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할까 말까, 저널리즘의 딜레마

김성호 2023. 7. 2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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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516] <닥터 후: 화성의 물>

[김성호 기자]

갈비뼈가 드러나고 몸은 머리를 지탱하기도 힘들 만큼 앙상하게 마른 아이가 있다. 굶주림에 지친 소녀는 땅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엎드려 있다. 그 모습을 독수리 한 마리가 얼마쯤 떨어져 지켜본다. 기아가 들끓던 수단 아요드 지역 식량배급소 인근에서 찍힌 사진 한 장은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잡아끈다.

아프리카의 비극에 대한 수많은 고발보다도 선명히 보이는 충격적 사진 한 장이 훨씬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이 사진 한 장이 일깨운 것이다.

그러나 이 사진은 또 다른 비극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이 사진으로 1994년 퓰리처상을 받은 케빈 카터가 수상 3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의 죽음 뒤 카터에게 가해져 왔던 수많은 비난이 새삼 조명됐다. 고개를 치켜들 여력도 없는 아이를 독수리가 노리고 있는데 가만히 사진이나 찍고 있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행태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진을 찍고 바로 독수리를 쫓았다는 카터의 항변은 전혀 먹혀들질 않았다. 관찰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저널리즘의 오래된 원칙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 또한 뒤따랐다. 상황을 보고 바로 뛰어들어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해야 했다는 목소리와 이를 찍어 알리는 것이 당장 하나의 위험을 해결하는 것보다 더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에 장려돼야 한다는 이야기도 쏟아져 나왔다. 그중 진정으로 따라야 할 길이 어느 것인지 선명하게 확실하게 말하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 닥터 후: 화성의 물 포스터
ⓒ BBC
 
시간여행자에게도 딜레마가 있다

<닥터 후: 화성의 물>은 각 시즌과 별도로 제작된 여러 스페셜 가운데서도 제법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그건 이 작품이 주인공인 닥터(데이비드 테넌트 분)가 가진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시간여행자가 품을 밖에 없는 일종의 철학적 질문을 전면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일 테다.

여느 때처럼 닥터는 시간여행을 하여 붉은 행성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만난 인간들은 닥터를 체포해 연행하고, 닥터는 그곳이 근 미래 인류가 세운 화성 식민기지임을 알게 된다. 인간이 처음 우주에 세운 식민기지는 인류가 지구 아닌 곳에 정착할 수 있는지 각종 기술을 실험하는 중이다. 먹거리로 삼을만한 여러 식물을 기르고 태양열을 이용한 발전패널을 설치해 각종 기계를 돌리기도 한다.

닥터가 도착한 많은 곳이 그러하듯 식민기지 또한 위험에 빠진다. 화성 깊은 곳에 얼어 있던 빙하가 녹아 식민기지 용수 속에 흐르며 이를 접하는 인간을 감염시켰던 것이다. 이후 드라마는 괴물처럼 변한 이들의 습격과 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생존자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 닥터 후: 화성의 물 스틸컷
ⓒ BBC
 
무고한 죽음이 예정된 자들을 만나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죽음이 시공간을 오가는 닥터에겐 이미 예정된 사실이라는 점이다. 닥터는 이들에게 날짜를 물어 도착한 바로 그날이 사고로 이들이 모두 죽는날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중에서도 함장 애들레이드 브룩(린제이 던칸 분)의 죽음은 그저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것으로,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브룩의 손녀는 우주로 나아가겠다는 꿈을 품게 되고 마침내 인류를 우주 바깥에 정착시키게 된다는 걸 닥터는 알고 있다. 평소 수많은 사건을 거치며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하였으나 때로 어떤 사건은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걸 그는 종족의 규칙으로써, 또 직접 겪어낸 경험으로써 알고 있는 바다.

그러나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 닥터의 앞에서 사람들이 하나하나 죽어나가고 이를 지켜봐야 하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게 된다. 개입하면 미래가 바뀌고, 개입하지 않자니 눈앞의 무고한 이들이 죽음을 맞는 상황인 것이다.
 
▲ 닥터 후: 화성의 물 스틸컷
ⓒ BBC
 
여전히 논쟁 중인 저널리즘의 원칙

머리는 떠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개입하고 싶어 날뛰는 닥터다. 이야기는 급박하게 전개되고 홀로 탈출하는 길과 모두를 구하는 길 앞에서 이도저도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간다.

<화성의 물> 편은 여전히 논쟁 중인 오래된 저널리즘의 쟁점을 떠올리게 한다. 개입할 것인가 보고만 있을 것인가, 관찰할 것인가 바꿔낼 것인가의 경계에서 닥터가 내린 선택은 다시 많은 의문으로 이어진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타임로드 또한 제약과 한계 앞에 무력한 존재이고 과연 그에게 개입해도 되는 권한이 있는가 하는 고민 또한 필연적이다.

결론의 득실로 수단의 시비를 가릴 수 없는 상황에서 답은 결국 시청자 개개인에게 맡겨질 밖에 없다. 결국 이 같은 드라마의 미덕이란 시청자에게 스스로 딜레마의 순간에 서보게끔 한다는 점일 테다. 비록 그것이 간접경험이라 할지라도 고민을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는 것은 다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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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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