패션쇼(2023) 등 줄줄이 화제의 패션쇼를 기획했죠.

코로나19 한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킨 채 밀밭에서 열렸던 2021SS 컬렉션 쇼. 사진 자크뮈스 공식 인스타그램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대형 쇼는 인스타그램을 타고 수십만의 ‘좋아요’를 불러왔습니다. 특히 라벤더밭 쇼는 포스팅 직후 단 하루 만에 180만명의 팔로워가 늘어나는 기록을 세웠고요. 이어진 밀밭 패션쇼는 탁 트인 시골 풍경으로, 팬데믹 기간 여행을 향한 목마름을 채워 줬죠.

브랜드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남부의 한 라벤더 밭에서 열렸던 2020 SS 컬렉션 쇼. 사진 자크뮈스 공식 인스타그램

팔로우 부르는 ‘참’계정, 기획도 ‘인스타그래머블’하게


자크뮈스는 인스타그램을 직접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혼 없는 브랜드 계정이 아니라, 디자이너가 자신의 사진첩에 스크랩한 이미지를 엿보는 듯한 착각이 드는 이유죠.
자크뮈스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는 2023년 7월 기준 585만명에 달한다. 사진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그는 브랜드 철학을 읊는 대신 방문한 휴가지 사진을 올립니다. 바뀐 사무실 인테리어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요. 도시를 배경으로 하늘에서 레몬이 떨어지거나 버스만큼 큰 가방이 시내를 달리는 진기한 영상으로 시선을 끌기도 합니다. 또한 남프랑스 시골의 풍경 사진을 올려 브랜드가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죠. 홍보 냄새 없는 흥미로운 이미지들은 자연스레 ‘팔로우’를 유도합니다.

현재 585만명이 지켜보는 계정은 파급력 면에서 이미 대형 미디어입니다. 초소형 가방 ‘르 치키토’를 손바닥 위에 올려둔 사진은 잇백(it bag·베스트셀링 가방) 없는 시대, 잇백의 위상에 가까운 인지도를 만들어냈죠. 지난해부터 시작한 나이키와의 협업 컬렉션은 가장 먼저 인스타그램에 공개, 출시와 동시에 품절 사태를 일으켰습니다.

초소형 가방의 시대를 열었던 르 치키토 백 모양의 액세서리. 사진 자크뮈스 공식 인스타그램.


소셜 미디어 흥행 문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자크뮈스는 팝업을 할 때도 ‘인스타그래머블’하게 기획합니다. 핑크색 자판기에 제품을 담아 24시간 팔았던 팝업이나 거대한 토스터기 구조물과 카페·꽃집 등을 함께 구성한 체험형 팝업은 인증 샷을 찍어 올리기 적합한 형태로 고안됐습니다.


트렌드 제안이 진짜 능력


자판기에서 가방을 판매한 24시간 팝업 스토어. 사진 자크뮈스 공식 인스타그램
패션업계선 특히 자크뮈스의 트렌드 제안 능력을 높이 삽니다. 2013년부터 자크뮈스를 수입해 국내에 소개해왔던 삼성물산 편집숍 10꼬르소꼬모 전보라 팀장은 “트렌디한 디자인을 제안하는 감각이 천재적”이라고 평가하죠.

2013년 파리 패션 위크 기간, 한 쇼룸에서 이동식 옷걸이 두 개를 들고 나와 직접 옷을 팔고 있었던 자크뮈스를 만났다는 전 팀장은 “실루엣이 멋진 구조적 디자인이면서도, 선명한 색을 써 새롭게 보였다”며 10년 전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자크뮈스는 2018년 봄·여름 시즌을 겨냥해 발표한 ‘라 봄바’ 컬렉션 이후로 줄줄이 히트작을 냅니다. 관능적 실루엣의 비대칭 드레스, 커다란 라피아 소재 모자, 작은 가방의 유행을 불러온 르 치키토 백이 대표적이죠. 특히 블랙핑크 제니도 입었던, 밑 가슴이 살짝 드러나는 언더 붑 니트는 돌아온 ‘Y2K(세기말) 패션’을 상징했습니다.

Y2K 패션 트렌드를 이끌었던 자크뮈스의 가디건과 언더붑 패션. 국내선 블랙핑크 제니가 입은 옷으로 인기를 끌었다. 사진 자크뮈스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달 베르사유에서 발표한 2023 가을·겨울 컬렉션 ‘르 슈슈’도 최신 트렌드로 떠오른 ‘발레코어(발레복을 일상복처럼 입는 것)’를 반영합니다. 우리에겐 곱창밴드로 익숙한 헤어 스크런치 디자인을 활용, 새틴 소재의 부풀린 디자인과 토슈즈를 연상시키는 신발 등을 선보였죠.


‘90년대생’ 디자이너가 온다


자크뮈스의 성공은 요즘 디자이너의 역할을 다시 보게 합니다. 골방에서 디자인과 씨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몰이할 수 있는 마케팅 능력을 지닌 ‘(인)스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시대라는 의미죠.

루이비통은 올해 초 남성복 디렉터로 팝스타 퍼렐 윌리엄스를 선임했습니다. 겐조는 2021년 음악 프로듀서이자 디자이너 니고를 디렉터로 소환했고요. 모두 인스타그램 친화적 인물입니다.

루이비통은 올해 초 남성복 디렉터로 팝스타 퍼렐 윌리엄스를 임명했다. 사진 퍼렐 윌리엄스 공식 인스타그램


최근 패션 업계에서는 이른바 ‘스트리트 지인’이 디자이너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합니다. 스트리트 문화에 속한 패션·음악·예술 분야 유명인들이 품앗이하듯 서로의 쇼에 다녀가고, 제품을 입어가며 홍보해주는 거죠. 물론 이들의 모든 ‘화합 작용’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중계되고요.

인스타그램이 촉발한 이미지 만능의 시대, 디자이너인 동시에 인플루언서로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자크뮈스는 어느새 젊은 디자이너들의 본보기가 됐습니다. 꼭 패션이 아니어도,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의 계정은 훌륭한 교본이 될 것 같습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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