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이 벌인 철없는 짓" 몰매... 과연 누구의 죄인가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 시민들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앞에서 1학년 교사의 사망에 가슴 아파하며 국화꽃과 위로의 메시지를 놓고 가고 있다. |
ⓒ 유성호 |
어려운 시절에는 사람들이 예민해진다. 삶의 여유가 없어지면 사람 사이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그런 사회에서는 함부로 의견을 내세우기조차 어렵다. 요즘이 그렇다. 자고 나면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로 세상일을 함부로 논하기가 어렵다.
요즘 교육학자인 나에게 학생 편인지, 아니면 교사 편인지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교육의 장이 무슨 전쟁터도 아닌데 교사와 학생을 왜 대립적 진영으로 읽으려 하는지, 그렇게 읽으려는 자들이 과연 교육을 아는 자들인지 묻고 싶은 세상이 되었다.
이런 편 가르기 세상에서 고통받던 초임 교사가 세상을 버렸다. 차단되지 않은 익숙한 지하도를 달리던 자동차 운전자와 승객들이 순식간에 가족과 이별했다. 국가는 있지만 자기의 안위는 각자 지켜야 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에 내던져진 듯한 기분이 교사나 학생이나, 군인이나 시민이나, 운전자나 행인이나 모두에게 번지고 있다. 결국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떠난다.
▲ 1948년 10월 22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다방 문화풍속도'라는 제목의 기사 |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경향신문 1948년 10월 22일 자를 보면 제목이 '다방 문화풍속도'이고, 내용은 다방의 범람으로 '대한인大韓人'의 창자에 커피가 중독될 우려가 가득하다는 내용이었다. 해방이 준 큰 선물 중 하나가 도시 생활자의 사랑이오, 문화인의 사교장이라는 다방인데, 서울 시내 100여 곳의 다방이 아침부터 만원인 것은 통탄할 일이라는 비판이었다.
▲ 과거 한 다방의 모습 (1961.7.31) |
ⓒ 연합뉴스 |
당시 다방을 출입하던 사람들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무당과 점쟁이였다. 불안정한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민심의 약점을 파고든 이들 점성가들이 즐겨 찾는 곳의 하나가 다방이었다. 이들은 다방에 앉아 개인의 운명이나 사주팔자를 논하고, 심지어는 남북통일이나 전쟁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지켜보던 동아일보는 1949년 8월 30일, 맹랑한 예언을 뿌리고 다니는 이들 무당이나 점쟁이의 격증을 우려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다방은 점차 커피를 마시며 유언비어를 만드는 온상으로 여겨졌다. 정부가 각 지방 경찰서에 특별한 시달을 하여 이들, 다방에 모여 "정부와 민중을 이반케하는 반역도배들"에 대한 비상 대책을 수립하도록 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이 벌어지면 하기 쉬운 것이 특별 지시고 비상 대책이었다.
이래저래 다방은 정부수립이 가져다준 자유의 상징이고,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선물이면서 동시에 불온함이 넘치는 곳으로 여겨졌다. 커피는 그곳에서 소비되는 사치품이었다. 분위기에 호응하여 "피눈물 나는 현실에 다방 출입이란 무엇이냐, 좀 더 현실을 직시하라"고 떠드는 인간이 넘쳤다.
그런 시절에 '커피의 가을'이란 수필을 쓴 인물이 있다. 커피를 좋아했던 소설가 이봉구였다. 1947년 가을에 발표한 이 수필에서 이봉구는 살기 어려운 세상 커피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느니, 다방 정취가 좋다느니 하는 감상을 솔직히 드러냈다.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요즘 표현으로는 악플 세례였다. 어려운 세상인 줄 아는 지식인이 벌인 "철없는 짓"이라느니 "지각없는 짓"이라는 식이었다.
1년이 지난 1948년 가을이 저물어 가던 시점에서 이봉구는 다시 펜을 들었다. 1년 만에 쓰는 대댓글이었다. '다독茶毒의 변辨'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발표하였다. 이봉구는 주장하였다.
"커피란 무어 운명을 좌우할만한 음료수가 아니요, 다방이란 무어 사람을 망치는 곳이 아니다. 육십 원만 있으면 누구나 잠시 들러 한잔 마시고 떠들다 오는 곳이다. 큼직하고 따스한 사랑방이 있어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음악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가라고 떼밀어도 없는 돈에 다방 출입할 사람이 없을게다. 이건 참말 진리에 가까운 말이니..."
다방 이외에 갈만한 곳이 없던 시대였다. 다방에 가는 것이 옳다 그르다, 커피를 마시는 것이 옳다 그르다를 놓고 떠들 이유가 없는 세상이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나뭇잎이 허공을 날고, 벌레 울음이 밤새워 가슴을 적시는 철에 진한 커피를 마시며 아늑한 다방 한구석에 앉아 좀 쉬는 것은 시비거리가 될 수 없었다. "알래스카와 같이 얼음판인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봉구에게는 다방 출입이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최소한의 위안이고 취미였다. 커피에 중독이 되어도, 커피값이 부담스러워도 커피를 놓을 수 없었다. 다방 이외에는 갈만한 쉼터가 없었기에 생긴 시비였다.
▲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한 참가자가 전국 초등교사 성명서를 들고 있다. |
ⓒ 연합뉴스 |
다시 지금 이 시대의 우울함을 생각한다. 교사가 되려는 수많은 젊은 남녀들에게 교사라는 직은 사명감 가득한 길이거나 낭만 가득한 길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사회가 시민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 위기의 시대에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안정된 직업, 금수저가 아닌 평범한 청년들이 선호하는 직업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입학하고, 졸업 후 몇 년의 실패 위험을 견디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것이다. 성실하게 공교육을 받고 대학을 졸업하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고 직업 간의 위계가 지나치게 크지 않은 세상이라면 굳이 선택하지 않을 길일지도 모른다. 교권을 침해하는 학부모와 학생으로 넘치는 곳인 줄 알지만 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곳이 교직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친구와 경쟁하지 않고, 다양한 체험학습을 하며, 자신의 적성이나 취향에 맞는 일을 준비할 수 있는 정상적인 교육 기관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싶어 한다. 누구도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지금 학교라는 이름을 붙인 말뿐인 교육기관, 실제로는 입시 준비 시설인 곳에서 꿈같은 시간 12년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자녀들이 학교만 성실하게 잘 다니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원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여 큰 차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큰돈 들여 사교육 시장으로 애들을 내몰 학부모는 없을 것이다. 이런 사회라면 학부모가 학교를 긴장된 눈으로, 교사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이유가 없다.
해방 직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긴장되고 불확실한 세상,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다른 대책이 없어 학교에 머물고 있는 교사, 학생, 학부모 그 누구도 비난의 대상일 수 없다. 지금 우리 모두가 질타하는 학부모는 나 자신이고, 학생은 어제의 우리였다.
이런 사고를 당하면서도 경쟁 중심 교육을 외치는 인간들이 죄인이고, 미래의 살인자들이다. 교사와 학생으로 편 가르기 하여 자신의 죄를 모면하려는 자들이다. 그 옛날 다방과 커피가 비난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듯이 지금 학교 현장에 있는 그 누구도 죄인일 수 없다. 우리가 만든 시대가 죄인이다. 길은 하나다. 경쟁하는 인간이 아니라 협력하는 인간을 키우는 교육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유튜브 '커피히스토리' 운영자, 교육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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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동아일보(1948-1950) 경향신문(1948-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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