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골프장 짓겠다고…주민 벌벌 떨게한 산속 '1500㎡ 비닐' [영상]
지난 21일 오전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산중턱 약 1500㎡에 비닐 포장이 덮여 있었다. 올해 초 대규모로 벌채한 산 정상부에 구례군이 설치한 비닐이었다. 방수포가 덮여있지 않는 산 곳곳에는 장맛비에 토사가 흘러내려 황톳길과 암석이 드러나 있었다.
사포마을 박현무(57) 이장은 “산에 비닐을 덮었다지만 장마철 내내 산 곳곳이 무너져 내리고 토사가 쏟아졌다”며 “역대급 장마에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산사태가 날까 봐 밤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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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산사태 공포”…상수도선 흙탕물
구례군이 추진 중인 지리산골프장 예정지 인근 주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장맛비에 벌채현장 주변 토사가 흘러내리고 물길이 바뀌고 있어서다. 주민들은 골프장 예정지 아래쪽에 사포마을·산수유마을·다랑논 등이 있어 산사태와 환경훼손 등을 우려해왔다. 해당 지역은 2004년에도 골프장 예정 부지에 포함됐다가 개발이 무산된 곳이다.
29일 ‘사포마을 골프장 건설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벌채 현장 인근 땅이 갈라지거나 꺼지고 마을 상수도에선 흙탕물이 나왔다. 올해 대규모 벌채가 진행된 현장에서 300m가량 떨어진 사포마을에는 35가구 72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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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29개 면적 소나무 ‘수확 벌채’
주민들은 올해 골프장 건설 예정지에서 벌채가 시작되자 반발했다. 구례군이 지난 2월부터 산동면 일원 21만㎡의 소나무 1만600여 그루 벌채를 허가한 게 발단이다. 주민들은 “당초 구례군이 허가한 축구장(7140㎡) 30개 면적 외에도 5만여평(약 16만5000㎡)에서 불법으로 벌채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벌목지 원상 복구와 골프장 추진 중단 등을 촉구해왔다. 나무를 벤 곳이 마을 위쪽 산자락인 데다 지리산국립공원과 170m 거리라는 점 등을 들어서다. 이에 구례군은 “산림자원법상 산림보호구역이 아니어서 ‘수확 벌채’를 허가한 것일 뿐 골프장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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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장맛비에 땅 꺼지고 물길 바뀌어”
주민 불만은 장마철이 되면서 더욱 커졌다. 연일 쏟아지는 장맛비에 토사가 쏟아지고 산 곳곳에 크고 작은 물길들이 새로 생겨서다. 구례군이 임도와 경사로 등에 방수포를 깔았지만, 우려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사포마을 주민 전경숙(60·여)씨는 “며칠 전 산에 올라보니 100평도 넘던 야생화(앵초) 군락지마저 대부분 물에 쓸려간 상태였다”며 “물길이 이렇게 급격히 바뀌어버리면 언제 산사태가 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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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군 “경사 완만하고 지반 안정적”
이에 대해 구례군은 산사태 위험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구례군 관계자는 “군청 자체조사 결과 경사가 완만하고 지반이 안정적이어서 벌채를 허가한 것”이라며 “산에 방수포를 깐 것도 토사가 유출된다고 해서 조치를 했을 뿐 산사태처럼 큰 피해가 난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상수도에서 흙탕물이 나온 데 대해서는 “식수로 쓰는 수돗물이 아닌, 마을상수도에서 흙탕물이 섞여 나왔다”며 “마을상수도 또한 계곡물이 아닌 관정을 쓰고 있어 장마 외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산동지구 활성화”…골프장 조성 업무협약
구례군은 인근 산동온천지구 활성화를 목표로 골프장 조성을 추진해왔다. 지난 3월 23일에는 시행사·시공사와 산동면 관산리 일대 150만㎡에 27홀 규모 골프장을 짓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구례군 관계자는 “주민들이 주장하는 불법 벌채 사안은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며 “벌채 허가지역 외 무단 벌목은 물론이고 추가 조림 감독 등을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구례=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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