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2500원과 공영 미디어 정신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이 지난 12일 공표됐다.
TV 수신료는 더 이상 전기요금과 합산해 고지, 징수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영방송의 정신과 실천을 둘러싼 공론화와 숙의의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
분리징수를 지지하는 이들은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공영방송도 새 옷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이 지난 12일 공표됐다. TV 수신료는 더 이상 전기요금과 합산해 고지, 징수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징수업무를 대리하는 한국전력이 따로 발행하는 고지서를 받는다. 법리는 그렇지 않지만 사실상 납부 여부를 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걷힐 수신료 수입이 통합징수 때의 4분의 1 또는 6분의 1에 그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결정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에서 출발한다. 꽤 오래 누적된 비판이다. 여기서 필요한 건 우리 사회가 공영방송 제도를 유지할지, 유지한다면 어떤 방식이어야 할지에 관한 논의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시행령 개정은 대중의 관심을 “나는 월 2500원을 낼까 말까?”의 문제로 치환해 버렸다. 공영방송의 가치나 유효성을 놓고 벌이는 사회적 토론 대신 합리적 소비자로서의 개인적 선택만 남은 꼴이다.
‘합리적 소비’의 틀에서 수신료를 내지 않을 이유는 많다. “난 KBS를 안 보니까” “KBS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케이블이나 위성 등 유료방송으로 보기 때문에” “난 OTT만 보니까” 등등. 그런데 현행 방송법이 이런 선택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헌법재판소는 수신료를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TV 수상기 소유에 따라 내는 특별교부금 성격을 지닌다고 해석했다. 우리 사회가 공영방송 제도를 그렇게 합의했다는 뜻이다. 그 합의가 옳지 않다고 여기면 새 합의를 도출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영방송의 정신과 실천을 둘러싼 공론화와 숙의의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
공영방송 제도는 ‘정치’와 ‘자본’이라는 이중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을 핵심으로 한다. 민영(民營)이나 사영(私營)이 아니고, 국영(國營)이나 관영(官營)도 아닌 공공의 소유와 탈상업적 재원 방식을 고안해낸 결과물이다. “국민의 방송”이란 말은 결코 KBS 로고송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치권력의 부당한 통제로부터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이윤 추구와 상업성이 초래하는 부정의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정신을 시민이 주인이 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담는다.
김효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체제의 방통위가 밝힌 KBS의 문제는 정치적 편향성과 방만한 경영 두 가지다. 이 중 정치적 편향성 판단은 정부나 특정 정당에 맡길 수 없다. 고질적인 진영 논리로 정파마다 엇갈린 평가를 내놓을 게 뻔하다. 그에 비해 비효율성과 방만함에 대한 이견은 크지 않으며, KBS가 그동안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거듭해 놓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통령령의 방식으로 정부가 앞장서 결정과 실행의 주체가 되는 건 공영방송 정신에 위배된다. 제도의 변화 혹은 ‘포기’ 역시 시민이 주체여야 한다.
분리징수를 지지하는 이들은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공영방송도 새 옷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새롭게 재편되는 환경 속에서 공영성의 가치를 실천할 미디어가 여전히 필요한지, 오히려 더 절실한지 고민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그런 논의의 장을 마련해 시민들이 주체로 참여해 숙고하고 결정하는 절차를 만들면 된다. 그 정신을 실현할 기구의 기능과 규모, 형태 역시 KBS의 현상 유지에 국한될 필요도 없다.
당장 시작될 월 2500원의 선택에서 합리적 소비 말고 공영 미디어 정신과 가치를 고민하는 이들이 많으면 좋겠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돈벌이가 최고 목표여서 시청률과 상업광고에 목매는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미디어의 존재를 원하는지 질문해 보자.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내는 수신료는 KBS의 현재를 긍정하지 않더라도 그 정신을 좇아 거듭나라고 호통칠 자격이 될 것이다.
박진규(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포 확산 노린듯”… 신림 흉기난동범, ‘홍콩 살인’ 봤다
- “‘왜 그렇게 많이 먹냐’ 폭언하는 아내, 이혼하고 싶다”
- 어제 153만원, 오늘 98만원… ‘에코프로 황제’의 몰락
- 출근길 날벼락…뉴욕 맨해튼 45층 상공 크레인 붕괴 [영상]
- ‘부모 찬스’ 결혼 자금, 3억까지 비과세…자녀장려금도 최대 100만원
- “경찰이 동네북인가”…‘미출동’ 오송파출소에 응원 화환
- “자유 찾고 싶다”…10시간 헤엄쳐 대만 섬 도착 중국인
- 진중권 “대형 참사에 유일하게 사과 안한 분, 尹대통령”
- 주호민, 자폐 아들 담당교사 ‘아동학대’ 신고 논란…직접 해명
- 성인화보 모델들의 폭로 “대표가 상습적 성폭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