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들 쫙 깔린 데서 "이 주민설명회는 무효"
"나는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의 아이'였던 한 소녀가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합니다. 12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그 소녀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 ‘그들’은 안녕할까요? ‘그들’의 삶, 일상, 활동과 목소리를 따라 ‘우리’로 얽힌 사람들, 그 인연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연결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답을 찾아 원불교환경연대 탈핵기록단이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이웃’을 만나러 갑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들을 곱씹다 보면 어느 지역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라고 덮어두지는 못할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잠깐만 내주세요. <기자말>
[이태옥 기자]
1편 <기후재난 보고도 또 석탄발전... 다시 시작된 '싸움의 전설'>(https://omn.kr/24z0z)에서 이어집니다.
12개월 할부 삼성 디지털카메라
삼척핵발전소를 유치하겠다고 신청한 김대수 삼척시장에게 핵발전소 유치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지속적으로 묵살 당한 핵반투위는 2012년 6월 삼척우체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척시장 주민소환운동 돌입을 선포했다.
"1, 2차 삼척 핵반대 투쟁을 저는 잘 몰랐어요. 어촌 마을에서 아이들 키우고 사느라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도 몰랐죠. 그러다가 2010년 김대수 시장이 핵발전소 유치신청을 하면서 '큰일 났구나' 싶었죠. 다음 해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났어요."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걱정에 싸인 옥분씨는 삼척도계성당 주임신부인 박홍표 신부가 핵반투위 사무실에서 탈핵 미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사에 참례한다. 두 번째 탈핵 미사에 참여한 것이 2023년 오늘 삼척평화 이옥분을 여전히 현장에 있게 했다.
"삼척우체국 앞에서 삼척시장 주민소환운동 기자회견을 한다는 거예요. 제가 엄청 소심하고 겁이 많아요. 기자회견을 가긴 가야겠는데 용기는 안 나더라고요."
집에만 있기가 더 어려워진 옥분씨는 멀찍이 떨어져 기자회견을 보다가 주머니에서 딸이 사용하던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삼척평화의 반핵-탈핵운동의 기록과 홍보의 시작이었다.
"그 당시 참 어렵게 살았어요. 남편이 친구들과 하던 공동어장 사업도 잘 안되고 살림이 곤란했는데, 디지털카메라를 꼭 사야겠더라고요. 삼척 시내에서 가장 큰 마트에 가서 진열된 카메라를 보는데 캐논과 삼성 카메라가 있었어요. 직원이 캐논 렌즈가 좋다고 권하는데 저는 삼성 카메라를 선택했어요.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삼성중공업이 참여한다고 들었거든요. 오기가 났죠. 삼성 카메라로 반드시 핵마피아들을 이겨내야겠다는 다짐이기도 했어요. 카메라 사용법과 인터넷을 알긴 뭘 알아요. 하나도 몰랐죠."
새 디지털카메라를 손에 쥔 옥분씨는 삼척우체국에서 실시한 인터넷 교육 일주일을 수강하고 온라인 홍보 실전에 들어갔다. 카메라를 든 덕에 옥분씨는 핵발전소 유치 찬성 주민들과 경찰, 관공서 등의 표적이 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이유로 유치위 활동하는 '깡패'들이 욕을 하면서 겁을 줬지만 옥분씨는 "당신 아이와 우리 아이가 같은 학교 친구일 수도 있어요. 당신 아이가 핵발전소 막아낼 때 아빠는 뭐 했냐고 물으면 정정당당히 답할 수 있어요?"라며 눈을 똑바로 바라봤더니 슬그머니 내빼더란다.
"우리 집이 삼척 시내에서 25km정도 떨어져 있어요. 매주 수요일 탈핵 미사와 촛불집회까지 참석하고 버스 타고 마을 앞에 내리면 웬 차가 슬쩍 돌아서 나가곤 했어요. 감시받는다고 생각했죠."
