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비 내세요"…누구든 쓸 수 있는데, 체육관 독점한 그들 정체
서울 광진구 구의동 아차산 등산로. 관리사무소에서 200m가량 올라가면 왼쪽에 ‘OOO 체육회’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역시 ‘OOO체육회’라고 표기한 약 5m 높이 정문도 서 있다. 운동장엔 회원을 모집한다는 플래카드가 3장 붙어 있다. 운동기구가 놓인 공간엔 찬조금을 납부한 헬스클럽 회원명부와 회비(7만원) 입금 계좌를 게시했다.
여기서 아차산 정상 방향으로 300m가량 올라가면 우측에 또 다른 ‘OO체육회’ 간판이 등장한다. 최근 5년간 헬스 회비를 납부한 회원 이름이 빼곡히 붙어 있다. 올해는 회원 225명이 회비(5만원)를 납부했다. 대자보엔 “불편한 점은 구청에 민원 전화를 하지 말고, 회장에게 전화나 문자를 달라”고 쓰여 있다.
이와 같은 운동 공간은 사설 체육 단체 공간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치구가 세금으로 마련한 곳이다. 동호회 측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등산객은 대체로 이곳이 “회비를 안 내면 쓰지 말아야 할 것 같다”며 이용을 꺼리는 분위기다.
생활체육시설 갈등…자치구는 수수방관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공공체육시설은 전문체육시설과 직장체육시설, 그리고 생활체육시설로 구분한다. 선수 훈련에 사용하는 전문체육시설과 상시 근무 500명 이상 직장에 설치하는 직장체육시설과 달리, 생활체육시설은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헬스장·배드민턴장·파크골프장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25개 자치구에 1만6194개 체력단련시설과 2110개 간이운동시설, 그리고 1만5346개의 부대편익시설이 모두 생활체육시설이다(2021년 연말 기준).
문제는 일부 동호회가 이곳에 회원 모집 현수막을 붙이거나 회비·계좌를 강조하면서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공공체육시설을 설치한 공간에 특정 단체 입간판·벽보·현수막 등 홍보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시설 입구에 특정 단체가 홍보물을 설치하면 지역 주민이 사설 체육시설로 오인해 접근하지 못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관련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권익위는 지자체·자치구에 입간판 철거를 권유한다.
하지만 자치구는 손을 놓고 있다. 중앙일보는 권익위 권고와 관련, 광진구에 십여 차례 질의했지만 “그런 게 있는지 검토해보겠다”며 결국 회신을 주지 않았다.
자치구가 수수방관하면서 특정 동호회가 생활체육시설을 사실상 독점하는 문제도 불거진다. 실제로 지난 4월 중랑구 체육관에서 일부 동호회가 주말 오전 시간대에 8개 코트 중 7개를 독점하고 술을 마시면서 논란이 됐다. 당시 동호회도 구민이 7개 회원 전용 코트를 이용하려면 유료 회원 가입을 요구했다.
당시 갈등에 대해 중랑구 역시 “우리 구가 아니다”라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서울시 확인 이후 “담당자가 코로나19 확진으로 장기 부재중이며 대직자는 없다”고 말했다.
“생활체육시설 사유화, 현대판 봉이 김선달”
자치구는 대체로 관심이 없지만, 서울시는 생활체육시설 관리권이 구에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생활체육시설 관리 주체는 구이고, 동호회가 직접 관리 권한을 보유한 시설은 없다”며 “관리권을 위탁받은 동호회가 주인 행세를 한다면 그야말로 ‘봉이 김선달’”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이런 갈등이 잦은 건 구가 생활체육시설 운영이나 유지·관리를 시민에게 위탁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서다. 자치구 처지에선 동호회가 맡지 않으면 시설물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치구는 모든 시설을 관리하기엔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구로구 궁동 O배드민턴장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관리를 맡은 동호회가 배드민턴장을 자물쇠로 잠가두고 출입을 제한하자 주민이 항의했다. 이후 구로구는 ‘공원 돌보미 유지관리협약’을 정식으로 체결해 관리를 맡겼다. 그런데 유지관리협약 상대방 역시 또 다른 동호회다. 구로구는 “하반기엔 추가 채용해서 인력을 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호회도 할 말은 있다. 아차산 OO체육회 관계자는 “동호회 회장 부부가 매일 밤 9시에 이곳까지 산을 타고 올라와 문을 잠그고 고장 난 운동기구가 있으면 수리를 맡긴다”며 “그런 노고를 인정하기 때문에 구도 우리 동호회에 관리를 맡겼고, 회원이 회비를 낸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지자체·자치구마다 상황이 달라 일률적으로 정부가 강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자체·자치구가 적합한 규정을 조례로 정해서 주민 갈등을 해소하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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