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교사에게 '각자도생' 권하는 사회, 낯 뜨겁다
[공현 기자]
▲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곳곳에 담임교사 A씨를 추모하는 메시지와 국화가 놓여있다. |
ⓒ 연합뉴스 |
서울 S초 교사의 사망 이후로, 교사와 학교에 관해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이 사건을 '교권 실추'라고 규정하고, '학생인권만 강조한 탓'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주호 교육부장관과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학생인권조례와 진보교육감을 공격하는 발언을 했다. '지역자치법규인 조례를 두고 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여당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망설임은 없어 보인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학생인권조례를 후퇴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교권은 학생인권의 대립항?
'학생인권 신장 정책이 교권을 악화시키며 교사들을 힘들게 한다'는 주장의 역사는 오래됐다. 2010년대 초반 소수의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막 제정되던 무렵에도, 학교 체벌이 부분적으로 금지됐을 때도 교권을 걱정하는 의견이 많았다.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제도가 시행되기도 전에 이런 걱정이 많았던 것은 교권 실추 문제가 제기된 것이 훨씬 예전부터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소위 '학교·교실 붕괴' 문제가 불거지면서 동시에 '무너진 교권' 문제가 나왔다. 교사의 체벌과 언어폭력이 일상적이었던 그때에도 이런 소리가 나왔다는 것은 학생인권 보장 여부가 교권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권'이란 말은 아주 흔하게 쓰이고 있지만 그 의미는 정확히 정의돼 있지 않다. 교권의 타이틀 아래 교사의 인권이나 시민권이 이야기될 때도 있고, 노동조건이나 처우 전반을 뜻할 때도 있다. 교사의 전문성이나 자율성이 이야기될 때도 있다. 어쩌면 교권의 의미가 이렇게 불분명하기에 막연히 '교사에게 좋은 것' '교사를 위한 것'이란 어감으로 널리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교권'이라는 단어는 교사가 학생에게 뭔가를 강제·지시하거나 행위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하는 경우가 가장 잦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인권의 신장 때문에 교권이 실추된다는 주장만 봐도 그렇다.
또 몇 년 전 스쿨미투 운동이 교사의 성추행·성희롱을 고발했을 때도 그로 인해 교권이 위협받는다는 주장과 보도가 이어졌다. 즉 교권은 주로 학생을 향해 있는 권력 내지 권한이고, 학생인권과 스쿨미투 등의 대립항으로서 자리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의미의 교권은, S초 교사의 죽음과는 직접적 관련성도 적을 뿐더러, 교사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거나 과중한 업무와 학교 내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리 유효하지도 않다.
▲ 당정협의회 참석한 이주호 부총리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권 보호 및 회복방안 관련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 부총리, 이태규 교육위 국민의힘 간사. |
ⓒ 남소연 |
교권 침해 논란이 불거지는 또 다른 패턴은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거나 교사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건이 불거질 때다. 이런 사건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이슈가 됐고, 교권 실추의 증거이자 학생인권에 대한 비난을 유발하는 방아쇠가 되곤 했다. 2009년 남학생이 여교사에게 '사귀자'고 말하는 영상, 2015년 학생이 기간제 교사를 빗자루로 폭행하는 영상, 2022년 학생이 수업 중 교단에 눕는 영상 등이 그 예다. 최근에도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들이 연달아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폭력(체벌 등)과 학생이 교사에게 가하는 폭력은 성격이 매우 다르다. 체벌을 비롯해 교사의 폭력은 오랜 시간 정당하고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학교 체벌 등의 인권 침해는 공교육기관의 조직적·공식적인 행위였고, 국가가 묵인·조장해온 폭력이었다. 그렇기에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금지하기 위한 사회적 운동과 논의가 필요했다.
반면 학생의 폭력은, 그 대상이 교사이든 학생이든 공식적으로 정당하다고 여겨진 적이 없다.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항상 심각한 문제 상황, 반사회적 사건으로 생각됐다.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연구 그리고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이다.
따라서 교사의 폭력과 학생의 폭력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교사의 폭력에 대한 대책과 학생의 폭력에 대한 대책도 완전히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 '학생은 교사를 존중해야 한다. 교사에게 폭력을 써선 안 된다' 같은 법조문을 만든다고 해도 큰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하물며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있으니 교사도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도록 하자('체벌을 허용하자'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 등)는 주장은 대책이나 논리라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학생과 교사의 인권 문제, 폭력의 문제는 서로 누가 더 센지 힘겨루기를 해서 어느 쪽이 더 때릴지 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보호자(학부모)의 민원이나 항의, 요구 등도 교권 침해 논란의 주요 소재다. 이에 관해선 정당성이나 기준에 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껏 우리 사회는 교육을 서비스로 간주하면서 보호자(학부모)는 소비자의 위치에 뒀다. 민원에 응답하고 요구에 대응하는 게 교사의 업무가 되면서 감정노동 및 스트레스의 강도도 높아지고 보호자와의 직접적 충돌도 늘어났다. 지난 수십 년간 교육을 서비스로 만들고 교육 소비자를 강조하는 정책을 앞장서 추진해온 이주호 장관은 자기 비판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건 정부의 책무
게다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학생인권은 전혀 잘 보장되고 있거나 과한 상태가 아니다. 물론 20년 전, 30년 전의 인권 상황과 비교하면 많이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인권 침해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그 기반도 불안정하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학교가 학생을 전혀 규율하거나 제재할 수 없다는 식의 묘사는 거짓말이거나 과장이다.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보면,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존엄이 침해돼선 안 된다는 당연한 원칙을 밝히고 있다. 그 강제성도 그리 강하지 않다. 학교나 교사가 학생인권조례를 어겨도 시정 권고를 받을 뿐 처벌받지 않는다.
▲ 서울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기자회견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은 헌법 등에서 보장한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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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초·중·고 학생도 국민으로서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함은 민주주의 국가 교육의 기본 요건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당국은 학생인권의 기준을 구체화하고 보장하는 데 너무나 무관심했다.
학교의 교육활동은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침해하지 않으면서 운영돼야 한다. 만일 그러지 못한다면 학교 측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인권을 침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적으로 비유하면, 경찰의 수사가 난항을 겪는다 해서 고문과 구타를 허용해달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문 같은 인권 침해 없이도 경찰이 수사를 잘하도록 하려면 장비나 기술, 인력이 지원돼야 하듯,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존중하면서 교육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충분한 인력을 지원해야 한다. 학생의 인권을 칼질하고 제한할 게 아니라, 교사를 과로와 위험과 외압으로부터 안전하도록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육부와 교육청 등 정부의 책임과 의무다.
정부가 자신의 의무를 방기한 채, 교사 개개인에게 알아서 교육활동을 운영하고, 학생·보호자를 만족시키라고 요구한 결과가 작금의 상황이고, 학생도 교사도 고통받는 비극적 현실이다.
학급당 학생 수 감축도, 교육 재정과 교원 인력 확충도, 교육 제도 개혁도 모두 외면하던 정부가 "교권 강화, 학생인권 축소"를 들고 나오는 것은 결국 또다시 교사 개개인에게 힘을 줄 테니 각자도생하여 학생을 통제하고 지도하라는 방침을 답습하는 것이다. 가장 반성해야 할 교육당국과 정부가 자신들의 책임은 쏙 빼놓고 소수자(학생)의 인권을 제물 삼으려는 모습이 낯 뜨겁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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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공현씨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투명가방끈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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