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생을 훔치려고 했던 악마, 모든게 거짓이었다
[이준목 기자]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일본과 한국에서도 영화화된 <화차>를 비롯해, <태양은 가득히>와 <테이킹 라이브즈> 등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타인의 인생을 빼앗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악인들이 등장한다는 것.
그리고 이는 극적인 상상력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 2010년 부산에서 벌어진 '시신 없는 살인사건'은 올해 벌어진 '정유정 살인사건'의 주범 정유정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주목받은 충격적인 실화다.
2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에서는 '어느날 내가 사라졌다-그 여자의 살인 시나리오' 편을 통해 '2010년 부산 시신없는 살인사건'을 조명했다.
2010년 6월 17일 새벽. 부산에 있는 한 병원 응급실 앞으로 한 여성이 의식을 잃은 채로 실려온다. 차를 몰고 그녀를 데리고 온 여성은 '아는 언니-동생' 사이라고 관계를 밝혔다. 의료진이 다급히 확인했지만 이미 병원에 오기 전부터 호흡과 심장박동이 멈춰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안타깝게 여성은 사망 판정을 받았다.
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희생자의 신원을 '1970년생, 당시 40세의 손수정(가명)'이라고 밝혔다. 수정씨의 사망 원인은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수정씨의 가족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사망자의 유일한 지인인 동생이 나서서 모든 장례절차를 대신 밟았다.
그런데 약 두 달 후. 서울에 있는 한 보험회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전화를 받은 보험심사과의 박근우 팀장은 부산 지점에서 이른 바 '진상 손님'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바로 사망자 손수정씨의 친언니라는 인물이 부산 지점에 수시로 전화를 걸어서 동생이 가입한 생명보험금을 빨리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 언니는 보험금 지급 여부가 아직 심사 중인 상황임에도 회사에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거는가 하면 직원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으며 보험금 지급을 독촉했다고 한다.
사망한 손수정에게는 어머니를 수익자로 가입한 보험이 있었고, 사망보험금은 무려 2억5천만 원에 이르렀다. 사망 당시 병원에도 안 나타났던 가족이, 갑자기 사망보험금을 빨리 달라고 독촉하며 나타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박 팀장은 부산지점에서 보내준 서류를 살피다가 뭔가 수상함을 느끼고 직접 부산으로 내려가 확인에 나섰다.
놀랍게도 손수정이 가입한 생명보험은 하나만이 아니었다. 가입 시점은 대부분 사망 3개월 이내에 심지어 불과 사망 이틀 전에 가입한 보험도 있었다. 총 7개에 걸친 사망보험금은 무려 24억 원 규모에 이르렀다.
여기서 박 팀장은 놀라운 사실을 포착한다. 보통 전화로 보험에 가입할 시에는 각종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전화 목소리를 녹음한다. 박 팀장은 보험 가입 당시 녹음된 손수정의 목소리와, 독촉전화를 건 언니의 목소리가 똑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의문을 품었다.
2010년 9월 11일, 박 팀장은 보험회사 사무실에서 사망 보험금 수익자인 두 여성, 손수정의 어머니-언니와 마주한다. 박 팀장은 언니에게 손수정과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신분증을 요구했다. 하지만 언니는 이런저런 변명을 거듭하며 신원 확인을 끝내 거부했다.
박 팀장은 이번엔 종이와 펜을 내밀며 수정씨의 사망경위를 작성해달라고 요구했다. 그 순간 박 팀장은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언니라는 여성은 경위서를 작성한 후 사용한 펜을 옷에 문지르면서 일부러 지문을 지우는 듯한 행동으로 박 팀장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박 팀장은 "좀 놀랐다. 이건 (보험회사와 지문 확인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건 정말로 처음 본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 팀장이 언니에게 경위서를 요구한 것은 지문 외에 다른 의도가 더 있었다. 박 팀장은 손수정씨가 보험에 가입했을 때 작성한 계약서를 확보해 언니의 경위서와 대조했다. 여기서 박 팀장은 두 사람의 사인(Sign)이 똑같다는 것을 파악하고, 손수정과 언니를 자칭하는 인물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리 보험회사로부터 제보를 받고 대기하고 있던 경찰은 곧바로 언니라는 여성을 체포했다.
