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원정도 수원노래방… 감독이 큰절로 답하는 팬心이 위기의 명가 지켰다
[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올 시즌 좀처럼 날개를 펴지 못하던 수원삼성이 강등권 탈출에 시동을 걸었다. 수원은 2주 휴식기 전 치른 2연전에서 울산현대와 강원FC를 잡고 시즌 첫 연승에 성공했다. 승점 1점 차로 뒤진 상황에서 만난 강원을 잡으며 드디어 12위를 벗어났다. 지난 4월 9일 이후 처음으로 최하위를 탈출한 것이다.
수원은 2년 연속 강등권에 빠지며 위기에 몰렸다. 올 시즌 리그에서 처음으로 감독 교체를 단행했다. 지난 시즌 도중 부임해 어렵게 잔류를 이끈 이병근 감독은 1년 만에 지휘봉을 놔야 했다. 대신 부임한 것은 김병수 감독이었다. 구단과 팬들은 강원 시절 1, 2년차에 보여준 센세이션을 수원에서 재현해주길 기대했다.
김병수 감독 부임 후 성과를 통한 획기적인 변화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부임 후 리그 10경기에서 1승 3무 6패였고, 순위는 제자리 걸음. 11위 강원과의 격차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팀 내부적으로 변화가 일고 있었다. 좀처럼 이기지 못하는 상황에도 김병수 감독은 오히려 선수들을 격려했고 문제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선수 개인의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팀적인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뒀다.
부임 직후 김병수 감독은 패배감에 빠진 팀 분위기를 바꾸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특히 코칭스태프와 선수 간, 선수와 선수 간의 신뢰를 살려야만 이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온 표현이 '사랑한다'였다. 이기심을 접어 두고, 팀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타적인 변화를 하자는 요지다. 실제로 수원은 사분오열하던 팀 분위기가 자취를 감췄고, 내외적으로 똘똘 뭉치는 화학 작용이 발생 중이다.
5월 중순부터 4연패에 빠지자 '김병수 감독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6월 들어 경기력이 서서히 개선됐다. 인천 원정에서의 무승부를 시작으로 5경기에서 4무 1패를 기록했다. 경기 막바지 실점하는 패턴이 고쳐지지 않아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쳤다. 김병수 감독은 승리라는 터닝포인트가 가장 절실하며, 그 기회가 오면 팀이 반등할 수 있다고 외쳤다.
절묘하게도 그 반등은 현재 K리그1에서 독주 중인 울산과의 홈 경기에서 나왔다. 수원은 올 시즌 최고의 승리를 썼다. 강원 감독 시절 울산만 만나면 늘 약했던 김병수 감독도 수원 사령탑으로 그 징크스를 깼다. 그리고 멸망전, 단두대매치로 묘사된 강원전에서 혈투 끝에 2-1 승리를 가져갔다. 9경기 무승(4무 5패)이 5경기 무패(2승 3무)로 돌변했고, 수원(18점)은 강원(16점)을 2점 차로 밀어내고 11위가 됐다.
절망적이었던 수원이 흐름을 바꾼 계기는 여름이적시장이었다. 김병수 감독이 적극적으로 요청한 선수들, 그리고 구단이 긴 시간 관찰한 선수들이 새로 합류해 맹활약 중이다. 김병수 감독의 애제자인 김주원와 고무열은 각각 공격과 수비의 리더 역할을 해 주고 있다. 김주원이 수비라인을 이끌어주며 김병수 감독의 변형 스리백은 자리를 잡았다. 고무열은 짧은 출전 시간 동안 축구도사 같은 여유로움으로 주변 공격수들에게 기회를 열어준다. 이번 여름 K리그 전체에서도 최고의 영입으로 평가받는 일본인 미드필더 카즈키 코즈카는 김병수 감독이 그토록 원했던 전술적 열쇠다. 중원에서의 확실한 볼 소유, 패스 길을 발견한 뒤의 창의적인 연계는 턴오버가 심했던 수원 중원의 상황을 획기적으로 전환시켰다.
그 동안 부진하거나 존재감이 덜했던 선수들도 살아나고 있다. 뮬리치와 전진우가 자신감을 되찾으며 공격에서 제 몫을 하기 시작했고, 고승범도 카즈키라는 파트너를 만나 특유의 활동량과 전진성이 올라왔다. 박대원은 수비 안정감을 찾아가는 중이다.
여기에 수원의 소년가장 계보를 잇는 고졸 신인 김주찬의 등장은 팀의 상승세에 확실한 추진제가 됐다. 김주찬이 울산, 강원을 상대로 넣은 2경기 연속 원더골은 보는 이의 감탄을 불렀다. 김병수 감독이 추구하는 공간과 연계를 이용하는 팀워크로 만든 고승범의 강원전 결승골은 수원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수원을 살린 진짜 중요한 요인은 팬심이다. 이길 때나 질 때나 눈물을 흘리며 '나사나수(나의 사랑 나의 수원)'를 부르는 수원 팬들은 2년 연속 강등권에 있지만 이 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악 바친 심정으로 전반기를 보냈다. 홈과 원정을 가리지 않고 외쳐대는 구호와 응원가로 경기장이 덮이는 '수원노래방' 모드가 펼쳐지는 중이다. 과거부터 수원 팬들의 압도적인 응원전은 유명했지만 강등 위기에서는 오히려 팀만 생각하며 똘똘 뭉친 분위기다. 청백적 컬러의 우산을 이용한 퍼포먼스는 장관이다.
수원은 현재 홈 평균 관중 9762명으로 K리그1 6위를 기록 중이다. 주말에 열렸던 최근 홈 5경기 평균 관중은 1만2453명으로 성적이 극도로 부진한데 오히려 관중이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을 만들었다. 강등권에서 경쟁 중인 강원FC와 수원FC는 각각 5241명과 4883명으로 평균 관중 순위 10위와 11위에 있다. 팬심을 숫자라는 정량만으로 다 평가할 순 없지만 수원은 강등권임에도 1만명에 육박하는 평균 관중으로 선수들의 지지대가 돼 주고 있다.
김병수 감독은 울산전이 끝난 뒤 수원 팬들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부임 직후부터 팬들이 보여 준 팀에 대한 애정과 열정에 대한 진심 어린 감동이었고, 꼭 하고 싶었던 인사였다. 비 속에서도 선수들을 위해 이타심을 발휘한 팬들이야말로 가장 사랑할 존재라는 의미를 담았다. 동시에 현재 이 팀은 지키는 가장 큰 힘은 변치 않는 팬심이라는 걸 알기에 한 감사였다.
2연승으로 개막 후 5개월 가까이 절망적이었던 수원의 분위기는 희망으로 바뀌었다. 휴식기 후 수원은 수원FC와 더비를 치른다. 11위인 수원과 10위인 수원FC의 승점 차는 단 2점. 만일 수원이 리그 3연승에 성공하면 그들은 또 한 계단 순위를 올리게 된다. 반대로 수원FC가 승리하면 간격은 더 벌어진다. 강등권의 향방을 결정할 8월 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의 승부는 예측 불가지만, 확실한 것은 이날도 홈 팬들의 열띤 응원과 함성은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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