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상의 라이프톡] 윈스턴 처칠 "민주주의는 최악의 통치형태"

오병상 2023. 7. 2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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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승리가 확실시되는 1943년 처칠 영국 총리가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처칠은 루스벨트를 설득해 참전시킴으로써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영웅 처칠은 승리 직후 총선에서 참패해 정권을 뺐겼다. 중앙포토


"민주주의는 최악의 통치형태다. 지금까지 시도됐던 다른 통치형태를 모두 제외한다면. "
민주주의에 대해 냉소적이면서도 역설적인 통찰력이 돋보이는 표현이다. 영어 원문(Democracy is the worst form of government, except all those other forms that have been tried time to time.)엔 묘미가 더 살아 있다. 민주주의는 '최악이라 불리어 마땅할 정도로 문제가 많다'는 점을 먼저 강조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모든 다른 정치시스템보다 낫다'고 덧붙임으로써 '민주주의가 역사상 최선'이라 극찬했다.
처칠이 말한 시점도 극적이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보수당은 1945년 7월 총선에서 압승을 예상했다. 결과는 '보수 대학살'이란 역대급 참패. 전쟁영웅 처칠이 노동당에 정권을 뺏겼다. '당수에서 물러나라'는 당내 비판까지 쏟아지던 1947년 11월 처칠은 의회연설에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
당시 처칠 입장에선 민주주의가 황당하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처칠은 '2차대전 회고록'이란 방대한 저작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문호답게 역사적 통찰을 잊지 않았다. 처칠은 1951년 10월 총선에서 승리해 재집권했으며, 7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의 진보정책을 적극 수용하는 유연성을 발휘했다.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을 보면 한국 민주주의는 최악이다. 반면 헌법재판소의 행안부장관 탄핵 기각 결정을 보면 처칠의 표현에 공감하게 된다.
사실 헌법재판소는 1987년 민주화 개헌으로 탄생할 당시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던 헌법재판소가 첨예해져가는 정치적 갈등을 풀어가는 모습에서 민주주의의 힘이 느껴진다.

오병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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