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다룬 '더 데이스',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들
[임병도 기자]
▲ 후쿠시마 제1원전의 폭발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 화면. |
ⓒ 넷플릭스 |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8부작 일본 드라마 '더 데이스'가 한국에서도 공개됐다. 드라마는 6월 1일 전 세계에 공개됐지만 한국에서는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7월 20일부터 볼 수 있었다.
'더 데이스'의 한국 공개가 늦어지자 일각에서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한국 정부가 심의를 내주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 바 있다(관련기사 : 한국에선 못 본다? 후쿠시마 다큐 방영 진실은).
'더 데이스'는 후쿠시마 제1원전 요시다 마사오 소장의 '요시다 조서'와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보고서', 저널리스트 카도타 류조가 90여 명을 직접 인터뷰한 '죽음의 문턱을 본 남자'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드라마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보여준다. 방사성 물질의 누출을 막으려는 발전소 직원들의 고군분투와 우왕좌왕하는 본사와 정부의 모습이다. 총 8화로 구성된 '더 데이스' 내용 중 절반 이상은 재난 영화와 별반 차이가 없다.
피폭 위험을 무릅쓰고 내부로 진입하는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과 핵연료를 냉각시키기 위해 출동하는 자위대원들, 대피했다가 다시 발전소로 돌아오는 늙은 협력사 직원, 끝까지 철수하지 않고 남는 소장과 직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재난 영화치고는 한정된 공간만 주로 보이는 탓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더 데이스'는 몇 가지 드라마 요소를 제외한다면 새겨야할 장면들이 꽤 있다.
▲ 원전 직후 발전소 직원들이 사고 운전 조작 매뉴얼을 보면서 대처 방법을 찾고 있다. |
ⓒ 넷플릭스 |
일본은 '매뉴얼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철저하게 매뉴얼에 따라 움직인다. 역시나 '토오전력' 직원들도 매뉴얼을 계속 보면서 대처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전체 전원 상실'에 대한 대응 매뉴얼은 어디에도 없었다.
"'스리마일섬'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에도 전원과 원자로 모니터 계기는 모두 살아 있었다"라는 직원의 말. 아무리 매뉴얼을 만들고 준비해봤자 재난은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매뉴얼에 없는 재난상황이 발생하자 발전소와 본사,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요시다 소장과 직원들이 핵연료 냉각을 위해 해수를 동원하지만 장기적으로 또 다른 피해를 불러일으킨 셈이 됐다.
▲ 일본정부는 대피할 필요가 없다며 자택이 현재 있는 곳에서 대기하라고 한다. |
ⓒ 넷플릭스 |
다시 장면이 바뀌고 드라마는 일본 정부의 기자회견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현재 상황에서는 방사성 물질에 따른 외부로의 영향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거주자, 체재자는 현시점에서 특별한 행동을 취할 필요는 없다. 자택이나 현재 있는 곳에서 대기해 달라"고 발표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기자는 "대피 사태 선언을 해놓고 대피는 하지 말라니 모순이다"라고 지적한다.
▲ 쓰나미가 덮친 후쿠시마 원전 모습. |
ⓒ 넷플릭스 |
총리가 "(가스를) 밖으로 빼도 안전하냐"고 묻자 본사 직원은 "가스에 포함되는 방사선 물질은 극히 소량"이라고 설명한다. 그러자 정부 관계자가 "소량이라는 말은 안전하다는 의미인 거죠?"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토오전력 본사 직원은 "무엇을 안전하다고 정의할지에 따라..."라며 말을 얼버무린다.
정부는 다시 한번 기자회견을 열고 "대피'를 지시한다. 기자의 질문이 이어진다. "2시간 전에는 특별한 건 없다고 자택에서 대기하라고 했는데, 뭔가 일이 잘못된 겁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일본 정부는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만전을 기하자는 취지"라며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일본 정부는 '안전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이야 그렇다 치고 우리 정부는 어떤가. 윤석열 대통령은 야권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른 우리 수산물 안전성 우려를 공세로 치부하고 '괴담'이라고 못 박았다.
과연 '안전'의 기준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그들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인상 깊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 원자력은 미래의 에너지라고 적혀 있는 구조물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무너져 있다. |
ⓒ 넷플릭스 |
특히 1~3화는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이렇게 대처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대책회의에 모인 전문가들과 위원회 관계자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정확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우물쭈물한다. 최근 수해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국내 지자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경제 성장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은 일본 국민은 미래의 에너지에서 희망의 빛을 봤다."
드라마는 요시다 소장의 내레이션과 함께 '원자력은 미래의 에너지'라고 적혀 있는 구조물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처참하게 파괴된 모습과, 죽어있는 동물의 사체도 보여준다.
"밝은 미래라고 불렀던 거대한 건축물은 앞으로 몇십 년에 걸쳐 직면해야 하는 부끄러운 유산이 됐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아름다운 후쿠시마의 하늘과 바다를 앞에 두고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오만함이 부른 과오를 악착같이 청산하고 있다."
요시다 소장은 "후쿠시마 원전을 제대로 해체하려면 삼사 십년이 걸린다"며 "방사성 물질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도 요원하다"고 말한다. 그는 "미래의 에너지가 부끄러운 유산이 됐다"고 한탄한다.
'더 데이스'는 재난을 극복하는 히어로가 아니라 자연 앞에서 무력한 인간을 보여준다. 여타의 재난드라마에 비해 임팩트가 약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오만함은 자연 재난보다 더 위험한 재앙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데 이보다 더 교훈적인 드라마는 없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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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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