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간식, 옥수수가 제철이다.

박희종 2023. 7. 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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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함께하는 전원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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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종 기자]

장마가 휩쓸고 지나간 골짜기는 소란하다. 조용히 흐르던 골짜기 도랑물 소리가 걸쭉해져서다. 일 년 내내 끊임이 없는 물소리가 오늘따라 힘차게 흐른다. 인고의 세월이 아쉬워서인가 여름과 함께 찾아온 매미는 아침부터 목놓아 운다. 골짜기의 설치 미술가 거미는 갖가지 멋진 예술품을 걸어 놓았다. 나무 위에도 걸었고, 잔디밭에도 맑은 이슬을 얹고 반짝인다. 벌써 새벽잠을 깬 이웃집 닭도 울어대는 골짜기엔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여름 골짜기 풍경은 싱그럽고, 저마다의 할 일을 하느라 아침부터 바쁘기만 하다. 산 넘은 따가운 햇살이 안개와 만남이 이루어졌고, 깜짝 놀란 안개는 슬그머니 산을 넘었다. 여름뻐꾸기가 싱겁게 울며 산을 넘는 아침, 농부들 발길도 바빠지기 시작한다. 텃논에 물꼬를 봐야 하고, 긴 비탈밭에 자란 배추를 돌봐야 해서다. 언제나 찾아오는 고라니가 있고, 산돼지도 가끔 출몰하는 동네이니 늘 걱정이다. 비탈 밭을 둘러친 긴 울타리가 있지만 밤새 안녕한지 새벽부터 마음이 바쁘다. 
 
▲ 아침에 만난 들녘 아침 산책길에 만난 들판이다. 검푸르게 자란 벼가 있고 여기저기엔 거미줄이 걸렸다. 농부들의 땀이 서린 들판이 풍성하게 자라는 여름이다.
ⓒ 박희종
 
장마가 지나고 무더위가 찾아왔지만 푸름이 짙어지면서 곡식들도 영글어 간다. 다락논의 볏잎이 가득해졌고, 고랭지 산지 배추도 몸집을 불렸다. 여름에 빠질 수 없는 고추밭도 붉게 물들어가고, 개꼬리를 내민 옥수수도 알차게 영글고 있다. 고추와 옥수수, 농촌을 풍성하게 해주는 작물이다. 농부들 발걸음이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농부들의 땀과 노력에 젖은 골짜기가 여름으로 짙어지고 있다.

여름날의 간식엔 옥수수가 있다

골짜기 곳곳에는 옥수수가 익어가고, 지나는 길가에도 옥수수가 지천이다. 전원의 골짜기에 옥수수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초봄에 심은 작은 푸름이 골짜기를 검푸르게 만들어 놓았었다. 서서히 여름이 짙어지면서 밭고랑이 가득해졌고 옥수수는 무럭무럭 익어갔다. 여름장마와 함께 몸집을 불려 어느덧 사람키를 넘어섰다. 개꼬리가 나오고 수염이 거뭇거뭇해지면서 옥수수는 익어갔다. 자전거 길에 찾아 간 작은 동네풍경, 여기에도 옥수수는 풍년이다. 온 밭이 옥수수가 바람 따라 일렁인다. 기어이 옥수수는 길거리로 나와 오가는 길손의 입맛을 다시게 했다.  
 
▲ 옥수수밭이 풍성하다. 시골사람의 효자작물인 옥수수밭이다. 뜰에서도 자라고, 비탈밭에도 가득한 옥수수가 따가운 햇살아래 풍성함을 보여주고 있다.
ⓒ 박희종
 
조용한 시골집, 이웃이 부르는 소리다. 옥수수가 익었으니 먹어보라 한다. 텃밭에 심어 봄부터 여름까지 돌본 옥수수가 영근 것이다. 지난해엔 몇 포기를 얻어 심어 옥수수를 수확하는 기쁨도 맛보았었다. 지나는 산새들의 쉼터였고, 앞산을 넘은 바람과 어울려 놀던 옥수수다. 전문 농사꾼이 지은 옥수수는 아니지만, 옥수수 맛은 일품이다. 가끔은 이가 빠진 듯이 엉성한 옥수수가 맛이 구수해서다. 쫄깃한 알이 입안에서 터지며 풍기는 구수함은 어린 시절로 데려다 놓고 말았다.

