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뿐이랴...분노가 일상인 ‘악성 민원인’에 몸서리치는 MZ 공무원들 [오늘도 출근, K직딩 이야기]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7. 2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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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사회를 비롯, 공직 사회 전체가 악성 민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생을 마감한 교사를 추모하기 위한 화환들.
# 한 지방 구치소에서 일하는 교도관 A씨는 매일 ‘전쟁’을 치른다. 바로 ‘민원’과의 전쟁이다. 수형자들은 틈만 나면 A씨를 고발하는 민원을 넣는다. A씨가 잘못해서 고발하는 게 아니다. 난동을 부려놓고 말리는 과정에서 A씨가 자신을 잡았다거나, 자신이 부탁한 물건을 주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유로 민원을 넣는다.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A씨는 자신의 잘못이 없다는 점을 소명해야만 한다. 현장에 가면 더 가관이다. 욕은 기본이다. 온갖 모욕적인 언사도 견뎌야 한다. 애초에 수형자들의 말에 반응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심한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하는 게 사실이다.

“지시에 잘 따르는 수형자도 있지만, 민원을 활용해 교도관을 ‘괴롭히려는’ 수형자가 상당하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무너지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하는 게 맞나 싶다.”

최근 서울 모처의 한 학교에서 교사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뒤, ‘악성 민원’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졌다. 극단적 선택을 한 초등 교사는 평소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교직원들을 중심으로 학부모와 악성 민원인들의 갑질을 질타하는 시위가 연일 일어나고 있다. 교사 외에 경찰, 소방, 교도관, 일반 공무원 등 평소 악성 민원인들로부터 갑질에 시달려온 20 ~30대 공직자들도 ‘악성 민원’ 근절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악성 민원인이란, 도가 넘은 ‘민원’을 제기해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무리한 작업을 요구한 뒤, 담당 공무원이 거절하면 폭력·괴롭힘 등을 일삼는다. 만약 공무원에게 불리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상급자를 찾아가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악성 민원인 숫자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폭언·폭행 등 민원인 위법 행위는 2019년 3만8000건, 2020년 4만6000건, 2021년 5만2000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악성 민원인이 증가하면서, 공직자들은 심리적인 고통을 호소한다. 이는 곧 공직을 그만두는 ‘퇴직자’ 수의 증가로 이어진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네트워크의 ‘초·중·고등학교 교사들의 교직 이탈 의도와 명예퇴직자 증감 추이’ 통계보고서를 보면, 2005년 초·중등학교 교사 명예퇴직자 수는 879명이었지만 2021년 6594명으로 7.5배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공직자로 범위를 넓히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2022년 자발적으로 퇴사한 근무 경력 5년 미만 공무원(국가직 지방직)은 1만3032명이다. 이는 2019년보다 72%가량 증가한 수치다.

정부 당국이 악성 민원 대처를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대책 대부분이 악성 민원인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한 훈련만 할 뿐, 피해 공무원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책이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젊은 공무원은 “사회에 봉사한다는 자부심으로 박봉에도 버텨왔지만, 악성 민원인은 이런 자존심마저 뭉개버린다”며 “도가 넘는 민원은 거부해도 공무원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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