▲ 삼척우체국은 삼척 탈핵, 탈석탄, 탈송전탑 운동의 상징이다.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를 이끌던 박홍표 신부님도, 한국 사회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골롬반선교회 함 패트릭 신부님도 매일 오후 5시에 열리는 탈 석탄 홍보 활동에 참여했다. 앞줄 가운데가 삼척평화 이옥분, 성원기 교수와 김덕년씨는 오래된 동지다. |
ⓒ 이옥분 |
삼척 탈핵운동의 상징인 삼척우체국 앞에서는 매일 오후 4시부터 탈탈탈(탈핵·탈석탄· 탈송전탑) 도보 순례와 5시 피케팅이 진행된다. '탈핵 희망 국토 도보 순례'가 탈석탄과 탈송전탑까지 담아내며 그릇을 키웠다. 배낭에 '탈탈탈' 깃발을 꽂고 삼척우체국에서 시청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탈탈탈' 순례단에 우린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건 아닐까?
매주 수요일 골롬반 선교회와 천주교 기후행동, 생태환경에 관심 있는 원주교구 신부님들이 주관하는 천주교 미사는 천주교 신자인 옥분씨와 성원기 교수에게 큰 힘이 된다. 옥분씨도 골롬반 선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니 예견된 인연인 듯하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여름·겨울 방학이면 '핵발전소 반대' 깃발을 배낭에 꽂고 전국의 핵발전소 지역을 순례했던 성원기 교수는 재직 중이던 강원대학교를 퇴임하자마자 삼척석탄발전소 반대 투쟁위원회 공동 대표를 맡아 '탈석탄 삼척'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성원기 교수의 선창에 따라 세 차례나 핵발전소를 막아낸 전설의 김옥선 전 삼척여고 총동문회장과 삼척 주민들이 두 주먹 불끈 쥐고 외친다.
"포스코는 삼척블루파워 석탄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라."
"포스코는 석탄 육로 운송을 당장 중단하라."
탈핵 희망 국토 도보 순례
안식년 동안 산티아고 등 성지 순례를 하고 우연히 반핵 집회에 참석한 성원기 교수가 2013년 6월 '탈핵 희망 국토 도보 순례'(이하 탈핵순례단)를 시작한다. 성지 순례자에서 탈핵 순례자로 변신하는 데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성원기 교수가 부산 고리에서 시작해 삼척까지 탈핵 도보 순례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반갑고 설레서 가슴이 뛰는 거예요. 따라나설 수는 없으니 전화로 어디냐고 물었어요. 부산 고리에서 출발해서 걷고 있다고 해서 이 길은 성 교수 개인의 길이 아니니 가는 길목마다 사진과 영상을 찍어서 나에게 보내라고 했어요."
성 교수가 보낸 사진과 영상은 '삼척평화' 페이스북을 타고 전국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며칠 후 경주 동국대 김익중 교수가 삼척평화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옥분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김익중 교수는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고 충격을 받아 본격적인 탈핵 운동을 시작한 즈음이었다. 김익중 교수는 시민들의 모금으로 방사능 측정기를 사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면 탈핵 순례단에 합류할 수 있느냐고 물어서 장소와 연락처를 알려줬어요. 며칠을 성원기·김익중 교수가 함께 걸으면서 핵발전소 폐쇄 의지를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된 거죠."
성 교수에게 전송받은 사진으로 탈핵 순례단이 어디를 지났고 누가 합류했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려내던 옥분씨는 5일 후 탈핵 순례단에 참가한다. 옥분씨가 함께 걸으니 탈핵 순례단의 활동 사진과 영상은 풍성해졌고 일거수일투족이 상세히 세상에 전달되었다.
▲ '탈핵 희망 도보 순례'는 탈핵을 염원하는 모든 사람의 길이 되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여름, 겨울 핵 발전소가 있는 모든 곳을 연결하는 순례길이었다. |
ⓒ 이옥분 |
탈핵 희망 국토 도보 순례는 2013년 여름부터 2019년 8월까지 매년 여름과 겨울 한 달여 동안 진행되었고 탈핵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이 그 길에 함께했다.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탈핵 선언 2년 후인 2019년 6월 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삼척핵발전소 예정구역 지정고시'를 철회했다. 삼척핵발전소 반대투쟁 세 번째 승리의 마침표였다.
