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에 퍼지는 웃음소리, 여자축구 동아리는 오늘도 달린다

월간 옥이네 2023. 7. 2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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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증약초등학교 선수 7인의 도전과 꿈... "좋아하는 축구 계속하고 싶어요"

[월간 옥이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새나, 김소민, 권다현, 황주희, 송민서, 김예지, 이서영 선수ⓒ 월간 옥이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전 책상 밖으로 한쪽 다리를 빼고 달려 나갈 준비를 하던 기억. 종이 울리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부리나케 복도로 쏟아지던 학생들. 하루 중 학교가 가장 시끄러운 때의 풍경이다.

하지만 충북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에 있는 작은 학교, 증약초등학교의 점심시간 풍경은 조금 다르다. 급식실보다 운동장에 웃음소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학교 교문, 운동장, 체육관 등 학생들이 다녀간 곳마다 축구공이 있는 증약초등학교에서 '우리가 최강'이라 말하는 여자축구동아리 선수 7명을 만났다.

사실은 말이야

증약초등학교 여자축구동아리는 6학년 황주희(주장, 왼쪽 공격수), 유새나(미드필더), 김소민(골키퍼), 권다현(최종수비수), 5학년 이서영(수비수), 송민서(오른쪽 공격수), 김예지(공격수) 선수가 모여 만들어졌다.

"2년 전에 체육 선생님께서 축구 대회가 있는데 나가 보지 않겠냐며 체육 시간마다 물어보셨어요." (황주희)

갑작스러운 체육 선생님의 권유였지만, 선수들은 오히려 반가웠다고 한다.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남자애들이 축구하는 게 늘 재밌어 보였고, 실제로 같이 축구하면 재밌었거든요. 부모님도 운동할 시간이 생겼다고 오히려 좋아하셨어요." (이서영)

"맞아요. 원래도 친구들이랑 하는 축구가 재밌어서 관심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물어보셨을 때 너무 좋았어요" (김소민)

팀에 소속돼 선수로 뛰는 것은 물론 축구를 정식으로 배우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축구를 할 수 있음에 그저 즐거웠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했던가. 2022년 제21회 충청북도교육감기 겸 제17회 설암 김천호배 동아리축구대회 군대회 우승에 이어 도대회 준우승까지, 처음 참가한 팀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의 실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축구 잘하는 방법

 매일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연습 시간이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해 슈팅과 패스, 4대3 모의 시합으로 1분, 1초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월간 옥이네

당연히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대회에서 우승하기란 어렵다. 게다가 7명 모두 연습 시간을 맞추기도, 연습 장소를 찾는 데도 어려움이 따랐다.

"주말이나 방과 후에는 학원 시간 등 각자 일정이 달라 시간 맞추기 어려워요." (유새나)

이렇다 보니 점심시간은 물론 등교 시간을 쪼개 연습에 매진하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학교 버스 운행 시간이 달라지면서 아침 축구 연습은 잠정 중단됐지만 말이다.

"점심 먹고 풋살화로 갈아 신고 바로 연습해요. 원래 아침에도 했는데, 버스 시간이 달라져서 지금은 못 해요." (권다현)

"지난해에는 오전 8시 30분쯤 도착해서 수업 전까지 20분 정도 연습할 수 있었어요." (김예지)

"올해는 버스 시간이 바뀌어서 (오전) 8시 55분에 학교에 도착해요. 아침에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져서 아쉬워요." (송민서)

매일 한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연습 시간이지만 점심시간을 이용해 슈팅과 패스, 4대3 모의 시합으로 1분, 1초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이 짧은 시간은 그만큼 선수들의 집중력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마음껏 연습할 수 없어 아쉬울 때가 더 많다.

그런 아쉬움을 달래려 주장인 황주희 선수는 청·장년층 축구동호인클럽 옥천FC에서 축구를 배우고 있는데, 이때 배운 기술을 동료 선수들과 나누고 있다고. 슈팅을 할 때 몸 어디에 힘을 실어야 하는지, 발의 방향 등 팀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친구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고 제 말을 잘 따라줘서 고마워요. 도움이 된다고 하니까 저도 즐겁고요." (황주희)

"발등, 발 안쪽을 언제 써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차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려줘서 도움이 많이 돼요." (김예지)

주장의 조언으로 상대방의 공을 가져오는 순간이 많아졌고 득점 기회도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눈에 띄게 늘어난 실력이 주장 덕분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 선수들은 또 다른 비결을 조심스럽게 알려준다.

