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 보고도 또 석탄발전... 다시 시작된 '싸움의 전설'

이태옥 2023. 7. 28. 21: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탈핵 잇_다] '삼척평화' 옥분씨의 탈탈탈 분투기 ①

"나는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의 아이'였던 한 소녀가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합니다. 12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그 소녀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 '그들'은 안녕할까요? '그들'의 삶, 일상, 활동과 목소리를 따라 '우리'로 얽힌 사람들, 그 인연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연결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답을 찾아 원불교환경연대 탈핵기록단이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이웃'을 만나러 갑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들을 곱씹다 보면 어느 지역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라고 덮어두지는 못할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잠깐만 내주세요. <기자말>

[이태옥 기자]

 블루파워 삼척석탄화력발전소는 삼척 시내 어디서나 보인다. 주민들의 삶과 너무 가까운것 아닌가?
ⓒ 성원기
 
"삼척블루파워 석탄발전소 석탄 운송 시작한 오늘 우울하고 화가 치밉니다."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이하 삼척블루파워) 시범 운전을 위한 석탄 육로 운송이 시작된 7월 18일 '삼척평화' 이옥분씨는 자신의 SNS에 속울음을 삼키며 이렇게 썼다. '2050 탄소 중립'이 기업 광고에까지 쓰이는 마당에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과 석탄 육로 운송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러나 삼척시 적노동 맹방해변에서는 114만㎡ 부지에 삼척화력 1·2호기(각 1050㎿급, 총 2100㎿) 석탄발전소가 각각 2023년 10월, 2024년 4월 완공을 목표로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유엔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는 지난 3월 6차 평가보고서에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지키기 위해 인류가 쓸 수 있는 탄소량은 5천억 톤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경고하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50% 감축을 주문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살기 좋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의 창은 빠르게 닫히고 있다. 이번 10년 동안 내려진 결정과 취한 조치는 수천 년 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는 것이 이번 6차 평가보고서의 핵심이다.

삼척블루파워는 '빠르게 닫히는 창'을 재촉하고 있다. 곱고 부드러운 백사장이 10리에 걸쳐 있어 이름 붙은 '명사십리'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 또한 사라지고 있다. 2021년 환경부 사후 환경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9월 맹방해변의 면적은 2005년 이래 최저 수준이었다. 기후변화 등으로 해안 침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삼척블루파워 항만 건설이 더해지며 가속화됐다. 조사 결과 2018년 삼척 화력 1·2호기 건설과 함께 시작된 석탄 운반용 대규모 접안 시설 공사가 원인으로 꼽혔다.

삼척블루파워는 당초 연료로 쓰이는 유연탄을 맹방 항만에 하역한 뒤 바로 석탄 운송 터널을 통해 발전소로 이송할 계획이었으나, 지난 2020년 공사로 인한 침식 저감 시설 미흡으로 항만 공사 중지 명령을 받았다.
 
 7월 26일 석탄을 실은 25톤 트럭이 탈석탄 도보 순례단을 지나치고 있다.
ⓒ 이옥분
 
이후 8개월 동안 공사가 중단되면서 항만 공사 일정에 차질을 빚자 7월 18일, 석탄 88.6만 톤의 육로 운송을 시작했다. 석탄을 실은 25t 트럭이 하루 480회, 22시간 동안 동해와 삼척시 시민들의 주거지를 가로지르며 1년여 동안 달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트럭의 매연과 소음, 석탄 먼지 등이 근처 맹방초등학교, 근덕중학교, 삼척에너지마이스터고등학교로 넘어와 학생들의 안전까지 위협한다.

지난 6월 23일과 24일, 양일간 동해시에 거주하는 주민 500명을 대상으로 '석탄 육상운송 추진' 관련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석탄 육상 운송 추진에 반대한다는 답변이 84.7%, 석탄 육상 운송으로 인한 동해 시민의 건강 및 경제 영향에 피해가 있다는 답변이 90.7%에 달했다.

동해시, 삼척시 대다수 주민이 반대하는데도 삼척블루파워는 이윤을 위해 석탄 육로 운송을 한다. BTS(방탄소년단) 노래 '버터'의 뮤직비디오 배경이기도 했던 맹방해변의 풍광을 해치며 기세등등 올라간 석탄발전소 굴뚝에서 7월 21일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삼척블루파워의 시험 운전이 시작된 것이다.
 
 고운 모래의 백사장 맹방해변은 BTS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알려졌다. 삼척블루파워 석탄화력발전소 측의 해안항만공사로 맹방해변 침식이 가속화 되고 있다.
ⓒ 이옥분
 
 맹방해변 천막농성이 7월 16일 현재 1016일째다. 매일 저 자리를 지키는 마경만씨는 1990년대 핵발전소, 2005년 핵폐기장을 막아내는데 온힘을 다했다. 다시 맹방해변을 지키고 탈석탄을 향한 긴 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이다.
ⓒ 성원기
 
석탄발전소 굴뚝은 삼척 시내에서 한눈에 보인다. 강원도에는 삼척 화력 1·2호기뿐 아니라 강릉 안인 화력 1·2호기가 2022~2023년 신규 건설되어 상업 발전 중이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까지 완공되면 석탄화력발전소 7기가 늘어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이들 화력발전소 총 7기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4년부터 2050년까지 5018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1인당 탄소배출 4위로 국제 사회에서 '기후 악당'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악당 국가' 위상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2013년 7월 발전사업을 허가 받고 보류되었던 삼척석탄화력발전소를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하는 삼척블루파워측이 내세운 이유는 '지역경제 활성화'였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강조되고 석탄발전업에 대한 투자 회피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데 여전히 석탄발전소가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라는 쌍팔년도식 경제 인식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실제로 삼척블루파워는 2250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진행한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총 80억 원의 주문을 받는 데 그쳐 2170억 원 미달이 발생했다. 게다가 상업발전이 늦춰지면 이익이 줄어드니 어떻게든 공사 기간을 맞춰야 했고 그 무리수가 '석탄 육로 수송'이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40%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3번이나 핵시설을 막아낸 삼척 시민들은 다시 '탈석탄' 피켓을 들었다.
ⓒ 이옥분
 
비록 석탄 육로 수송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지만, 삼척석탄화력반대투쟁위원회(이하 석탄반투위) 주민들과 옥분씨는 분루를 삼키고 다시 다짐한다.

