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기 힘든 1억원 벽”…여성 서사 전성시대? 여전히 필요한 변화 [콘텐츠 만드는 여성들②]
“계속 아줌마 역할만 들어온다…남 탓도 했다가 내 탓도 했다. 깊이 들어가니까 우울감이 많이 왔다. 혼자 연기를 짝사랑해서 병이 생긴 것 같다. 너무 연기를 하고 싶은데 기회가 잘 없다.”
배우 김선영이 한 유튜브 콘텐츠에 출연해 토로한 고민이다. ‘동백꽃 필 무렵’과 ‘사랑의 불시착’으로 큰 주목을 받으면서 ‘꽃길’만 열린 것처럼 보였지만, 굳어진 이미지’에 줄곧 ‘아줌마’ 캐릭터만 소화하다 우울감까지 느낀 것이다. 그는 “약간이라도 사건이 있는 그런 연기를 너무 해보고 싶다. 내가 나를 보는데, ‘참 안 됐다 너. 너 그렇게 연기가 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어서 참 심심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유리 또한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여자 배우도 나이가 들잖아요. 나이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고 그걸 보면서 (제가 나이가 들었다고) 느낀다. 역할이 한정적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나 싶고 불안하기도 하다”라고 여자 배우들의 한계에 대해 언급했다.
최근 여성 주인공 콘텐츠들이 연이어 제작되며 전보다 가능성을 넓혀가고는 있지만, 그간 꾸준히 이어지던 문제가 해결될 만큼 충분하진 못한 것이다. 특히 이들이 언급한 캐릭터의 ‘다양성’ 부족이 여자 배우들의 갈증을 유발하는 결정적 이유가 되고 있다. ‘여성 주인공’으로 인기를 끈 작품들인 ‘길복순’ ‘마당이 있는 집’, ‘행복배틀’, ‘닥터 차정숙’, ‘일타 스캔들’들만 봐도 대부분 엄마, 또는 가족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었다.
물론 각 작품들을 들여다보면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욕망을 드러내고, 희생적 면모를 벗어던지는데, 초점을 맞추는 등 유의미한 지점들도 있다. 그러나 장르물의 주인공이 돼 액션을 소화하고, 여러 직업군으로 변신하는 남자 캐릭터들의 다양성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여성 서사 콘텐츠 숫자’ 또는 ‘여성 캐릭터 다양성의 격차‘ 외에, 남녀 배우의 출연료 격차 문제도 과제로 꼽힌다.
국내외 OTT들이 콘텐츠를 쏟아내면서 제작비 규모가 커졌고, 자연스럽게 여러 배우들의 몸값도 치솟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부 톱배우들, 특히 남자 톱배우들에게 한정된 면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는 회당 10억 원을 받는다는 보도가 있을 만큼 높은 수준의 출연료가 책정됐다고 알려졌으며, 김수현은 쿠팡플레이 ‘어느 날’에 출연하면서 회당 5억원의 출연료를 받아 화제가 됐다. 이 외에 송중기, 이종석 등 소위 ‘A급’이라고 불리는 톱배우들은 회당 출연료 3억원 선에서 계약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자 톱배우들의 출연료도 적진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의 송혜교가 회당 2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앞서 tvN 드라마 ‘지리산’을 통해 시청자 만났던 전지현 또한 비슷한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업계 최고”라고 꼽히는 이 배우들의 출연료가 남자 ‘A급’ 배우들보다 조금 낮은 수준으로 책정이 된 것은 물론, 그 숫자 또한 소수에 불과했다.
출연료 상승폭도 차이가 있다. 경력 낮은 남자 후배 배우가 함께 출연하는 여자 선배 배우보다 더 높은 출연료를 받을 때도 적지 않다. 한 배우 기획사 관계자는 “남자 배우들은 팬덤이 조금만 생기기 시작해도 1억원 선을 빠르게 넘기기도 한다. 그에 비해 여자 배우들은 1억의 문턱을 넘는 것이 쉽지 않다. 경력대로 출연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남자 배우들의 몸값이 터무니없게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이 한국의 콘텐츠 업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아역 배우로도 활동하며 큰 사랑을 받았던 미국 배우 나탈리 포트먼은 “지난 2011년 개봉한 영화 ‘친구와 연인 사이’에 함께 출연한 애쉬튼 커쳐의 출연료가 나보다 3배 더 많았다”고 폭로한 바 있으며, 스칼렛 요한슨 또한 마블 영화에 출연하며 한동안 남자 배우들보다 적은 출연료를 받았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어벤져스’ 남자 배우들과 동일한 급여를 받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성공했다”라고 밝히면서 “과거 어머니께서 항상 말씀하셨다. 비슷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콘텐츠 제작의 목표가 이윤 창출인 만큼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방송을 할 때도 남자 톱배우들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하지만, 해외 판매 때는 더 결정적이다. 가뜩이나 플랫폼들이 다양해지면서 이목을 끌기 위해 애를 쓰는데, 유리한 쪽으로 돈이 더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처럼 여성 주인공 콘텐츠들이 흥행에 성공하고, 또 큰 화제성을 만들어내는 긍정적 사례들이 쌓이면서 그 격차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이 관계자는 “송혜교가 ‘더 글로리’ 이후에는 더 높은 출연료를 받게 되고, 그러면 A급 여배우들의 가능성이 또 열리는 것이다. 이렇듯 긍정적 사례들이 결정적인 역할들을 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완성도가 높으면 작품을 본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지 않나. 연기력 같은 부분에 더 초점을 두고 작품을 만들어나가면서 스타들의 영향력에 의존하는 것을 줄여나가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부모한테나 금쪽이지 진절머리 난다" 싸움 난 오은영 SNS
- 교사 두달간 폭행한 초등생…학부모 "선생 싫어서 그랬겠지"
- '총선 때 지역구 투표' 민주당 후보 40.2% vs 국민의힘 후보 37.0% [데일리안 여론조사]
- 국민 49.1% "조국 부부 반성문, 진정성 없다" [데일리안 여론조사]
- 10대女 꾀어내 성관계 즐긴 30대 경찰관…'부모가 신고'
- "이재명 '김문기 몰랐다' 발언 유죄 명백…죄질 나빠 벌금 100만원 이상 선고될 것" [법조계에 물
- 민주당 '탄핵 몽니'에 '정치적 해법' 준비하는 국민의힘
- [2025 수능] 출제위원장 "킬러문항 배제 유지하고 선택과목 유불리 최소화"
- 의심하고, 해체되고…콘텐츠 속 흔들리는 가족들 [D:방송 뷰]
- ‘대만 쇼크’ 한국야구, 또 첫판 징크스에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