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착륙한 한국인... '더 문' 해외 반응이 더 궁금한 까닭
[하성태 기자]
▲ 영화 <더 문> 포스터 |
ⓒ CJ ENM |
거두절미 하고, 관객들이 궁금해할 본론 두 가지로 바로 들어가 보자.
208억짜리 SF 대작 <더 문>이 창조한 달세계 여행의 비주얼은 출중한가. <더 문>의 VFX 기술력은 레퍼런스로 활용됐을 할리우드나 여타 중국 등의 SF 장르 콘텐츠들과 견주어 봐줄 만한가.
남은 하나. <신과 함께> 연작에서 절정에 달했던 <더 문> 김용화 감독의 신파적 감성은 즐길 만한 수준인가. 행여 결말로 치달을 때마다 관객들의 눈물 콧물을 이끌어내기 위해 과도한 음악과 컷의 배치, 애초 부성과 모성을 강조하는 설정을 탑재시키는 않았는가. <신과 함께>로 '쌍천만'을 달성한 바 있는 김용화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진 요즘, 관객의 입장에서 극장을 찾아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정확하다. 갈 길 바쁜 한국영화가 경쟁해야 할 대상이 늘어가는 시대다. 동 시기 한국영화 개봉작들은 물론 할리우드 대작들과 싸워야 한다. 무엇보다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 모으는 일이 우선이다. <더 문>은 OTT 시리즈에, 유튜브 동영상에, 틱톡 숏 폼에 길들여진 관객들을 납득시키고 설득시켜야 한다. 한국영화 산업 최전선을 가로질러온 김용화 감독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완성했다는 얘기다.
다음 달 2일 개봉을 앞둔 <더 문>은 류승완 감독의 <밀수>,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에 이은 '한국영화 빅4' 세 번째 주자다. 손익분기점은 600만에서 650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쯤에서 궁금증에 먼저 답을 내놔야 할 것 같다. SF 장르의 비주얼 완성도와 신파 감성, 예상보다 월등하고 또 예상만큼 세지 않다. 반은 확실히 맞고 반은 관객들과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 같다.
▲ 영화 <더 문> 스틸 이미지 |
ⓒ CJ ENM |
시작은 <미녀는 괴로워>(2006)였다. <오! 브라더스>(2003)로 데뷔한 김용화 감독은 매번 새로운 볼거리에 천착하는 경향이 짙었다. <미녀는 괴로워>는 김아중의 특수 분장을 앞세웠지만 관객들을 매료시키건 매혹적이고 매끄러운 콘서트 장면이었다. 김아중의 주제곡과 함께 흥행에 성공한 <미녀를 괴로워>를 '호감형' 영화로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이후 규모가 점점 커졌다. <국가대표>(2009)는 그 이전 한국영화에서 단 한 번도 접해 볼 수 없었던 스키 점프 종목의 광활하고 탁 트인 시야를 경험케 해 줬다. <미스터 고>(2013)의 실패는 2017년과 2018년 연이어 천만을 동원한 <신과 함께> 시리즈의 반면교사가 돼줬다. <미스터 고>의 야구하는 고릴라 링링은 <신과 함께>의 지옥 체험과 공룡들의 전초전이었다. 이를 위해 김용화 감독은 덱스터 스튜디오를 직접 설립했을 정도다.
"촬영 감독이라면 한 번쯤 꿈꿔왔던 장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는 <더 문> 김영호 촬영감독의 말마따나 SF 장르는 아마도 비주얼리스트로서 김용화 감독이 목표로 삼기 충분한 종착지였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더 궁금증이 증폭돼왔다. <더 문>이 앞서 <승리호>가 절반의 성공 거둔 한국 SF 장르의 미래를 밝힐 수 있을지 말이다.
달세계에 착륙한 한국인 우주인 <더 문>의 제작 소식이 들려온 이후 우려 반 기대 반의 반응이 팽배했던 것도 사실이다. 안심 수준이 아니다. 기존 한국영화의 비주얼을 뛰어넘는 것은 물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 SF 시리즈가 부러워한다고 해도 크게 과장이 아닐 정도다. <더 문>의 제작비는 동종 장르 할리우드 영화의 1/5 수준이다. 한국 콘텐츠 특유의 가성비가 극대화됐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그러고 보면 "누리호 발사에 성공한 한국의 기술력 아래 현실적으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김용화 감독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2029년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 달 탐사선 우리호에 홀로 남은 대원을 귀환시키기 위해 지구에 남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는' <더 문>의 이야기 역시 먼 미래 얘기라 치부하지 않을 수 있는 시점인 아닌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신과 함께>로 테스트를 마친 김용화 감독은 그보다 진일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황선우 대원(도경수)의 달 탐사 여정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VFX와 촬영, 사운드, 편집 등 관련 분야의 기술력을 쏟아부었고, 딱히 가성비를 떠올리지 않아도 좋을 만큼 <더 문>의 비주얼은 예상치를 뛰어넘는다.