옥수수가 어머님을 소환했다

오래전, 여름날의 옥수수는 어머님의 소중한 보물이었다. 흰 수건을 질끈 두른 어머니는 장맛비를 마다하지 않고 텃밭을 오고 가셨다. 일 년의 세월을 견딘 씨 옥수수를 심는 것이다. 지난여름 씨알이 굵은 옥수수를 골라 껍질을 얇게 벗겼다. 대청마루 위 시렁에 질끈 묶여 봄을 맞이한 씨 옥수수다. 자식들 주전부리감인 옥수수를 포기할 수 없어서다. 한 여름 소나기를 맞고 어머님의 발걸음과 함께 옥수수는 영글어 갔다.

더위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어머니는 개꼬리가 나온다 하셨다. 옥수수수염이 검게 물들며 텃밭을 메운 옥수수가 바람에 일렁인다. 텃밭에도 심어졌고 마당 언덕에도 옥수수는 익어갔다. 옥수수수염이 검게 물들면 어머니는 텃밭으로 나셨다. 얼기설기 엮은 소쿠리에 옥수수를 따기 위해서다. 옹골차게 영근 옥수수를 안고 오는 발걸음은 가벼우셨다. 뜨락에 옥수수를 쏟아 놓고 껍질을 벗겨낸다. 

굵은 옥수수 알이 반짝이는 더운 여름날,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지피셨다. 한여름 무더위에 불을 지피시는 어머니, 더위도 마다 하지 않으셨다. 오로지 자식들의 먹거리를 위한 어머니였다. 여름날을 기억하게 하는 옥수수, 저녁을 먹고 출출해질 무렵 옥수수가 등장했다. 깔끌한 멍석옆엔 모깃불이 지펴지고 온 식구가 둘러앉았다. 잘 읽은 옥수수는 아버지 몫이었고, 구수한 옥수수를 먹는 저녁은 별빛마저 아름다웠다.

옥수수와 함께하는 별빛은 아름답다

앞산 비탈밭에 익어가는 옥수수가 산바람을 타고 있다. 넉넉한 잎을 바람이 그냥 두지 않아서다. 오래 전의 주전부리 옥수수가 이젠, 시골의 커다란 수입원이 되었다. 곳곳의 비탈밭이 옥수수로 가득하고 호젓한 길가에는 어김없이 옥수수를 팔고 있다. 지나는 차량들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여름이다. 어느 대학교수의 노력으로 지역민들의 쏠쏠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는 대학 찰옥수수, 언제 먹어도 구수하다. 고단한 물가 덕에 주머니가 버겁지만 여름날의 먹거리 옥수수는 시골의 효자작물이다. 
 
▲ 전원의 뜨락 밤이 찾아 온 전원은 조용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골의 밤, 여름이 간식이 옥수수가 오래전의 기억을 추억하게 한다.
ⓒ 박희종
 
장마에 지친 텃밭엔 아직 오이와 상추가 남아 있고, 보랏빛 가지가 반짝인다. 장마를 이겨낸 아삭이 고추와 청양고추도 주렁주렁 열렸다. 아침마다 모양과 크기가 달라진 가지이고 오이다. 아내는 벌써 텃밭을 일궈 씨를 뿌렸다. 텃밭구석에 아욱이 촉을 내밀고 시금치가 푸름은 아내의 노력이다. 건새우와 멋진 콜라보를 이루는 아욱은 문을 닫고 먹는다고 하지 않던가? 집 앞을 흐르는 도랑물은 여전해 웬만한 산장이 부럽지 않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모였다. 부산에 딸아 찾아왔고 수원에 사는 아들 내외가 시골집엘 들렀다. 전원에 찾아왔으니 한판 잔치를 벌여야 한다. 삼겹살을 굽고 푸성귀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서늘한 여름밤, 싱싱한 상추에 청양고추가 있고 오이와 보랏빛 가지가 등장하면 이보다 좋은 식탁은 있을 수 없다. 여기에 숯불에 익어가는 감자와 알밤이 지난 계절을 추억하게 한다. 온 식구가 함께 즐기는 시원한 여름밤, 어느 농부의 땀과 노력이 깃든 여름날 간식인 옥수수가 있다. 오래전 어머님과 함께하던 밤하늘 별빛은 오늘도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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