놀라운 것은 해당 여성의 반응이었다. 당시 실제 현장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언니라는 이 여성은 형사들이 등장해도 당황하거나 주눅들기는 커녕 신분증 확인과 지문 채취를 거부하고 변호사를 부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이 손수정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저항했으나, 결국 사기 피의자 혐의로 강제로 수갑을 차고 긴급체포를 당했다.
이미 형사들이 사전에 확보한 손수정의 인적 사항을 조회한 결과, 예상대로 손수정의 사진이 바로 언니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죽었다던 손수정은 진짜로 살아있었던 것, 그리고 이 사건에는 단순한 보험사기를 넘어선 또다른 '무서운 비밀'이 감춰져 있었다.
손수정의 생존은, 손수정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병원에서 사망한 여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경찰은 조사 결과, 병원에서 내려진 사망 진단서는 조작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피해자의 정확한 신원을 파악할 수 없었다. 손수정 역시 경찰의 질문에 모든 답변을 거부했다.
형사들은 손수정의 차를 수색하다가 수상한 증거물 하나를 발견한다. 운전면허시험 응시표였는데, 여기에는 손수정의 사진과 함께 '이유리'라는 전혀 다른 이름과 '1984년생(당시 26세)'이라는 주민등록번호가 적혀있었다. '1970년생 손수정'과 '1984년생 이유리'는 대체 무슨 관계일까. 손수정은 이유리라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어떻게 확보한 것일까.
경찰들은 수집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길고 끈질긴 싸움 끝에 결국 손수정의 자백을 일부 이끌어냈다. 손수정은 "본인이 손수정 맞고 죽은 사람은 이유리"라고 인정했다. 병원에서 사망한 것은 손수정이 아닌 이유리였던 것. 사실 응급실에 사망자를 데려왔던 '아는 동생'이라는 여성이 '진짜 손수정'이었고, 이유리의 죽음을 본인이 죽은 걸로 위장을 해서 보험금을 타내려고 한 자작극이었다.
사건 발생일인 6월 17일, 손수정과 이유리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손수정이 경찰에 증언한 내용에 따르면 두 사람은 자살사이트를 통하여 처음 알게 되었고 유리씨가 자신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 시신처리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다는 것. 손수정은 이유리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 그저 병원에 데려다준 것뿐이고,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는 문득 자신의 사망 보험금이 생각나서 우발적으로 사망한 이유리의 서류에 자신의 인적사항을 적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술은 또다른 거짓이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이고도 무서운 진실이 밝혀진다. 경찰은 희생자 이유리씨가 대구의 여성 노숙인 쉼터에서 거주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쉼터 관계자는 유리씨가 얼마전 취직이 되어 부산으로 내려갔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유리씨를 취직시키고 사망 하루 전 직접 찾아와 부산까지 데려갔다는 인물은 놀랍게도 손수정이었다.
손수정은 경찰의 추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리씨가 자살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경찰은 이러한 손수정의 정교하고 구체적인 진술에서 오히려 "자신의 신분이 탄로났을 때를 대비하여 사전에 '시뮬레이션'을 해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경찰은 손수정이 노숙인 쉼터 카페에 작성한 글을 발견했다. 손수정은 본인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노숙인들에게 선의로 일자리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소개받은 사람이 바로 유리씨였다.
여기서 경찰은 손수정이 유리씨를 채용하며 '가족들과의 연락 여부'를 신중하게 확인했다는 데 주목했다. 유리씨는 집에서 나와 몇 년 동안이나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일이 생겨도 찾을 가족이 없다'는 조건은 손수정이 유리씨를 지목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진짜 손수정의 실체는 어떠했을까. 손수정은 무직이었고 빚만 1억 원이 넘었다. 그럼에도 월세와 차 렌트비, 대출금 이자에 매달 300만 원이 넘는 돈을 지줄할 만큼 경제상황이 나빴다. 그럼에도 고액의 보험을 무려 7개나 계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러모로 '보험사기'를 계획했다는 것이 의심되는 정황이었다.
