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전일 야간 열병식, 중·러도 참관한 듯…3국 밀착 과시
북한이 27일 70주년 전승절(한국의 6·25전쟁 정전협정 기념일)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야간 열병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열병식은 저녁 8시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평양을 방문 중인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한국의 국회부의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주석단에 올랐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쇼이구 국방부 장관이 26일 김 위원장을 접견했으며, ‘1950~53년 조국 해방전쟁 전승절’ 70주년 기념 열병식도 참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타스 등 러시아 매체가 보도했다.
북·러 무기 거래 땐 안보리 결의 위반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전승절을 맞아 고위급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했다. 이에 맞춰 북한은 26일엔 김 위원장 접견-북·러 국방장관 회담-‘무장장비전시회-2023’ 참관, 27일엔 경축대공연 관람에 이어 열병식 참관으로 한·미·일 연대에 맞서는 북·중·러 밀착 효과를 극대화했다.
열병식에 앞서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를 통해 김 위원장이 전승절 기념 ‘무장장비전시회-2023’에서 의전상 자신보다 격이 낮은 쇼이구 국방장관을 직접 안내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눈길을 끈 대목은 ICBM 화성-17·18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등 기존 무기체계와 함께 처음으로 공개된 두 종류의 신형 무인기였다. 북한의 무인기 개발은 2021년 1월 열린 제8차 당대회에서 ‘국방과학 발전·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 중 하나로 제시됐는데 2년 만에 현실화한 것이다.
이 무인기들은 미국의 고고도 무인정찰기 RQ-4 글로벌 호크, 무인 공격기 MQ-9 리퍼와 동체 모양이 매우 유사했다. 이들 앞에 세워진 설명판을 보면 실제 비행하는 장면도 나온다. ‘북한판 글로벌 호크’ 동체에 새겨진 기체 번호와 ‘조선인민군공군’이란 글자 모양도 한국 공군이 4대를 운용 중인 글로벌호크의 동체에 새겨진 방식과 흡사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우리 군의 글로벌 호크와 피아 식별을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판 리퍼’로 보이는 무인기는 미군이 운용하는 리퍼급 중고도 무인기의 무장까지 그대로 베낀 것으로 추정된다. 설계도 해킹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연유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날개 아래에 활공형 유도폭탄으로 보이는 무기체계가 포착됐다”며 “최대 6발이 탑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활공형 유도폭탄은 타격 목표의 상공에서 투하하면 폭탄에 달린 날개로 활공하면서 목표물을 타격하는 무기다.
이날 김 위원장이 쇼이구 장관에게 무기를 일일이 설명하는 모습과 관련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군수물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러시아에 북한제 무기를 ‘세일즈’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이들 무인기가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기술 교류의 결과물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날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의 러시아 군사대표단 접견 사실을 소개하면서 “국방안전 분야에서 호상(상호)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과 지역 및 국제 안보환경에 대한 평가와 의견을 교환했다”면서 양측이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 전했다. 쇼이구 장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일각에서는 아예 북한이 러시아 대표단의 방북 일정(25~27일)을 고려해 전시회를 개최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러 간 무기 거래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의 핵심을 위반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봉쇄 조치에 함께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러 국방 “북한군, 세계서 제일 강해”
북한 국방성은 이날 별도로 러시아 군사대표단 환영 연회도 열었다. 강순남 국방상은 연회에서 “반제투쟁의 한 전호(참호)에서 협조와 연대를 더욱 긴밀히 해 나갈 우리 군대의 입장을 다시금 확언한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재차 강조했다. 이에 쇼이구 장관은 “북한군은 세계에서 제일 강한 군대”라고 치켜세웠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생긴 진영 간 대결을 호기로 보고 계속 러시아와 밀착하는 모양새”라며 “한반도에서 신냉전 구도를 강화해 이른바 ‘반미 블록’을 형성하고, 국제사회의 제재까지 돌파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6일 평양에 온 리훙중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대표단을 접견했고, 리 부위원장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어 27일 0시에 열린 전승절 70주년 기념 경축대공연을 함께 관람했다. 공연을 관람할 때 오른쪽엔 쇼이구 장관, 왼쪽엔 리 부위원장이 앉았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를 통해 자신을 압박하는 한·미·일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라며 “미국이 핵 군축 협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중·러와 협력을 강화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정영교·이근평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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