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나이든 제자, 어린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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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다가 문집을 발견했다.
시도 쓰고 만화도 그려보는 커리큘럼이었는데 그때 만든 문집이었다.
한 어르신과는 거의 마흔 살 가까이 나이 차가 났다.
인생의 곱절을 사신 어르신들께 어떻게 시를 전할까? 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 우려와 달리 수강생들은 나이 어린 스승을 '선생님'이라고 존대하며 예우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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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다가 문집을 발견했다. 작년 서울 용산 꿈나무도서관과 시립용산노인종합복지관 주최로 프로그램을 맡은 적이 있다. 시도 쓰고 만화도 그려보는 커리큘럼이었는데 그때 만든 문집이었다. 좋은 경험이 될 듯해 흔쾌히 수업을 맡았지만 막상 개강일이 다가오자 걱정스러웠다. 한 어르신과는 거의 마흔 살 가까이 나이 차가 났다. 인생의 곱절을 사신 어르신들께 어떻게 시를 전할까? 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 우려와 달리 수강생들은 나이 어린 스승을 ‘선생님’이라고 존대하며 예우해 주셨다.
첫 시간에 나는 연령 주기에 따른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길 권했다. 여덟 살에 6·25를 겪고 단돈 5400원을 들고 무작정 상경한 어르신, 타향살이 60년에 36년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노후를 즐기고 싶다는 어르신 등 저마다 녹록지 않은 인생의 곡절이 그려져 있었다.
수업 풍경도 눈에 선하다.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다는 듯이 다급히 메모하는 어르신, 깜빡 졸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억지로 잠을 떨치려던 어르신도 있었다. 한 어르신은 자리를 맡아두고 어딘가에서 놀다가 수업이 끝날 즈음이 돼서야 슬슬 나타났다. 선생 입장에서 억울하게도 그분이 쓴 시는 장원감이었다. 종강 날 편지를 낭독하면서 어떤 온기가 묵직하고도 뻐근히 가슴속에 퍼지는 것 같았다. 좋은 사제지간이란 다름 아닌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에서 은은하게 번져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수업 중에 타인의 삶을 상상해 보고, 마음의 지평을 넓히는 슬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돌아보니 그 말은 자신에게 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한 어르신의 ‘시인이 된다는 것’이라는 시 전문을 옮긴다. “주제를 정하라 하네/ 무엇을 표현할지/ 분명히 하라 하네/ 산만하지 말라 하네/ 자신만의 감정을 표현하라 하네/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를 하라 하네/ 참 어렵다/ 스승님의 제자 되기.” 뜨끔하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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