철저하게 과학적 고증을 거쳤다는 설정들은 위화감이 없다. 일정정도 우연성에 기반하지만 그렇지 않은 SF 영화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일반 관객들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설정도 없다. 이를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컷들도 낭비가 없다. 수십 년간 수많은 SF 장르의 레퍼런스들을 체험해 왔다고 하더라도 <더 문>의 비주얼과 완성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피사체 하나부터 한 땀 한 땀 더 정성스럽게 쌓아 올리면 그만큼 전반적인 퀄리티도 함께 상승한다. 옷이 됐든 미술 소품 하나가 됐든 실제 제작해서 VFX와 컬래버레이션을 하자는 차원이었다"는 김용화 감독의 설명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특히나 도경수가 끝끝내 목표점에 다다랐을 때의 감흥은 익숙하고 친숙한 그림이라 감정의 파고를 높여주는 식이다. 어디서 봤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도 상관없다. 이러한 안정적인 비주얼은 분명 서사와 정서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제 관심은 바로 그 서사와 정서에 쏠린다.
▲ 영화 <더 문> 스틸 이미지 |
ⓒ CJ ENM |
언론 시사 직후 <그래비티>와 <마션>을 섞어 놓았다는 촌평이 적지 않았다. <그래비티>는 탐사선 내 우주인의 생존기에 집중했다. 그에 비해 <마션>은 그 생존기에다 유머와 여유를 섞었고, 나사 센터와의 소통도 서사의 서브 플롯으로 부족함 없이 활용했다. <에일리언> 류의 SF 공포 장르를 제외하면 사실 우주 탐사 이야기는 <그래비티>와 <마션>의 서사를 오고가기 마련이다.
그 자장 아래서 <더 문>은 조금은 다른 길을 간다. 나로 우주센터 전임 센터장 재국(설경구)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우리호는 5년 전 나래호의 실패를 딛고 절치부심한 프로젝트다. 재국은 전임 센터장이고, 황선우는 나래호 프로젝트 책임자의 아들이다. 나래호의 실패에 좌절한 재국은 소백산 천문대에 틀어박힌 상태고, UDT(해군 특수전전단) 황선우는 아버지의 실패를 극복하고자 우주인이 됐다.
여기까지만 봐도 <더 문>의 숨겨진 주제가 '아버지 되기'와 '아버지 극복하기'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설정부터 전임 센터장이 유사 아버지의 자리를, 명예를 회복하는 과정이 전제돼 있다. 애초 재국과 센터의 이야기나 이들의 정서가 <마션>과 같은 할리우드 영화 속 다소 기계적인 전개와 다른 길을 가도록 설계돼 있는 것이다.
재국의 전 부인인 NASA 유인 달 궤도선 메인 디렉터 윤문영(김희애)의 조력 역시 그런 재국의 회복을 돕는 과정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재국은 황선우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황선우는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을 털어놓으며 스스로 해원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런 설정 자체가 장르적인 실험 없이도 가장 친근하고 쉽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한국영화만의 방식일 수 있을 것이다.
딱히 감정을 과하게 자극하지 않는 후반부를 두고 김용화 감독은 "신파가 아닌 희로애락"이라 표현했다. <더 문>의 서사나 정서는 이런 설명이 마케팅을 위한 수사라 여겨지지 않게 만드는 완급 조절로 채워져 있다. <더 문>이 놀라웠던 지점은 바로 그런 정서의 덜어냄이라 할 수 있다.
그게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온전히 관객들의 선택에 달려 있을 것이다. 분명한 점은 거대 예산에 맞춰 관객들을 자극하는 장면과 설정을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과거와 달리 텐트폴 영화들이 점점 진화해 나간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난해 <한산: 용의 출현>과 전작 <명량>의 차이를 떠올려 보시기를.
155개국에 선판매 됐다는 <더 문>은 북미를 비롯해 태국, 싱가포르 등에서 동 시기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OTT 시대를 거치며 K드라마에 익숙해진 해외 관객들이 <더 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말이다.
국내 관객 중엔 여전히 '신파'라 지적할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반면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VFX와 비주얼은 차치하더라도 기존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두 주인공의 정서가 강조되는 설정이나 서사를 해외 관객들이 K 콘텐츠 만의 특징이자 장점이라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즐긴다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재차 강조하지만 이미 비주얼에 대한 우려와 불신을 종식시킨 것만으로도 상찬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영화를 둘러싼 상황 자체가 변했다. 다변화된 플랫폼을 언급한 김용화 감독의 말마따나 <더 문>은, <더 문> 이후는 우리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넘어 그 다양한 플랫폼으로 한국영화를 즐길 더 너른 관객들을 기준점 삼아야 할 것이다. <더 문>이 불러일으킨 행복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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