"미운 사람 생각하면 도움이 돼요(웃음)." (김예지)

"맞아. 미워하는 사람 생각하면 더 세게 공을 찰 수 있어요." (송민서)

"다들 미운 사람 생각하는지 공 차는 힘이 엄청나게 세졌어요(웃음)." (황주희)

우리 계속 축구할 수 있을까

재학생 25명(남 14명, 여 11명)인 증약초등학교는 올해 입학생이 없어 학교소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저학년으로 내려갈수록 학생 수가 적어 내년에도 축구부가 유지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게 선수들의 말이다. 현재 7명 선수 중 내년 중학교 입학을 앞둔 선수가 4명이라 이 걱정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학교에 입학생이 없어서 내년에 팀이 없어질 것 같아요. 사람이 부족하니까..." (송민서)

"내년에 입학생이 있다고 하는데 2학년이 없으니까... 전학생이 오지 않으면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서영)

이 걱정은 내년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는 6학년 선수들도 마찬가지. 여자 축구부가 없는 중학교에서 어떻게 축구를 할 수 있을지가 최근의 큰 고민 중 하나인데, 나름대로는 구체적인 대안도 생각해 두고 있다고.

"중학교에 유도부, 소프트 테니스부는 있는데 축구부는 없어요. 축구부를 만들면 계속 축구를 같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유새나)

"내년에 옥천여자중학교에 가면 교장선생님께 축구부를 만들어달라고 친구들이랑 건의하려고요." (황주희)

선수들이 고개를 떨구는 것에는 마음껏 축구를 할 수 없는 상황 탓도 있지만 친구와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 탓도 있다. 그래도 최근엔 꽤 자주 들려오는 여자 축구 이야기에 반갑고 설렌다.

"여자축구 이야기 듣거나 보면 반가워요. 옥천에 학생, 어른 모두 축구하는 여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유새나)

"옥천에 여자축구팀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많으면 많을수록 힘이 세지니까. 옥천 여자축구팀이 유명해져서 대전, 서울, 다른 지역에서 축구하는 모습도 보고 싶어요." (김예지)

"지금은 풋살장 이용하려면 버스 타고 한참 가야 하는데 축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풋살장도 많아지지 않을까요?" (권다현)

'어떻게 하면 축구를 계속할 수 있을까'가 최근의 가장 큰 관심사인 선수들. "그저 좋을 뿐"이라는 이서영 선수의 말처럼 축구를 좋아하는 데 '이유는 없'다. 사람이 없어서, 공간이 없어서, 축구를 하는 데 제약이 많지만 처음 공을 차던 쾌감을 생각하면 절대 축구를 그만둘 수 없다는 이서영 선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7명의 선수가 바라는 단 한 가지, 그저 좋은 축구를 계속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

 선수들은 30도가 훌쩍 넘는 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풋살화 끈을 질끈 묶고 달려 나간다.ⓒ 월간 옥이네

증약초등학교 여자축구동아리는 지난 5월 18일 제22회 충청북도교육감기 겸 제18회 설암 김천호배 동아리축구대회 옥천군대회 결승전에서 4:0 압도적인 점수로 우승했다. 이어 6월 23~24일 이틀간 충북 영동에서 열린 도대회 결승전에서는 3위에 올랐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때는 이 경기를 앞두고 있던 6월 15일, 함께 뛰는 마지막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를 향한 응원은 쉼 없이 교차된다.

"그동안 다들 잘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가 모이면 우승밖에 없어! 우리 꼭 우승까지 가자!" (김예지)

"우리 앞으로...가 없잖아. 여기 있는 7명이 다 같이 축구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열심히 했고, 모두 고마워" (이서영)

"저는 6학년 언니들이 중학교 가기 전에 우리 이름으로 도대회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무조건 우승하자!" (송민서)

"초등학교 마지막 대회인 만큼 우승으로 좋은 기억 만들고 싶어. 우리 열심히 하자." (김소민)

"2년 동안 연습한 것 이번 대회에 다 끌어모아 우승하자. 신입생, 전학생이 많이 올 수 있도록 우승으로 증약초등학교를 알리자." (황주희)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지만, 한 번 더 힘내서 우리가 목표한 것 이뤄내자." (유새나)

"연습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합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너희들 덕분이야. 이번 대회에서 모든 걸 보여주자." (권다현)

선수들은 30도가 훌쩍 넘는 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풋살화 끈을 질끈 묶고 달려 나간다.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공을 따라 7명이 함께 움직인다. 구슬땀이 금세 온몸을 적셔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웃음과 우렁찬 기합 소리가 가득한 운동장에서 증약초등학교 여자축구동아리 선수 7명은 오늘도 달린다. 초등학교 축구부원으로서의 대회는 이제 막을 내리지만 공을 계속 차올리는 뜀박질은 멈출 수 없기에.

월간옥이네 통권 73호(2023년 7월호)
글·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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