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 가졌지만, 결국 영웅이 되지 못한 청소년들

양형석 2023. 7. 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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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마이클 B.조던-데인 드한의 <크로니클>

[양형석 기자]

소심하고 평범한 고등학생 피터 파커는 대학교 실험실 견학 도중 유전자 실험 중인 슈퍼거미에 물려 손목에서 거미줄이 나가고 뛰어난 근력과 내구성, 민첩성을 겸비한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다. 피터는 능력이 생기자마자 중고차 구입을 위한 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프로레슬링대회에 출전한다. 하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다"라는 벤 삼촌의 유언을 듣고 자신의 행동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며 '시민들의 친절한 이웃'으로 거듭난다.

'아인언맨'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인 천재 과학자 하워드 스타크는 슈퍼솔저 혈청을 개발한 후 혈청을 맞을 적임자를 구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몸은 약하지만 애국심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스티브 로저스라는 청년이 군에 입대했고 훈련과정에서도 뛰어난 희생정신을 선보이면서 슈퍼솔저 프로젝트의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그렇게 스티브 로저스는 어벤저스의 슈퍼히어로들을 이끄는 리더 '캡틴 아메리카'로 재탄생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는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는 주인공이 선천적으로, 또는 어떤 계기를 통해 정의의 편에 서는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아직 인격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10대 청소년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얻게 되면 큰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다. 2012년에 개봉한 조쉬 트랭크 감독의 영화 <크로니클>은 염력을 갖게 된 10대 청소년들의 방황과 일탈을 다룬 SF 스릴러 영화다.
 
 조쉬 트랭크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이었던 <크로니클>은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이름에 꼭 미들네임을 붙여야 하는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풀네임은 레오나르도 빌헬름 디카프리오다. 하지만 '빌헬름'이라는 디카프리오의 미들네임을 아는 관객들은 그리 많지 않다. 긴 이름을 가진 사람, 특히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짧게 줄이는 경우가 많다. 토머스 크루즈 메이포더 4세를 '톰 크루즈'로 줄이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이름, 성이 같은 이 배우는 미들네임을 붙여 '마이클 B. 조던'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수 밖에 없다.

10대 시절부터 영화와 연극무대를 오가며 활동하던 마이클 B.조던은 <더 와이어>,<어시스턴트> 같은 TV드라마에 출연하다가 2012년 조쉬 트랭크 감독의 <크로니클>에서 전교회장을 노리는 학교의 '인싸' 스티브 역을 맡았다. 1200만 달러의 많지 않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크로니클>은 세계적으로 1억26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조쉬 트랭크 감독과 주인공 데인 드한 등은 <크로니클>을 통해 크게 주목 받았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크로니클>에서 상대적으로 역할이 크지 않았던 마이클 B. 조던은 2013년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통해 본격적으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에 실제로 있었던 흑인청년 과잉진압사건을 영화화한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에서 주인공 오스카 그랜트를 연기한 마이클 B.조던은 뛰어난 연기로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2015년 <판타스틱4> 리부트에 출연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렇게 천당과 지옥을 오가던 마이클 B. 조던은 같은 해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차기작이자 록키 시리즈의 스핀오프 영화 <크리드>를 통해 복서로 변신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쿠글러 감독이 연출한 마블 히어로 영화 <블랙팬서>에서 빌런 에릭 킬몽거 역을 통해 고 채드윅 보스먼에게도 뒤지지 않는 존재감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마이클 B.조던은 <크리드>와 <블랙팬서>를 통해  '<판타스틱4>의 악몽'을 깨끗하게 씻어 버렸다.

마이클 B. 조던은 2018년에 개봉한 <크리드>의 속편에서도 주연을 맡아 2억 달러가 넘는 흥행을 이끌었고 쿠글러 감독이 제작한 <스페이스 잼: 새로운 시대>와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에는 카메오로 출연했다. 연기력과 흥행파워를 두루 겸비한 30대 중반의 인기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마이클 B.조던은 지난 3월 자신의 첫 연출작인 <크리드3>를 통해 세계적으로 2억68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견인했다.