손수정한테는 딸이 하나 있었고, 백혈병으로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다. 손수정은 아픈 딸의 입, 퇴원 확인서를 수십 차례나 조작하여 총 1억 3천만 원이 넘는 보험금을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학원을 운영한다고 속이고, 가짜 부동산 계약서, 학력 위조 서류를 보내서 창업자금을 거짓으로 받은 전력도 있었다. 경찰은 손수정을 '사문서 위조, 공문서 위조,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런데 정작 여기서 중요하고 무거운 범죄인 '살인'은 놀랍게도 죄목에서 빠졌다. 사망한 이유리씨는 이튿날인 6월 18일, 시신이 화장됐다. 본래 화장을 하려면 사체검안서가 필요했지만, 손수정은 한 폐지 줍는 할머니한테 10만 원을 주며 장례를 위해 유리씨의 어머니를 사칭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게 유리씨의 진짜 가족들은 그녀가 죽었는지 알지도 못한 상황에서, 유리씨의 시신은 한줌의 재가 되어 바다에 뿌려지며 세상에서 사라졌다. 유리씨의 의문스러운 죽음에서, 유일한 증거인 시신이 인멸되기까지는 불과 34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체가 없어서 살인죄로 기소를 할 수 없는' 씁쓸한 상황이 벌어진 것.
하지만 경찰도, 검찰도 이대로 사건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경찰은 일단 보험사기는 되니까 사기로 손수정을 송치하고 보강 수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사건 담당 배석기 검사는 "과연 살인 증거를 밝혀내서 살인죄로 기소를 할 수 있을지 모두 걱정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정작 손수정은 구속되어서도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이나 불안함은 커녕, 뻔뻔할 정도로 태연하고 쾌활하게 잘 지냈다고 한다. 자신의 살인을 밝혀줄 증거가 없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검찰은 '디지털 포렌식' 기술을 통하여 손수정의 컴퓨터 하드웨어를 복원했다. 그리고 손수정이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그라목손-메소밀-파라코(맹독성 농약)', '살인방법', '부산여성 노숙인 쉼터', '사망신고절차', '사망보험금' 등 수상한 키워드들을 잇달아 검색한 것을 확인했다. 손수정이 살인 방법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대상, 사후 처리와 대처까지 치밀하게 준비한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배 검사는 그 자료를 보고 "피해자가 정말 나한테 자기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복원을 해서 나한테 이렇게 알려주는구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또한 검찰은 손수정의 주변인들을 조사하다가 그와 7년이나 사귀었다는 남자의 존재를 파악했다. 내내 느긋하던 손수정도 남자의 존재가 드러나자 태도가 돌변하며 "그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 건드리지 말라"며 흥분했다고 한다.
손수정의 연인이었던 남자의 진술에 따르면 고3 시절에 당시 학원 선생으로 일하던 13살 연상의 손수정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남성은 자신을 잘 챙겨주던 손수정과 연인 관계가 됐다. 손수정은 그에게 "20억 원의 유산을 상속받았다"라고 주장하며 좋은 차를 타고 다녔고 남자에게는 비싼 밥을 사주고 선물도 아낌없이 사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손수정은 이혼하고 딸이 있다는 사실을 숨겼고, 뒤늦게 이를 알게된 남자는 이별을 통보했으나 손수정이 이를 거부하며 다툼이 벌어졌다고 한다. 손수정은 갑자기 초록색 플라스틱병 하나를 꺼내더니 "이 약은 고통도 별로 없이 죽는다"고 말하며 남자에게 권했다. 그것은 손수정이 인터넷으로 검색했던 맹독성 농약인 '메소밀'이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 당시는 7월초로, 손수정이 이유리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6월 17일에서 보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해당 물건을 구입한 적이 없다는 손수정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남자는 놀라 메소밀을 빼앗아 던져버렸다. 하지만 정작 형사들은 대대적인 수색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 메소밀 병을 찾지는 못했다.
