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교사·의사는 왜 면책 확대를 외치나

김원배 2023. 7. 2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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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논설위원

지난 18일 서이초등학교에서 젊은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교권 회복’이 커다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사건 10여일 전 국회엔 이런 내용의 청원이 접수됐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만으로 교사는 지자체 조사와 경찰 수사를 이중으로 받아야 하고, 담임 박탈, 출근 정지 등의 조치를 감수해야 한다. 설사 무혐의나 무죄 판결을 받아도 심신은 만신창이가 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 7일 ‘교원의 정당한 생활 지도는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청원하며 낸 보도자료의 일부다. 해당 법안은 지난 5월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 등 10명이 발의했다. 비극적 사건 이전에도 교사의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23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추모객들이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고 있다. 교원단체 등은 이번 사건이 악성민원 등 학부모의 괴롭힘에 의해 발생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며 경찰은 온라인상에서 제기된 학부모 갑질 여부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 뉴시스

이런 상황에서 장애 아이를 둔 유명 웹툰 작가 측이 특수교사를 아동 학대로 고소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장애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부적절한 돌발 행동을 해 특수학급으로 분리 조치가 됐는데, 그 이후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상황 확인을 위해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서 학교에 보냈는데 녹음 내용엔 훈육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로 인해 직위 해제된 교사 측은 “지도 과정에서 반복되거나 과장된 표현은 있었지만, 학대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기소까지 한 만큼 아동 학대가 맞느냐에 대한 최종 판단은 법원의 몫이다. 다만 이런 갈등이 학교 안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수사기관과 법원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은 짚어봐야 한다.

「 고소·민원에 대한 두려움 확산
교육·의료계 현장 급속히 위축
'법대로'보다 이해·합의가 우선

웹툰 작가는 “경찰 신고보다 학교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교육청과 학교 문의 결과 정서적 아동학대의 경우 교육청 자체 판단으로 교사를 교체하는 것은 어렵고 수사 결과에 따라서만 조치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가 돌발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고 감사하게도 상대 학생과 학부모가 용서하고 원만히 합의를 해주셨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런 용서와 합의가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이뤄지지 않은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무래도 교사-학부모 분쟁에선 ‘교사와 한 식구’라는 이미지가 있는 학교나 교육청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더구나 자식 관련 사안에선 부모가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나 교육청 입장에서도 성급하게 어떤 조치를 했다가 수사나 재판에서 결과가 바뀌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민원이 유발될 수 있다.
책임 유무를 떠나 해당 사안에 대한 부담은 교사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 이를 보는 동료 교사와 일반 학생, 학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불신이 다른 불신을 낳고 모두 수사기관과 법원만 쳐다보게 되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지난 23일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페이스북에 ″병원 문 닫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공지문을 찍은 사진 한 장을 소개했다. [임현택 페이스북]

소아청소년과도 몸살을 겪고 있다. 얼마 전 9세 아이가 혼자서 초진 진료를 받겠다고 왔을 때 아이와 부모에게 “부모가 함께 와야 한다”고 안내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진료 거부를 당했다”는 부모의 민원으로 보건소 조사를 받았다. 해당 의사는 “소아청소년과 진료에 회의가 느껴져 의원 문을 닫겠다”는 안내문을 올렸다.

누구의 잘못을 떠나, 안 그래도 부족한 소아청소년과 한 곳이 없어질 상황에 놓였다. 관련 의사회에선 아이를 혼자 보낸 부모가 맘 카페에 거짓 내용을 올렸고 부모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아동학대와 방임 혐의로 고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렇게 민원과 고발이 이어진다. 과연 이렇게밖에 대응할 수 없는가.

교육이나 의료 분야 등에 면책 범위를 확대하고 과도한 악성 민원을 차단할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실제 개별 사건은 다양하게 일어나고, 면책이 정당하냐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고 해도 이해와 용서, 합의와 화해라는 관용 정신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율 조정과 해결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교육과 의료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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