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미국 대학이 스스로 참여한 ‘적극적 조치’

2023. 7. 28.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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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지난달 미국 연방대법원은 대학 입학 전형에서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같은 성적이라면 백인이나 아시아계 미국인보다 아프리카나 중남미계 미국인이 명문대에 진학하기 쉽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게 백인과 아시아계 미국인을 역차별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어디라고 보는지, 그리고 무엇을 정당하다고 보는지에 따라 판단은 첨예하게 갈린다.

「 현재의 능력은 외부 요인에 좌우
대입 전형은 잠재력 평가가 중요
공평하게 기회의 평등 주어져야
결과의 차별 수용하는 사회 가능

반대자들은 이 조치가 다수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희생시키면서 소수에게 특권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이 제도가 공정(fairness)하지 않다고 본다. 이런 역차별을 없애고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평가해야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지지자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거나 차별과 억압을 받아 온 계층에게 이 조치가 필요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민자를 비롯한 사회경제적 하위 계층은 이 조치가 아니었다면 누릴 수 없었을 사회적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므로 공평(equity)하다고 판단한다.

잠시 시각을 돌려 격투기를 생각해 보자. 격투기는 그 성격상 얼마나 잘 싸우는지를 평가할 수밖에 없다. 체중이 60㎏과 100㎏인 유도 선수 둘이 대결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게 정당한 대결일 수 있겠는가? 누가 이기는지만 보려고 한다면 아무 조건 없이 두 선수가 맞대결해야 한다. 그런 싸움이라면 60㎏ 선수가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해도 비슷한 기량의 100㎏ 선수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신체조건은 타고난 것이어서 자신의 노력으로 바꾸기 어렵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므로, 격투기에서는 체급을 나눠 경기를 벌인다. 싸움의 승리가 목적이 아니라 정당한 경쟁이 목적이므로 이게 가능하다. 이는 체급이 다른 모든 선수에게 기회를 공평하게 주려는 것이다. 선수들이 쏟은 노력과 그 결과로 얻는 성과를 타고난 신체적 조건과 상관없이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것이다.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바로 이 지점에서 격투기는 승리가 중요한 치고받기 싸움에서 정당함이 중요한 현대 스포츠로 격상할 수 있게 된다.

올림픽 출전 선수의 기량은 대부분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을 전후해 정점에 이른다. 이 시점에 서로의 기량을 겨루고 이를 평가하면 된다. 현재의 능력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입사 시험이나 자격시험도 마찬가지다. 응시자가 임무 수행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그 시점에서 평가하면 된다. 대입 전형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본격적인 공부를 이제부터 시작해야 하므로, 대입 전형은 교육의 한 과정이다. 부모의 영향이 큰 현재의 능력보다는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므로, 발전 가능성 내지는 잠재력을 중점 평가해야 한다. 미래의 능력을 평가하기 어려워서 하는 수 없이 현재의 능력을 평가하더라도, 이는 현재의 능력보다는 잠재력을 가늠하려는 것이어야 한다.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을 평가하려 한다면, 체급 경기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공평성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부모의 학력, 가정의 사회경제적 위치, 거주 지역, 성, 인종 등이 학생의 현재 능력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체급 경기에서의 체중처럼 학생 본인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없는 요인이다. 이런 외부 여건이 불리한 학생이라면 현재 갖춘 능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미래 성장 가능성은 클 수 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 positive action)를 연방정부 임용에 도입했다. 하버드 대학을 비롯해 미국의 명문대학은 자발적으로 이 조치를 입시에 반영했다. 공평성의 문제를 교육이 왜 이처럼 고민해야 하는가? 대학 입학이 고등학교 시절까지 기울인 노력의 결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은 교육으로 자신을 계발해 나갈 출발점이고 기회이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이 보장돼야 한다면, 모든 사람은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 부모나 가정 등, 자기 외적인 요인에 의해 이 권리가 침해되지 않게 하려면 공평성을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모든 구성원에게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질 때, 사회구성원은 개인이 노력한 결과로 형성된 불평등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질 때, 결과에 대한 차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며 존경하는 건강한 사회가 이룩될 수 있다.

아무 조건 없이 상대와 싸워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검투사의 로마 시대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평가하는 현대 스포츠의 시대가 우리 교육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성숙한 사회에선 무조건적 평등(equality)이 아니라 공평성의 원칙이 작동돼야 한다. 이는 기회 평등의 원칙을 지키려는 의식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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