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한제국 의열 독립운동사'를 쓴 이유

정만진 2023. 7. 2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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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왔습니다] 명성황후 살해범 처단부터 황현 자결까지

[정만진 기자]

제5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는 '1910년대를 대표하는 독립운동단체는 광복회였다'라고 소개했다. 광복회는 대구 달성토성에서 결성되었다. 그러나 달성토성에는 광복회를 소개하는 안내판 하나 없다.

1920년대를 대표하는 의열 독립운동단체는 의열단이었다. 의열단은 대구은행 직원이던 이종암이 만주로 망명하며 가져간 자금을 활용해 창립되었다. 지사가 군자금을 조달했던 건물은 독립운동사에 남을 만한 유적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여름 아파트를 짓는다고 부수어버렸다.

우리의 정신사는 이런 수준인가?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종암 지사가 운명 직전 잠시 머물렀던 집이 대구 남산동에 허물어지기 직전 상태로 남아 있는데, 생가가 아닌데도 '생가터'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틀렸다고 지적해도 계속 그대로 있다.

독립운동가 현장에 도움이 되려고 쓴 책
 
 대한제국 의열 독립운동사 표지
ⓒ 정만진
 
우리 국민들은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 유명 독립운동가만 알 뿐 그 외 지사들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독립운동 관련 현장들도 무성의하게 관리된다. 앞에 거론한 광복회 창립지와 의열단 유적 등이 참담할 지경으로 홀대받는 현상도 그런 사회 분위기 탓이다.
경술국치 이전의 독립운동사는 더욱 관심 밖에 놓여 있다. 나라가 아직 완전히 망하지는 않은 까닭에 어쩐지 독립운동이 아니라 의병항쟁으로 보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모'가 일본인과 그 하수인 반민족행위자들에게 살해당하는 형편의 국가를 자주독립국으로 자화자찬할 수는 없다.  
 
 울사오적? 을사칠적!
ⓒ 정만진
   
일제에 강점당한 기간을 늘일 수는 없지만, 사실상의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열들의 피끓는 마음을 잊거나 가벼이 여기는 일은 결코 있어서 안 된다. 그래서 명성황후 시해사건, 즉 을미사변에 적극 가담한 국내인을 처단한 의열투쟁을 이 책의 첫머리로 삼았다.

1903년 11월 24일, 고영근 등 지사들이 일본까지 찾아가 을미사변 중요 범인 중 하나인 우범선을 처단했다. 우범선은 '씨 없는 수박'의 유명한 우장춘의 아버지이다. 굳이 그 사실을 밝히는 것은 반민족행위자를 역사에 더욱 분명하게 아로새기기 위한 조치일 뿐 연좌제의 불합리성을 인식하지 못해서는 아니다.

망국 위험 일깨우기 위해 자결로 항의, 이토 공격도 

1905년 5월 12일, 외교관 이한응이 영국에서 자결했다. 같은 해 11월 22일, 을사늑약 강제 체결 닷새 뒤인 이날 원태우 지사가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돌로 가격했다. 하얼빈 거사의 전초에 해당되는 상징적 대사건이었지만, 오늘날 원태우 지사의 성함을 아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되려나?
 
 의거지 표석에 새겨져 있는 원태우 의사의 투석 장면 부조 : 원태우 지사 의거지義擧址(안양로 599, 만안구 석수동 249-6) 안양자동차학원 건물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 원태우 지사 표석’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금세 원태우 지사의 얼굴과 투석 장면 부조 및 거사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는 의거지 표석標石과 만나게 된다. ‘의거지 표석’은 의거를 일으켰던 장소를 표시한 돌이라는 뜻이다.
ⓒ 정만진
 
1905년 11월 28일 홍만식 이래 민영환, 조병세, 김병학, 이상철, 송병선 등 선열들이 자정 순국했다. 이어 해가 바뀐 1906년 2월 16일, 기산도 등 자강회가 을사오적 중 하나인 군부대신 이근택을 급습, 칼로 여러 차례 찔렀다. 하지만 이근택은 죽지 않았고, 기산도 등은 일제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악형을 당했다.

1906년 2∼3월, 매국노들을 모두 제거해야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나철 등 지사들이 을사오적 주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1907년 고종 폐위와 군대해산을 맞아 이규응, 박승환, 김순흠 지사가 자결했다. 

1908년 3월 23일 전명운, 장인환 두 지사가 통감부 외교 고문 스티븐스를 저격하여 죽였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안중근 의사 이토 처단, 이재명 의사 이완용 공격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 의사가 명동성당에서 인력거를 타고 가는 이완용에게 칼을 휘둘러 허리와 어깨 등을 찔렀다. 이완용은 그 후유증으로 끝내 죽었다. 이 지사는 체포되어 순국했다.

그리고 1910년 9월 10일, 기어이 나라가 망하자 황현이 절명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끝었다. 절명시 일부를 읽어본다.

妖氣晻翳帝星移
요사스러운 기운 서려 나라가 망하고 나니
久闕沈沈晝漏遲
대궐은 침침해지고 낮시간도 지루하기만 하구나
詔勅從今無復有
이제는 임금의 명령도 다시는 없을 테니
琳琅一紙淚千絲
예전에 받은 옥빛 조서에 눈물이 쌓이는구나
鳥獸哀鳴海嶽嚬
금수도 슬피 울고 산천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
무궁화 이 강토는 이미 망해버렸도다
秋燈掩卷懷千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일을 돌아보니
難作人間識字人
세상에서 지식인 구실 참으로 힘들구나

"지식인 구실이 참으로 힘들구나"라는 황현의 자탄이 새삼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시대가 혼란하면 지식인이 문제해결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 것은 인간사회의 생리이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졸저를 집필해 세상에 내놓는 행위도 주제에 따라서는 지식인의 책무를 일부나마 실천하는 일로 간주되기도 한다. 물론 책의 수준이 낮으니 저자는 언젠가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일을 돌아보며" 본인의 행적에 남몰래 얼굴 붉힐 날과 마주치게 되리라. 책 안에 최대한 많은 선열들의 성함과 활동을 수록했다는 사실로 자위하고 격려하는 도리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스스로 책 소개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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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정만진 저, <대한제국 의열 독립운동사>(국토, 2023년 7월 27일), 24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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