배 검사는 아직도 손수정을 수사하면서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을 회상했다. 손수정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와도 내내 범행을 부인했고, 이유리씨의 죽음을 추궁하는 배 검사에게 "저는 모르겠다. 이유리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뻔뻔스럽게 대답했다고 한다. 배 검사는 "거짓말에 대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가책을 전혀 못 느끼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손수정이 이유리씨를 살해한 정황은 명확했지만 '시신이 없는 살인'이다보니 살해 방법도, 살해 시간도 심지어 자백도,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 배 검사와 형사들은 만일의 모든 가능성을 열고 유리씨의 죽음을 수사했지만 돌연사나 자살 혹은 손수정이 아닌 제3자에 의한 살인 등은 모두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리씨는 부산으로 떠나기 전에는 노숙인 쉼터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글을 전하기도 했다. "은혜 꼭 잊어버리지 않고 나중에 나보다 못한 분들 도와주면서 살아갈게요. 거기서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배울게요. 여기 쉼터 식구들, 선생님들, 이모들, 조카들.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라는 유리씨의 마지막 메시지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으로 충만해보여서 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배 검사는 손수정을 살인 혐의로 기소하며 '사회적 약자인 여성노숙자를 골라 살해한 후 자신이 사망한 것인 양 가장하여 보험금을 편취하려는 저급하고 비열한 동기 하에 고귀하고 존엄한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범행'이라고 규정했다. 1심에서는 살인죄가 인정되었지만, 손수정은 바로 항소했고 2심에서는 판결이 뒤집혀 살인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무죄가 선고되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자신의 병적 소인이나 체질 또는 사건 당일의 음주 등의 영향으로 사망하였거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자살하였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간접사실들의 종합만으로는 피고인이 고의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배 검사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고백했다. "청천벽력 같았다. 피해자는 억울하게 죽었는데 이게 참, 증거법에 의해서 진범이 무죄가 되고, 피해자가 그렇게 사망하면 결국은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을 밝힐 수 없으니 그 부분이 너무 원통하고 화가 났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제 운명의 대법원 최종심만 남은 상황. 배 검사는 정말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작심해서 완성한 '상고이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에 따르면 "앞으로 '살인자여,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해한 후 사체를 화장하는 등 은닉하라. 그리고 잡히면 부인하라. 그러면 완전 범죄로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격언이 나오고, 향후 모방 범죄를 부추기는 결과가 우려된다"면서 이례적일 정도로 수위 높은 표현을 사용하여 비판했다.
이어 배 검사는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법 정신이 누구나 공감하게 하는 명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범인은 없고, 피해자만 있는 판결이 속출하는 게 정의인지 반문하고 싶다. 원심의 판결은 외로운 피해자를 두 번 죽이고 외롭게 만들었다"고 간곡하게 호소했다. 마치 피해자의 감정에 이입한 듯 가슴속의 울분이 전해지는 글이었다.
대법원의 판결은? '파기 환송'.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어 고등법원에서 4번째 재판, 대법원에서 또다시 5번째 재판까지 열리는 대장정 끝에, 최종 결과는 '살인죄 유죄, 무기징역'이었다. 결국 손수정은 법의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보험사기 범행에 가담한 손수정의 친모 역시 사기죄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손수정이 유리씨한테 빼앗은 것은 어쩌면 생명만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과 신분, 그리고 미래를 향한 희망이었다. 증거로 발견된 운전면허 응시표에서 손수정은 유리씨의 신분을 훔쳐 거짓 신원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꾼 것으로 보인다. 20억이 넘는 사망보험금을 받게되면, 13살 연하의 연인과 외국에 나가서, 20대 이유리의 신분으로 찬란한 삶을 다시 살 수 있으리라는 망상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손수정은 운전을 하고 싶어했던 유리씨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천국에서라도 걔 명의로 운전면허증을 따주기 위해서 제가 운전면허증에 응시를 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배 검사는 끝까지 반성할 줄 모르는 손수정의 뻔뻔한 변명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사람을 죽이고 그 신분으로 살아가는 한 여자의 거짓 삶을 다룬 소설 <화차>의 제목은 본래 '죄인을 지옥으로 실어 나르는 불타는 수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한 번 올라타면 내릴 수가 없다는 지옥의 불수레에 올라탄 것은, 손수정 본인이 자초한 결말은 아니었을까.
거짓말은 눈덩이와 같다. 거짓말은 굴릴수록 점점 커져만 가고, 그 눈덩이에 결국은 자신이 깔리게 된다. 한 사람의 소중한 생명과 꿈을 빼앗고 본인은 자유로울 수 있을 거란 착각은, 결국 스스로에게 인과응보와 사필귀정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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