'탈핵 희망 국토 도보 순례'는 삼척핵발전소가 백지화된 2019년 여름 순례를 마치고 8월 24일 공식 마무리했다. 그 중심에 성원기 교수가 있었고 '삼척평화 카메라'가 세상과의 소통을 틔웠다. 누군가는 길을 내고, 누군가는 그 길을 넓혀내고, 하루라도 그 길을 걷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배낭에는 '탈핵 희망 깃발'이 펄럭이며 번져나갔다.
저절로 이뤄지는 역사는 없다. 절실함이 만들어 낸 승리다.
이 주민설명회는 무효입니다
탈핵 운동가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민-민 갈등이다. 한수원과 정부는 '핵발전소유치위원회(이하 유치위)'에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민-민 갈등을 조장한다. 삼척은 지역 깡패들까지 엮이면서 반대편 주민들을 압박했다.
"시장에서 장사하던 장애가 있는 시민에게 탈핵 미사, 촛불 집회에 가지 말라며 협박하고 치킨집 하는 사람에게도 찾아가서 장사 그만하고 싶냐고 행패를 부리는 등 정치 깡패들이 설치고 다녔어요. 삼척에서 가장 큰 문방구 하는 사람이 반대 투쟁에 함께하니 공무원들이 거래를 딱 끊으면서 압박을 했죠. 문방구 사장님은 처음엔 후원만 했는데 열받아서 집회도 나오고 끝까지 함께했어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주민수용성'이 강조되면서 주민 설명회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주요 일정이었다. 그러나 주민설명회는 내용과 상관없이 개최여부만으로 주민수용성에 가산점을 주는 요식 행위일 뿐이었다.
▲ 정부가 핵발전소, 핵폐기장, 다시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로 삼척을 지목하면서 1980년대부터 2019년까지 삼척은 탈핵 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위기가 올 때마다 삼척 시민들은 한데 뭉쳤다. |
ⓒ 이옥분 |
▲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 는 없다" 삼척탈핵운동을 이끈 구호다. 똘똘뭉쳐 죽지 않고 핵발전소를 막아냈다. |
ⓒ 이옥분 |
그러나 5월 25일 한수원과 지경부는 삼척문화예술회관에서 기습적으로 주민설명회를 연다. 1차 주민설명회 무산 투쟁 때와 같이 반대 대책위 주민들이 몸에 끈을 묶어 정문을 막아섰다. 경찰들도 깔렸고 유치 찬성 측은 젊은 여성들을 내세워 반대편에서 유치 찬성 피케팅을 했다.
"반대 주민들이 정문을 막아섰는데 느낌이 이상하더라구요. 혼자서 카메라를 감추고 문화예술회관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정문 옆 작은 문으로 찬성 측 주민들을 입장시키고 있었어요. 잠시 고민을 하다가 할머니 한 분 손을 잡고 줄 서서 들어갔어요. 할머니 말이 전날 7000원짜리 식권을 나눠 줘서 뭔지도 모르고 밥 먹으러 왔다는 거예요. 핵반투위 사람들은 정문 앞에서 으쌰으쌰 하고 있는데 나는 행사장에 들어와 버린 거죠. 아침 8시 30분쯤 됐는데 이미 설명회가 시작됐어요."
한수원과 지경부는 예정 시각보다 빨리 시작해 속전속결로 끝내버리려는 속셈이었다. 무대 위 한수원 발표자는 근덕면에 병원이 들어서고 청정에너지로 지역 경제가 발전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근덕면을 '원전 유토피아'로 그려내고 있었다. 기가 막혔지만, 기둥 뒤에 몸을 감추고 카메라에 설명회장 풍경을 담았다. 주민설명회장을 채운 사람들은 핵발전소 예정지인 근덕면 주민들이 아닌 삼척 시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질문을 하라는데 한수원이 미리 나눠준 시나리오대로 질문을 하는 것 같았어요. 전기요금은 얼마나 감면해주냐?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이 뭐냐? 등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지요. 그렇게 몇 차례 질의응답이 오가더니 이제 질문 없으면 마치겠다고 하는 거예요."
