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따구리 아빠' 생태작가의 호반새 관찰기

이완우 2023. 7. 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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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새, 딱따구리 빈 둥지의 새 주인... 남원 서남대 캠퍼스 숲 김성호 작가의 조류 관찰

[이완우 기자]

 호반새
ⓒ 김성호
 
지난 26일 전북 남원시 광치동의 폐교된 서남대학교 캠퍼스 숲, 생태작가 김성호씨가 여름 철새인 호반새의 둥지를 관찰하고 있었다. 호반새는 봄에 우리나라에 와서 여름을 지내며 번식하고 가을이면 떠나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나는 여름 철새로, 우리나라에서는 5월 초순에서 9월 하순까지 관찰할 수 있는데 실제로 만나기는 쉽지 않다.

김 작가는 이날 대학 캠퍼스 숲의 딱따구리 둥지를 모니터링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었다. 이곳 학교 정문에서 첫 번째 건물 앞에 있는 키가 가장 큰 은사시나무에 호반새가 둥지를 틀고 있다. 그는 그중 한 나무에서 호반새가 둥지를 튼 모습을 발견하고 유심히 관찰 중이었다.

김 작가는 지난 1991년 3월에 이곳 서남대학교가 개교할 때 부임하여 2018년 2월 말 폐교할 때까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 학교는 지리산과 섬진강 권역의 천황지맥 산줄기에 자리 잡고 있어 학교 주변의 숲도 울창했다.
 
 호반새 둥지에 날아드는 순간 모습
ⓒ 김태윤
 
그는 숲으로 울창한 학교에서 자연을 품은 생명에 다가서고, 눈높이를 맞추고, 오래도록 그 앞을 지키며 말을 걸어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15년 전부터는 경계심이 많아 관찰하기가 매우 힘들다는 새를 만나기 위해 전국을 누비며 찾아다녔다.

현재 이곳에서 김 작가가 관찰하고 있는 호반새가 자리 잡은 둥지는 15년 전 딱따구리가 지은 집인데, 해마다 주인이 바뀌다 올해는 지금의 호반새가 주인이 됐다는 것이다.

호반새는 딱따구리 둥지를 이용해 번식하므로 어린 새들은 둥지 깊숙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요즈음 부모 호반새가 무더위에도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나르는 것을 볼 때, 어린 새가 보금자리를 떠날 때가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고 한다.

15년 전부터 전국 누비며 새 관찰 

호반새는 계곡을 다니며 가재, 개구리와 작은 뱀 등을 먹잇감으로 즐겨 사냥한다. 이곳의 캠퍼스 숲이 금남호남정맥에서 분기한 천황지맥의 산줄기 숲과 여러 계곡에 가까이 위치하여 호반새가 보금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호반새의 붉은 색에 가까운 주황색은 인상적이어서 불새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환경 지표종으로 지정된 호반새가 사는 숲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호반새와 가까운 친척에 같은 파랑새목 물총샛과의 물총새와 청호반새가 있다. 호반새의 영문 이름(ruddy kingfisher)은 붉은 물총새라는 의미이다. 이 새는 개체 수도 워낙 적은 편이고 경계심이 강하여 좀처럼 사람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호반새 둥지 숲
ⓒ 이완우
 
한편, 5월 초순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이 물총새 무리는 여름 철새답게 색이 화려하다. 이 새들은 길고 날카로운 부리가 예사롭지 않은데 먹잇감을 잘 잡을 수 있는 구조로 발달했다. 먹잇감을 물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뭇가지나 돌에 힘차게 내려친 뒤에 먹는 습성이 있다.

물총새와 청호반새는 천적이 접근하기 어려운 깎아지른 수직 흙벽에 구멍을 뚫어 널찍한 수평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번식한다. 호반새는 썩은 아름드리나무를 선택하여 높은 둥치에 구멍을 뚫어 수평 둥지를 만든다. 호반새는 마땅한 나무를 찾지 못하면 딱따구리의 수직형 묵은 둥지라도 보금자리로 재활용하는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 학교 캠퍼스가 위치한 천황지맥 산줄기 숲의 우점종은 소나무이다. 소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이 갈래갈래 나 있어 바람결이 상쾌하여 솔바람길이라고 부른다. 학교 옆 산책로에는 길 양쪽의 느티나무가 서로 맞닿아 하늘을 가리어 느티나무 터널을 형성, 밤재길로 이어지는데 특히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학교 정문에서 학교로 진입하는 도로는 오른쪽은 소나무 숲, 왼쪽은 느티나무 숲이다. 운동장에는 벚나무가 둘러서 있다. 학교 정문에서 첫 번째 건물 앞에는 개교 전부터 그곳에 숲을 이룬 은사시나무가 20여 그루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나무는 수고 60m에 이르는 거목으로 수령은 7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김성호 생태작가의 교수 연구실이 이 첫 번째 건물에 있었으니 말하자면 그는 이 은사시나무 숲을 33년 동안 마주한 셈이다.

이곳에서 김 작가는 2005년부터 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2007년 어느 봄날에 이 은사시나무 숲에서 둥지를 막 짓는 시작하는 딱따구리를 처음으로 만났다.

새벽마다 딱따구리 관찰 삼매경, 육아기 책으로 펴내기도 
 
 청딱따구리
ⓒ 김성호
 
그는 그때부터 50일 동안 딱따구리가 어린 새를 키워내는 과정 전체를 조용히 관찰했고, 그 관찰 결과를 <큰오색딱따구리의 육아일기>라는 책으로 엮어냈다(웅진지식하우스, 2008년).

이후로도 김 작가는 딱따구리와 그 둥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여 10여 권의 책을 더 출간하였다. 그는 새를 만나려고 겨울이면 두루미를 보려고 철원으로, 흑두루미를 보려고 순천만으로 새를 따라 갔다. 철새처럼 이동했다는 얘기다.

남원시 이곳의 학교와 산자락 숲길은 그의 발길로 다져졌다. 지난 2007년부터 13년 동안 그는 이곳에서 딱따구리를 관찰해 오면서 '딱따구리 아빠'라는 별명을 얻었다. 새벽 4시 30분이면 딱따구리 둥지 앞으로 가서 딱따구리가 잠들 때까지 관찰하고 기록하는 날이 많았다.

오랜 경험이 쌓인 그는 이제 새의 울음소리만 듣고도 어떤 새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새들은 관찰하면서도 새들의 생활을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새들을 관찰할 때 자연 생태를 존중하고 보호하면서 망원 렌즈, 삼각대, 카메라와 위장 텐트 등 관찰할 도구와 물품들을 신중히 활용한다.
 
 호반새 둥지 숲 원경
ⓒ 이완우
 
지난 26일 오후에 만난 김 작가는 이 때도 남원 서남대학교 캠퍼스 숲의 은사시나무 숲에서 호반새를 며칠째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호반새가 둥지를 튼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말했다.

"호반새가 숲에 날아 들어오면 새소리를 듣고 바로 알 수 있지요. 꾜르르르, 꾜르르르, 꾜르르르. 호반새 소리는 구슬 구르듯 청량하게 아름다워요.

관찰이란 자세히 보는 것이고, 자세히 보기 위해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관찰하려는 대상에 다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뭔가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딱따구리와 두루미를 만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딱따구리 아빠' 김 작가는, 봤다고 다 본 것이 아니고 직접 들었다고 다 들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자세로 자연을 향해 다가선다고 한다. 그는 관찰하는 새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간섭하지 않고 기다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새들의 생활사를 관찰한다. 그는 새가 둥지 튼 나무 옆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 잡은 숲속의 한 그루 나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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