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붉은 색으로 담은 도시와 자화상…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

김희윤 2023. 7.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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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선 개인전 ‘내 이름은 빨강’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서 10월 22일까지
‘물질·환경·신화’로 연결된 50년 회화 여정 조명

붉은 눈의 사내가 관객을 응시한다. 흡사 괴물화 된 인간의 모습처럼 느껴지지만, 이내 그 눈빛에 눈을 맞추고 바라보게 된다. 작가 서용선은 붉은색을 두고 한없이 투명한 색이라고 말했다. '빨간 눈의 자화상'은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은 거친 표현만큼이나 강력한 흡인력으로 관객의 시선, 그리고 공감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품고 있다.

빨간 눈의 자화상, 2009, 캔버스에 아크릴릭, 259×194cm. 골프존뉴딘홀딩스 소장.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서용선에 대한 연구조사전시회가 ‘서용선: 내 이름은 빨강’이란 제목으로 10월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된다.

작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지속해서 ‘사람-도시-역사’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한국 근대화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며 이를 ‘물질-환경(자연)-신화’로 연결해왔다. 그는 표현주의와 신구상 회화의 계보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모색해 왔는데, 50여년이 넘는 서용선의 회화 여정은 ‘회화라는 매체에 대한 본질적 탐구’, ‘우리를 구성하는 역사에 대한 동시대적 인식’, ‘공존의 시간과 장소로서 세계의 근원에 대한 성찰’ 등으로 요약된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골드’에서는 서용선 회화의 중요 공간인 도시를 다루고, 2부 ‘블랙’에선 사람, 정치, 역사, 생명의 의미를 탐구한다. 그리고 3부 ‘나-비’는 보편적 세계를 향한 작가의 의지, 예술과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3부 전시는 9월15일부터 시작한다.

전시 주제는 1591년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전통과 서구의 갈등이 회화와 화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오르한 파묵의 소설 'Benim Adım Kırmızı'(내 이름은 빨강)에서 가져왔다.

서용선, '숙대 입구 07:00∼09:00' 1991, 캔버스에 아크릴릭, 비닐 기법, 180x230cm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서용선은 "도시와 사람이 작업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도시화하는 과정에서 인물 군상에 대한 탐구는 '도시에서', '거리의 사람들'과 같은 제목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작업에서도 드러나지만,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혹은 '남자' '여자' 등 제목의 인물화나 '갈등' '역사' 등 단어로 명명된 인물화에서도 나타난다.

도시에 대한 작가의 경험은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시작한다. 어린 시절 그는 무너진 도시가 재건되고,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가 작심하고 도시를 그리기 시작한 시기는 새로운 서울, 강남이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시작한 1980년대와 1990년대로 경제개발 성과가 가시화돼 성장과 확장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시기다. 그는 이러한 도시의 변화, 이동하는 사람들과 교통수단을 통해서 보이는 도시 경관 등에 주목했다.

작가는 도시 자체에 대한 묘사보다 과거와 현재가 응축된 장소로서 서울의 의미를 새롭게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서울은 그에게 현재를 탐구하는 출발점이자 토대로. 작가는 이러한 도시와 도시인에 관한 연구를 서울에서 출발해 뉴욕, 독일 베를린, 중국 베이징, 호주 멜버른 등으로 확장해 나간다.

‘‘경’자 바위’(2014).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강렬한 자화상만큼이나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 ‘‘경’자 바위’(2014)는 우리를 수양대군(세조) 시대로 이끈다. 세조는 단종을 지지했던 금성대군을 순흥으로 유배 보냈으나 그가 다시 단종 복위를 모의하자 사약을 내리고 순흥 사람들을 학살한 뒤 역모의 고을로 낙인찍어 폐쇄했다. 당시 소수서원 옆 죽계천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10리 떨어진 마을까지 이르러 ‘피끝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여 ‘정축지변’이란 이름이 붙었다. ‘경’자 바위는 정축지변 때 죽어간 원혼들이 밤마다 울어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이 ‘경’자를 새기고, 제사를 지냈다는 바위다. 서용선은 붉은 글자, ‘경’을 다시 그려 치유와 화해 그리고 공존을 위한 자각이자 실천을 되새긴다.

이처럼 계유정난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역사적 사건에 관한 작가의 탐구는 정치가 인간의 보편적 삶과 유리되어 어떻게 파국적 현재를 만들어 가는지 드러내는 소재로 활용된다.

최인훈 작가의 '하늘의 다리/두만강' 표지에 등장하는 1996년 작 '돈암동·건널목'은 검은색이 주조색으로 쓰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검정은 작가에게 빨강만큼이나 중요하지만, 회화 전면에 드러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정치인, 1984, 1986, 캔버스에 유채, 90×100cm.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작가는 "90년대의 나는 긴장한 상태로 도시를 바라본 것 같다. 그래서 90년대 작품은 치밀한 면이 있다"며 "그러나 지금 도시를 볼 때 어떤 부분에서는 냄새까지도 느껴보려고 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90년대 작업과 2000년대 작업의 이런 차이를 보는 것도 이번 전시를 보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고 설명한다.

김장언 아트선재센터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서용선의 회화 세계를 서사적이고 구상적인 틀에 국한하지 않으면서, 형상적이고 감각적인 세계, 즉 '회화적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서용선 회화의 급진성을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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