"끝까지 싸워 반드시 막아낼 겁니다."

삼척 시민들이 누구던가? 1980년대부터 핵발전소, 핵폐기장을 3번이나 막아낸 탈핵 운동의 전설들이 아닌가?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을 기록하고 '삼척평화'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삼척 시민들의 투쟁을 알려온 옥분씨의 이번 다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삼척평화' 옥분 씨

"열차 타고 동해항에서 내려서 삼척 오는 버스 타고 삼척우체국 앞에서 내리면 돼요. 참 왼편에 앉아서 정동진 바다를 보면서 오다 보면 다음이 동해역이에요."

전화 너머 들려오는 옥분씨 목소리에 작고 예쁜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를 품은 옥분씨 집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어느 해던가?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 훌쩍 서울을 떠나 도착한 옥분씨 집에서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바닷소리를 들었다. '바다멍'이었다.

옥분씨가 해주는 밥이며, 안주에 막걸리를 홀짝거리며 온몸과 마음을 녹여냈던 기억은 수년이 지나도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바닷가 옥분씨 집은 수없이 오갔을 탈핵하는 사람들의 쉼표이고 상징이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마을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후쿠시마 바다가 생각나서 미치겠더라고요."

옥분씨는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 참여하면서 삼척 상황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고민하느라 잠이 오지 않았다.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긴다는 거짓말을 삼척 젊은이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알리고 싶었다. 불면의 밤을 뒤척이다 새벽 3시쯤 이제 막 시작한 SNS 페이스북이 떠오른 옥분씨는 당장 '삼척평화'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핵발전소로 삼척의 평화가 깨지고 있으니 다시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담았죠."

2019년 삼척핵발전소 백지화로 세 번째 승리를 일군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이하 핵반투위) 사람들은 또다시 피켓과 깃발을 챙겨 석탄발전소 반대 운동을 이어간다.

핵시설을 막아 낸 힘을 다시 그러모아 석탄화력발전소를 막기 위한 조직을 어렵사리 꾸려야 하는 상황에서 옥분씨는 2021년 초 큰 수술까지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온통 신경은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반대' 운동에 가 있었다.

"하루는 담당 의사를 산책길에서 우연히 만나 이때다 싶어 페이스북 '삼척평화' 계정을 알려주며 탈핵과 탈석탄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죠.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다음날 회진 온 담당 의사는 "이옥분씨가 우리 사회를 위해 애쓰는 동안 나는 병원에서 일만 했으니 옥분씨가 잘 치료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라고 답했단다.누구든, 어디든 탈핵과 탈석탄에 대해 이해시키는 친화력과 대중성은 옥분씨 힘의 원천이다.

정동진 바다를 보고 동해역에 내려 21-1번 버스를 타고 삼척우체국 앞에서 내려 5년 만에 옥분씨를 만났다. 걱정했던 것보다 씩씩하고 여전히 살가웠다.

원전 백지화 기념탑

이명박 정권 시절 2010년 12월 당시 김대수 삼척시장은 주민투표를 통한 주민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삼척핵발전소 유치를 신청했다. 삼척은 1982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핵발전소 예정 구역으로 일방적으로 지정되었다. 1992년 핵발전소 예정지였던 근덕면에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하자 아기와 병석에 누운 노인들만 빼고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6년 동안 끈질긴 투쟁을 이어갔다.

결국 김대중 정부는 1998년 12월 30일 '삼척핵발전소 예정 구역 고시 해제'를 발표했고 삼척 반핵 운동사의 첫 번째 승리로 기록되었다. 그 당시 조성한 근덕면 덕산리 8.29 기념공원에는 우람한 '원전 백지화 기념탑'이 삼척 반핵운동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삼척시 근덕면 8.29기념공원 '원전 백지화기념탑' 앞에 선 삼척평화 옥분씨
ⓒ 장영식
 
2005년 핵반투위는 핵폐기장 후보지로 삼척이 오르내리자 시의회를 압박하여 유치동의안을 부결시킨다. 두 번째 승리였다. '핵발전소 말고 대안 에너지가 있다'라고 그래프와 근거를 들어 설명해도 도통 들으려고 하지 않고 빨갱이로 몰아가는 사람들에게 핵발전은 보릿고개를 넘어서게 한 경제 개발과 성장 신화의 심장과 같다.

40여 년간 '깨끗하고 청정한 값싼 에너지'라는 전방위적인 홍보가 국민을 가스 라이팅 한 탓에 '핵발전소 없으면 당장이라도 호롱불을 켜야 한다'라고 믿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는데 정치적으로 보수색이 짙은 강원도 삼척은 어떻게 반핵운동의 성지가 되었을까?

"핵발전소가 좋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잖아요. 상식이니까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요? 후쿠시마도 겪었고요."

옥분씨의 대답이다. 명쾌하고도 쉬운 답을 찾기까지 우린 너무나 오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매거진 '탈핵 잇_다'에도 연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