옥분씨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아마 진행자는 나도 시나리오 중 한 사람이라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하라고 하더라고요."
마이크를 넘겨받은 옥분씨가 "이건 주민설명회가 아니다. 근덕면 주민들은 지금 바깥에서 반대하며 싸우고 있는데 이게 무슨 주민설명회냐. 이런 주민설명회는 무효다"라고 소리치자 여기저기서 고성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깍두기 머리를 한 찬성 측 대표가 대뜸 저년이 어떻게 들어왔어. 왜 못 막았어. 빨리 끌어내 막 이러는 거예요. 여기저기서 마이크 빨리 뺏으라고 난리가 나고... 결국 마이크를 뺏더니 사회자가 주민설명회가 끝났다고 선언해 버렸어요."
무대 아래쪽에 깍두기 머리를 한 사람들이 쫙 깔려있던 상황에서 극소심형 옥분씨의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 주민설명회는 무효입니다' 내가 이 말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끝나고 나오는데 그제야 두려움이 밀려오더라고요."
법륜 스님께 묻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4년 정도 삼척 시내에 나와 살 때였어요. 2012년 5월 정도 됐는데 한 차례 주민설명회를 무산시키고 언제 또 기습적으로 주민설명회를 할지 몰라 늘 걱정이 많았어요. 하루는 시장을 다녀오는데 우연히 본 벽보에 '법륜 스님의 희망찾기 즉문즉설' 광고가 붙어 있는 거예요. 갑자기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찬핵·반핵을 불문하고 사람이 많이 모일 거 아니에요? 법륜 스님은 정의로운 분이라 왠지 핵발전소에 대한 올바른 이야기를 해줄 것 같았어요. 많은 사람에게 핵발전의 부당성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뛰더라고요."
시간을 보니 이미 행사는 진행 중이었다. 집에 가서 짐을 부리고 나니 마칠 시간이 되어가는 것 같아 잠시 망설였지만, 서둘러 콜택시를 불러 행사장인 강원대로 향했다. 강당에 들어서자 계단까지 빼곡히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옥분씨가 자리를 잡자마자 "이제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라는 사회자의 멘트가 귀에 꽂힌다. 무조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같이 손을 든 청년에게 마지막 질문 기회가 주어졌다. 대학생의 질문은 간단했고 법륜스님의 답변도 짧았다. 이제 마치겠구나 싶어 포기한 옥분씨가 짐을 챙겨 나오려는데 법륜 스님이 "저 뒤에 계신 아주머니 질문하실 게 뭡니까?"라며 옥분씨를 가리킨다.
"그 순간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에게 핵발전소의 문제를 알리려면 반대냐? 찬성이냐? 라고 물어서는 안된다."
마이크가 옥분씨에게로 향하는 찰나의 순간에 질문을 정리했다.
"지금 삼척에는 핵발전소 건설을 두고 친구, 친척, 가까운 이웃들이 분열돼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고 물었더니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런 질문을 왜 여기에서 합니까?"라고 항의한다.
"법륜 스님은 찬성, 반대로 나눠 분열된 현상을 이야기 하기 전에 원전이 무엇인지 아냐고 묻는 거예요. 그러더니 차분히 원전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왜 찬성과 반대로 분열되었는지 원인을 짚어줬어요.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어요."
한 사람이 시작한 박수는 행사장을 꽉 메웠고 옥분씨는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니 감사와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
- 3편 <삼척 바다에 마음의 짐 놓고 떠난 후쿠시마 아이들>(https://omn.kr/24yq0)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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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매거진 '탈핵 잇_다'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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