폭주하는 초능력, 그렇지 못한 자제력
 
 <크로니클>의 세 주인공은 폭주하는 초능력에 비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자제력을 갖추지 못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사실 영화에서처럼 '미성숙한 청소년'이라는 핸디캡(?)을 주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노력 없이 생긴 능력이나 이익에 욕심이 생기는 법이다. 우연히 얻은 복권에 당첨되거나 길을 가다 돈을 주었을 때 "이 돈은 노동의 대가로 얻은 게 아니니까 내 사익을 위해 쓸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크로니클>은 "초능력을 가진 자가 모두 영웅은 아니다"라는 영화의 카피처럼 히어로가 되기를 거부한 10대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학교 내 존재감 없는 '아싸' 앤드류(데인 드한 분)는 사촌 맷(알렉스 러셀 분), 학생회장 후보 스티브(마이클 B.조던)와 함께 숲 속 지하동굴을 헤매다가 알 수 없는 에너지에 휘말려 염력을 얻는다. 영화 <엑스맨>에서 매그니토(아인 맥켈런, 마이클 패스벤더 분)가 가진 염력과 비슷해 보이지만 제어와 조작이 가능한 물질이 '금속'으로 한정돼 있는 매그니토와 달리 <크로니클>의 세 주인공은 모든 물질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겐 자신의 능력을 슬기롭게 통제할 수 있는 자제력이 없었다. 그나마 세 친구 중 가장 어른스러운 맷이 초능력 사용에 대한 규칙을 정하자고 제안하고 나머지 두 친구도 이에 동의하지만 이들의 구두약속이 잘 지켜질 리 만무했다. 결국 아버지와 크게 싸운 앤드류는 화를 참지 못해 초능력을 폭주하고 스티브가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앤드류의 초능력에 의해 벼락을 맞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크로니클>에서 주인공 앤드류는 초능력을 얻기 전부터 자신과 주변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는 취미가 있는데 이 같은 설정 때문에 <크로니클>은 자연스럽게 파운드 푸티지 형식으로 영화로 만들 수 있었다. '파운드 푸티지'란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중에서 출처 불명의 미스터리 영상을 내세워 공포감을 극대화한 기법으로 <블레어 위치>와 <파라노말 액티비티>, <클로버필드>, <곤지암> 등 공포 및 호러 영화에서 주로 사용한다.

<크로니클>을 연출한 조쉬 트랭크 감독은 1984년생의 젊은 감독으로 2000년대 후반부터 TV드라마를 연출하다가 2012년 <크로니클>을 통해 영화에 데뷔했다.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일약 할리우드의 유망주 감독으로 떠오른 트랭크 감독은 3년 후 1억2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판타스틱4>리부트를 연출했다. 하지만 <판타스틱4>는 엄청난 혹평과 함께 북미에서 제작비의 절반도 채 회수하지 못했다.

짙은 다크서클마저 매력적인 배우 
 
 <크로니클>로 주목 받은 데인 드한은 2년 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의 그린 고블린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크로니클>에서 가장 유명해진 배우는 <크리드> 시리즈와 <블랙팬서>의 킬몽거를 연기했던 마이클 B. 조던이지만 <크로니클>의 주인공은 앤드류 역의 데인 드한이었다. 창백한 얼굴에 짙은 다크서클로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병약미가 매력인 드한은 <크로니클>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며 위태로운 아웃사이더 앤드류를 잘 표현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무섭게 폭주하는 앤드류는 어딘가 모르게 상당히 불안해 보인다.

<크로니클>로 가능성을 보인 데인 드한은 2014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에서 '그린 고블린' 해리 오스본을 연기하며 피터 파커 역의 앤드류 가필드를 능가하는 인기를 얻었다. 다만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이후에는 뛰어난 연기와는 별개로 흥행성적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북미에선 이미 지난 21일에 개봉했고 국내에선 오는 8월15일에 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오펜하이머>의 성적이 드한에게 더욱 중요한 이유다.

앤드류의 사촌 맷은 <크로니클>에서 폭주하며 도시를 파괴하는 앤드류를 말리다 앤드류 뒤에 있던 조각상의 창을 움직여 앤드류의 몸을 관통시킨다. 맷에게도 앤드류는 사촌이기 전에 가장 가까운 친구지만 이성을 잃은 앤드류가 너무 많은 사람을 죽게 할 수 있었기에 맷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크로니클>의 최후 생존자 맷을 연기한 알렉스 러셀은 데인 드한이나 마이클 B.조던과 달리 <크로니클> 이후 영화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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