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법령을 제때 시행하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

2023. 7. 2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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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시행에 필요한 하위법령, 제때 마련돼야 정책 적기 시행"
이완규 법제처장.

얼마 전 소서(小暑)가 지났다. 작은 더위를 의미하는 소서는 본격적인 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서 장마철과 겹쳐 비가 많이 내리고 습도가 높은 시기다. 과거에는 하지 무렵에 모내기한 모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시기로 봤다. ‘소서 모는 지나가는 행인도 달려든다’는 속담이 있다. 소서가 오기 전에 모심기를 마쳐야 벼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데, 모내기가 늦어지면 모든 일손을 동원해서라도 하루빨리 모내기를 끝내야 한다.

법령에도 ‘때’가 있다. 법률이 제정되거나 개정되면 그 시행에 필요한 하위법령을 법률 시행일에 맞춰 마련해야 한다. 실무에서는 이를 ‘하위법령 제때 마련’이라고 한다. 법률의 시행에 필요한 하위법령이 제때 마련돼야 법률에 담긴 정책이 적기에 시행될 수 있고, 나아가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아울러 법률의 위임사항이나 법률의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담고 있는 하위법령을 제때 마련하는 것은 입법기관인 국회의 입법 의도를 실현함으로써 입법권을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다.

법령 소관 부처는 법률의 시행을 위해 하위법령의 제정이나 개정이 필요하면 해당 법률의 하위법령안을 마련해 부처 협의, 입법예고 및 규제심사 등의 입법 절차를 거쳐 그 법률의 시행일 45일 전까지 법제처에 심사를 요청해야 한다.

간혹 입법 절차가 지연되면 하위법령이 시행일을 넘겨 마련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정부 입법을 총괄하는 법제처는 법률의 시행일까지 하위법령이 마련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두 차례에 걸쳐 소관 부처의 입법 추진 상황을 집중 점검·관리하고 있다. 즉, 시행일 기준으로 120일 전까지 입법예고가 되지 않은 법령은 신속하게 입법예고할 수 있도록 소관 부처에 안내하고, 시행일 50일 전까지 법제처에 심사가 의뢰되지 않은 법령은 소관 부처에 규제심사 진행 상황, 부처 이견 유무 등을 확인해 입법 추진이 늦어지지 않도록 요청한다.

그러나 모든 법률이 이처럼 시행일에 여유를 두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긴급하게 시행할 필요가 있어 하위법령을 마련할 충분한 여유를 두기 어려운 경우에는 국회에서 의결된 후 공포 즉시 시행되기도 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였던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전세 사기로 피해를 입은 임차인을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법은 5월25일 국회에서 의결된 후 6월1일 공포 즉시 시행됐다. 특별법에서는 전세 사기 피해자에게 경매 또는 공매 절차와 조세 징수에 관한 특례를 부여하고, 금융지원 및 긴급복지지원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특례와 지원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먼저 전세 사기 피해자 인정 신청을 통해 전세 사기 피해지원위원회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특별법에서는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신청 절차와 구체적인 피해조사 절차를 시행규칙으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서는 시행규칙도 법률과 동시에 시행될 필요가 있었다. 법제처는 특별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논의되는 과정을 예의 주시하면서, 시행 규칙안에 담겨야 할 내용에 대해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미리 협의했다. 그리고 특별법이 국회에서 의결되는 즉시 신속하게 법령안 심사를 진행함으로써 특별법 시행일에 맞춰 시행규칙도 함께 시행될 수 있도록 했다.

특별법 시행 첫날, 795건의 전세 사기 피해자 인정 신청이 접수됐다고 한다. 피해구제 절차를 담은 하위법령을 최대한 신속하게 마련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법령을 정해진 시기에 맞춰 시행하는 것은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약속이다. 법제처는 앞으로도 하위법령을 제때 마련함으로써 국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완규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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